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로… 앵커로…’ 방송가 팔방미인
생활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바쁜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5시, 그 시작을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날은 밝고 경쾌한 목소리로 덜 깬 잠을 깨우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정적이 내려앉은 외로운 새벽 시간을 따뜻하게 감싼다. 새벽 5시부터 7시까지 2시간 동안 MBC FM 라디오 ‘세상을 여는 아침 서현진입니다’를 진행하는 서현진 아나운서.“새벽 라디오를 진행한 지 1년 반 정도 됐어요. 처음에는 몰랐는데 어느 정도 프로그램이 몸에 익으니 참 따뜻한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새벽에 일어나 라디오 듣는 사람들은 여유로운 사람들이 별로 없잖아요.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서민적인, 그리고 마음 따뜻한 사람들이 주요 청취자들이에요. 그런 분들과 서로 공감하는 시간이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이 따뜻해져요.”주말 저녁이면 서 아나운서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게 된다. 라디오 DJ로서의 친근하고 포근한 모습은 잠시 접어두고 9시 뉴스데스크의 주말 앵커로 한 치도 흐트러짐 없는 단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2004년 MBC 공채 입사했으니 올해 3년차다. 뉴스데스크 주말 앵커에 발탁된 건 작년이었다. 아나운서와 기자 20명 정도가 오디션에 참가했고 서 아나운서가 최종 선발됐다. 짧은 방송 경력을 고려했을 때 파격적인 결정이었다.“제가 어떻게 뽑혔는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어느 정도 모험이었다고 생각해요.”뉴스데스크를 진행한 지 1년 남짓. 처음 많이 부담스러웠던 자리가 어느덧 몸에 익숙해졌고 처음 다소 걱정했던 주변의 목소리가 잦아들며 앵커로서 안정감을 찾아간다는 평이 들리고 있다.라디오 DJ에 뉴스 앵커의 자리가 더해졌고 여기에 교양 프로그램 MC의 역할이 하나 더 주어졌다. ‘생방송 화제집중’의 메인 MC를 맡게 된 것. DJ와 앵커, MC의 다른 영역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며 배울 것도 많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몸이 힘들고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며 최상의 컨디션으로 방송에 임하지 못하게 됐다. 프로그램을 많이 진행하는 게 좋은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아쉽지만 생방송 화제집중의 마이크를 놓았다. 그러나 이때의 경험이 서 아나운서에게는 큰 도움이 됐다.MC를 꿈꾸던 대학 시절“DJ와 MC, 앵커 중 개인적으로 DJ 일이 제일 좋아요. DJ는 절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통로거든요. 앞으로도 오랫동안 꾸준히 그리고 잘하고 싶어요. MC를 하면 사람이 밝아지는 것 같아요. 제가 원래 애교가 많거나 쾌활한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한 7개월 MC를 하니 제가 친절하고 밝은 사람이 된 것 같더라고요. 선배들은 뉴스를 좋아하지 않으면 앵커를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한 1년 정도 지나니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평소 뉴스 꼼꼼히 챙겨보고 많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해요. 결국 세상에 대한 관심이 많아야 한다는 말이더라고요. 아직 노력 중이에요.”대학시절 방송인을 꿈꾸며 서 아나운서가 그린 스스로의 모습은 앵커가 아닌 MC나 DJ였다. 물론 이때 그리던 꿈은 막연한 그림자였다. 대학교 3학년 때 인생의 전환점을 찾기 위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출전했고 선에 입상했다. 이후 다양한 오디션을 보며 연예계의 문을 두드렸다. CF 모델, 드라마 조연으로 간간이 얼굴을 비추기를 1년 반 정도. 연예계와 방송계는 엄연히 다른 영역이라는 걸 깨닫고 자기에게 맞는 게 무엇인지,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얻은 답이 바로 MC. MC가 되기 위한 방법으로 택한 것이 방송국 아나운서 공채시험이었다. 졸업한 해 부산 MBC 아나운서로 입사했고 그 이듬해 70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MBC 아나운서 공채로 다시 입사하게 된다.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하며, 부산 MBC에서 근무한 10개월 동안 막연하게 생각했던 방송이라는 것이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다가왔고 MBC 아나운서로 다시 시작하게 된 큰 계기가 됐다. 입사 후 맡은 첫 프로그램은 ‘출발 비디오 여행’. 