문중학교 ‘종학당’ 설립…인재 배출

미국 하버드대에서 개교 371년 만에 처음으로 드루 길핀 파우스트(59)가 여성 총장에 올라 세계적인 화제가 되고 있다. 하버드대는 현재 세계적인 명문대로 인재의 산실이 되고 있지만 그 시작은 그야말로 미미했다. 영국 태생의 미국 선교사 하버드(1607~38)의 유언에 따라 그의 재산과 장서를 기증받아 설립된 게 바로 하버드대다.1638년 여름 운동장이 딸린 목조가옥 한 채에서 단 한 사람의 교사가 첫 수업을 맡았다. 그러다 220년 후인 1870년에 당시 C W 엘리엇 학장은 독일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목사를 양성하던 종교 교육 위주의 하버드대를 전문 연구기관으로 변신시켰다. 그는 선택 과목 제도를 도입하는 등 오늘날 미국 대학 커리큘럼(교과과정)의 원형이 되는 학제 개편을 단행했다.바로 여기서 시대정신을 조직화할 수 있는 기획자의 존재와 시스템의 도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하버드대가 세계 일류의 고등교육기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기획형 인재’와 이들에 의한 ‘시스템적 접근’이라고 하겠다.미국에서 하버드대가 설립될 즈음 조선에서도 유사한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문중학교인 ‘종학당’이 1643년에 충남 논산에 설립된 것이다. 당시 공교육으로는 한양의 성균관과 지방의 향교, 사립학교로는 서원과 서당이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양반가는 대부분 스승을 두고 고액 과외를 했다. 논산의 파평윤씨 가문은 당시 사교육의 폐해를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문중학교인 종학당을 설립한 것이다. 종학당은 엄격한 학칙(종약)을 만들고 내외척, 처가의 자녀들을 합숙시키며 체계적인 교과과정에 따라 교육했다.교육의 토대를 놓은 이는 청백리로 꼽히는 명재 윤증(1629~1724)의 중부(仲父)인 동토 윤순거(1596~1668)였다. 동토는 학교를 건립하고 서책과 기물을 마련했다. 하버드대를 만든 하버드 목사처럼 재산과 책을 손수 내놓으며 학교를 세운 것이다. 동토는 근대적인 교육 체계가 없었던 당시에 가문 차원에서 체계적인 자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든 ‘사교육의 기획자’였던 셈이다.종학당은 당시 관학인 성균관과 대조를 이루는 사학(私學)의 대표적인 기관으로 요즘의 초·중·고와 대학이 함께 있는 원스톱 캠퍼스에 비유할 수 있다. 특히 10세 아이부터 과거를 보는 청소년들까지 연령과 학문에 따라 단계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마련했다. 종학당은 동토의 아우인 윤선거(1610~69)와 윤선거의 아들인 명재 윤증이 차례로 학장에 오르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설립 이후 42명의 과거 합격자를 배출하는 등 1910년까지 270년 동안 존속했다.하버드대와 종학당은 비슷한 시공간 속에 존립해 왔다. 특히 기획형 인재에 의해 하나의 교육 시스템을 만들고 그 시스템의 변화를 통해 인재의 산실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파우스트 총장은 엘리엇 학장에 이어 하버드대의 변화와 개혁을 상징하는 인물이 될 것이다. 그의 총장 선임 역시 시스템적 접근의 승리라고 할 수 있겠다.반면 종학당은 일제 식민지 지배와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개혁을 통해 지속 가능한 고등교육의 장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우리 역사의 아쉬움이 아닐 수 없다.최근 노동부에 따르면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사업장 가운데 65%가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업들이 시스템적 접근을 소홀히 한다는 단적인 예라고 하겠다. 이러한 기업에서는 단기적인 생산성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지라도 장기적인 기업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수백 년 동안 지속가능한 기업을 목표로 한다면 하버드대나 종학당의 시스템적 접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또한 종학당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외부 변수에 의해 초래되는 위기에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내부적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가문이든 대학이든 기업이든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기획형 인재’에 달려 있음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GE가 사내 인재 교육에 연간 10억 달러를 ‘투자’하는 이유인 것이다.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비교문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