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통해 가업 승계…‘온정’ 안통해

연예인들은 대개 스캔들이나 ‘나쁜 뉴스’의 단골이다. 그런데 차인표는 좀 다른 것 같다. 그가 뉴스에 오르내리는 경우는 대부분 ‘좋은 뉴스’의 한 칸을 차지한다. 그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미국 시민권자로 병역 의무를 굳이 하지 않아도 됐는데도 인기 절정일 때 군대에 갔다. 부인이 된 신애라와 한창 데이트를 즐길 무렵이었다.그의 부친은 해운회사인 우성해운 차수웅 창업자다. 1974년 회사를 창업해 운영해 오다 지난해 연말 전문경영인에게 기업을 물려주고 은퇴했다. 이 회사는 재벌 회사들이 주도하는 해운 업계에서 업계 4위의 견실한 기업이다. 대부분 창업주가 생이 다하는 날까지 일선에서 활동하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의 나이 이제 68세에 불과하다. ‘좋은 뉴스’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또 자신의 세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았다. 세 아들이 모두 다른 직업이 있어 승계를 거부했다고 한다. 그것은 어쩌면 이들 부자에게는 심사숙고를 거쳐 냉정한 판단을 해야 하는 ‘중대사’였을 것이다. 대부분 경영 세습을 하는 집안은 ‘냉정한 대물림’보다 ‘핏줄(온정)의 대물림’을 택한다. 그게 인지상정인데 차씨 부자는 ‘냉정한 대물림’도 아닌 경영 승계 포기를 선택한 것이다.국내에서 드물게 화가를 5대째 배출해 오고 있는 가문으로 양천 허씨 소치 허련(1808~93) 가문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운림산방이라는 작은 초옥에서 시작된 이 가문의 역사는 광해군의 폭정을 피해 진도로 이주한 양천 허씨의 내력에서 시작한다. 운림산방은 소치에서 시작해 2대는 소치의 4남 미산 허형, 3대는 허형의 두 아들 남농 허건과 임인 허림으로, 4대는 허림의 아들 임전 허문으로, 5대는 남농의 손자 허진(전남대 미대 교수)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알려진 이가 남농 허건(1907~87)으로,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다.그런데 한국 화단의 거목이 된 남농을 배출하고 5대째 화통이 이어져 오기까지 가장 큰 원칙이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냉정한 대물림’이었다. 부모는 아이가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결코 재능을 인정하지 않았다.소치는 자신의 후계자가 자신을 밟고 뛰어넘기 위해서는 이러한 삼매의 경지에 들어가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장남 허은은 아버지의 기대대로 시 서 화의 공부에 매달렸는데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 4남 허형은 그렇지 않았다. 시 서 화 가운데 시(詩)와는 담을 쌓고 지낸 것이다. 소치는 시(詩)를 게을리 할 경우 그림은 어느 수준에 올라갈 수 있지만 결코 자신을 밟고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런데 소치의 냉정한 대물림은 아들의 죽음으로 어쩔 수 없이 4남으로 이어지게 된다. 소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장남 허은이 그만 19세에 요절한 것이다. 소치는 이를 애석하게 여겨 허은의 호 미산(米山)을 허형에게 물려주면서 대를 잇게 했다. 소치는 허형이 그림에 소질은 있지만 학문이 짧아 후계자로 삼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았다.소치의 ‘반쪽짜리’ 냉정한 대물림은 남농 허건에 이르러 원칙으로 굳어졌다. 남농은 아들 허경(현 남농미술문화재단 이사장)에게는 가난한 ‘환쟁이’의 길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남농은 그래도 그림을 그릴 아이라면 붓을 잡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은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고 더 이상 붓을 들지 않았다. 그래서 4대는 조카인 임전 허문으로 이어졌다. 5대는 다름 아닌 허경의 아들인 허진 교수가 이었다. 허진은 고등학교 때까지 그림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 자신의 끼를 느끼고 마치 ‘신의 부름’을 받은 것처럼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여기서 남농은 자기 곁에 손자를 두고 그 끼를 시험했다. 결국 모든 ‘시험’을 통과하고 5대째 화업(畵業)을 이었다. 허진은 남농의 화풍과는 전혀 다른 한국화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문화관광부 장관이 수여하는 ‘젊은 예술가상’을 받는 등 386세대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우성해운의 차씨 가문의 경우나 소치 허련 가문을 보면 다시 한번 ‘냉정함’의 미덕을 생각하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가문 경영이나 기업 경영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그건 결코 ‘인지상정’에서 나올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다.최효찬·자녀경영연구소장(비교문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