이어 ‘지구촌 리포트’를 진행하다 뉴스데스크 주말 앵커로 안착했다. 단시간에 간판 뉴스의 앵커 자리를 맡았으니 앞으로 궂은일은 안 해도 되겠다며 주변에서 우스갯소리를 던졌지만 사실 같은 이유 때문에 고민이 많다.“중계차도 타고 인터뷰도 하고….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쌓인 내공을 무시할 수 없잖아요. 너무 많은 계단을 한꺼번에 점프해 올라왔어요. 어느 순간 스스로를 돌아보니 내 안에 쌓인 내공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죠. 너무 빨리 정상을 밟아봤기 때문에 오히려 그게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앵커로서의 제 색깔을 보여주는 동시에 역량을 키우고 내실을 기해야 할 때, 아나운서로서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요.”자고로 어떤 회사든 3일, 3개월, 3년이 고비라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살짝 일에 대한 맛을 봤기 때문에, 어느덧 일이 몸에 익었기 때문에 일에 대해, 스스로의 진로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때라는 말이다. 3년차에 접어드는 서 아나운서가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사실 고민의 밑바닥에는 최근 아나운서를 연예인화하려는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부담감이 깔려 있다.“아나운서에게 일 외적인 것들을 요구하는 분위기가 돼 가고 있어요. 뭔가 꺼내놓기 바라고 이슈를 만들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길 바라고…. 이런 일에 부딪칠 때 회의가 생기기도 해요. 개인적으로 아나운서가 쇼 프로그램 출연하는 것에는 찬성해요. 그곳에서 아나운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아나운서로서의 본분을 잃어버리면 안 돼요. 시청자들은 아나운서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는데 본분을 저버리고 연예인이 돼버리면 신선함이 떨어지고 점점 원하는 게 없어지게 되죠.”쇼·오락 프로그램에 출연하되 아나운서로서의 중심은 지켜야 한다는 말. 그러기 위해 뉴스를 하나쯤 진행하고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아나운서에게는 뉴스가 생명이다. 뉴스를 진행하고 있으면 한 방향으로 쏠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고 서 있을 수 있다.‘2007년,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서 아나운서가 생각하는 뉴스는 진정성이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아나운서는 훌륭한 앵커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세상에 대해 내 주위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느냐가 멘트 하나하나에 그대로 녹아나고, 사실을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멘트 하나를 놓고 수없이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좋은 뉴스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개인적으로 MBC의 간판 뉴스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요. 앵커로서 중요한 사실들을 제 입으로 전할 때 보람되죠. 역사적인 현장을 기록으로 남길 때도 마찬가지고요.”신입 때부터 즐겨 들었던 말이 ‘네 몫은 한다’였다. 처음에는 이 말이 칭찬으로 들렸다. ‘어…, 제법하는데?’의 다른 표현이라 생각했다. 3년차인 현재 이 말은 그녀가 풀어야 할 숙제가 됐다. 이제 스스로의 몫 이상을 소화해내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스타 아나운서가 돼 방송 생활을 짧고 굵게 마무리지을 생각은 없다. 황수경 아나운서처럼 방송이 생활이 되어 항상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 올 한 해는 그녀에게 중요한 시점이다. 부모님 몰래 출전한 미스코리아 대회도 그랬고 부산 MBC를 그만두고 다시 시험을 봤을 때도 그랬고,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서 서 아나운서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 올인한다. 인생의 터닝 포인트에서 겁 없이 도전하고 두려움을 접고 과감한 승부수를 두는 스타일. 올 한 해는 그녀의 아나운서 인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 예감한다.약력: 2001년 미스코리아 선&포토제닉. 2001년 미스월드 베스트드레서. 2003년 이화여대 무용과 졸업. 2003 부산 MBC 입사. 2004 MBC 입사. 출발! 비디오여행, 생방송 화제집중, 지구촌 리포트, 뉴스데스크(현), 라디오 세상을 여는 아침 서현진입니다(현).©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