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변동성 증폭… 국제수지 등 변수

사회=한상춘 한국경제 논설위원참석자=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 박춘호 심플렉스 한국대표, 이진우 농협선물 실장지난해 원화 강세로 직격탄을 맞은 기업들은 올해 사업 계획에서 기준 환율을 일제히 보수적으로 낮춰 잡았다. 다행히 추락하기만 하던 환율이 연초 이후 반등세를 보이고 있지만 기업들은 초긴장 상태를 늦추지 않고 있다. 국제수지 흑자 감소 등으로 환율 하락에는 브레이크가 걸리겠지만, 전체적으로는 올해 환율의 변동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하반기 이후 큰 폭의 환율 변동을 예상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환율 전문가 3인에게 올해 환율 전망과 기업의 대응 전략을 들어봤다.사회: 원화 강세 전망이 많았는데, 연초 이후 환율이 조금 반등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먼저 올해 환율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걸로 보시는지요.박춘호 심플렉스 한국대표(이하 박 대표): 연초 환율 반등은 기업들의 연말 효과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워낙 달러 약세, 원화 강세에 학습이 많이 돼 있어 환율이 900원까지 내려갈지 모른다고 우려하는 기업이 적지 않아요. 그로 인한 공포심이 원화 매도세를 강화했고 연말 자금 수요가 거기에 맞물려 증폭된 겁니다. 지금은 그런 갭들이 회복되는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체적으로 올해 환율은 ‘중립’을 유지할 걸로 봅니다. 펀더멘털 측면에서 원화 강세가 강화될 요인이 없어요. 국내 기업과 증권사들은 환율 하락 추세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는데 달러 약세를 너무 크게 보는 거죠.이진우 농협선물 금융공학실장(이 실장): 최근 3년간 환율 문제로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정부도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환율을 어떻게 끌고 가야 하는지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일본도 똑같은 과정을 거쳤어요. 최근 나온 해외 투자 활성화 방안도 일본이 먼저 했던 것들입니다. 하지만 ‘학습’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그동안 환율이 계속 한 방향으로 하락했기 때문에 정부가 아무리 기업들에 선물환 매도를 자제하라고 해도 먹혀들지 않아요.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거죠. 하지만 적어도 올해는 원화가 나 홀로 강세를 보이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집니다.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김 원장): 저도 올해 원화 강세 가능성은 낮다고 봅니다. 안정세를 유지하거나 오히려 반등할 가능성이 있어요. 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 계속 이어져 온 환율 하락 기조가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걸 뜻하죠.사회: 세 분 모두 일반적 예측과는 달리 안정세 내지 반등을 예상하고 있는데, 대부분 올해 달러 약세를 전망하고 있지 않나요.이 실장: 대부분 미국의 무역적자 누적이 달러 약세를 가져올 것이라고 쉽게 받아들이는데, 그게 현실적으로는 성립되지 않고 있어요. 달러 환율을 무역적자만 갖고 설명할 수 없는 거죠. 마찬가지로 위안화 절상이 달러 약세, 원화 강세를 가져온다고 하는데 왜 그런지는 설명을 못하지요. 오히려 시장에서 달러 가치를 결정하는 더 중요한 요인은 금리 격차, 미국과 유로지역의 금리 격차입니다. 달러는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아요. 지금 달러가 무너지는 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지요.사회: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다른 나라에 투자하는 엔-캐리 거래 동향은 어떻습니까.김 원장: 사실은 부동산 시장으로 엔화 자금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금리가 낮은 엔화 자금을 차입해 국내에 들여와서 기업 자금으로 쓰지 않고 부동산에 투자하는 거죠. 단기 차입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금융 당국이 이 부분을 잘 감시하고 감독해야 해요. 실물 경제 쪽에서는 여행수지 적자가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일본 관광객이 한국으로 많이 왔지만 이제는 엔화가 싸지면서 한국인이 일본으로 대거 나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요.박 대표: 일본은 지난해 초부터 금리를 올린다고 했지만 말뿐입니다. 금리 인상을 지금까지도 미루고 있어요. 전형적인 일본 스타일이죠. 올해도 금리 인상을 미룰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일본은 경기에 대해 굉장히 조심스러운 행보를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엔화 강세가 그렇게 빨리 진행될 가능성은 낮아요. 우리도 엔화 약세에 투자 포지션을 두고 있고 당분간 이를 유지할 겁니다.사회: 조선 업체들의 선물환 매도도 환율 전망에서 중요한 변수인데요.이 실장: 얼마 전 정부는 해외 투자 활성화 방안을 내놓으면서 100억~150억 달러를 내보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조선 업계 신규 수주 규모만 해도 이 수준을 훨씬 뛰어 넘습니다. 그만큼 외환 시장에 대한 조선 업체들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것이죠. 자료를 보고 저도 놀랐는데 세계 수주량 1~5위가 모두 한국 기업이고 10위권에 국내 조선 업체 7곳이 모두 올라 있어요. 또 가격이 가장 비싼 심해용 원유탐사선이 지난해 세계적으로 총 12척 발주됐는데 우리 업체 2곳이 전부 가져왔어요. 3~4년 물량은 이미 다 차 있고 들어오는 주문을 거절하는 상황입니다. 최근 몇 년간의 환율 흐름은 분명히 펀더멘털로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봐요. 조선업 호황이 원화 강세의 빼놓을 수 없는 요인으로 작용했어요. 문제는 이렇게 되면서 우리 경제의 다른 부문이 어려움을 겪게 됐다는 겁니다.사회: 기업들의 대응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말씀이신지요.이 실장: 선물이든 현물이든 달러를 내다파는 기업들도 자신들이 팔지 않으면 환율이 오를 것이라는 걸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어요. 자신들도 살기 위해 팔기 때문이죠. 사업계획서상 환율을 900원으로 잡아놓은 곳이 많은데, 그런 상황에서 930~940원에 팔면 오히려 ‘해피’한 거죠.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해 왔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는 굳이 바꿀 이유가 없어요. 환율이 50원, 100원 급등하는 장이 와봐야만 기업들이 환율 문제를 제대로 보게 될 겁니다.사회: 정부가 내놓은 외환 대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는지요.박 대표: 외환 대책은 두 가지가 가능하지요. 첫째는 외환 시장에 나오는 매도분을 정부가 사주는 겁니다. 하지만 지금 통화 증발로 부동산이 들썩이고 있기 때문에 꼼짝하기 어려운 상황이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달러를 해외로 내보내는 것밖에 없어요. 바로 해외 소비, 해외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죠. 정부가 하려는 게 바로 이 부분이에요. 국내에 쌓인 달러를 해외로 내보내자는 것인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환율 안정을 위한 하나의 ‘액션’은 될지 몰라도 큰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지요.사회: 1997년 이후 유지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의 외환 정책에서 정상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도 있는데, 시기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해외 부동산 시장, 주식 시장 모두 불안한 상황 아닙니까.김 원장: 시기적으로 벌써 나왔어야 할 대책인데 조금 늦은 감이 있어요. 또 원론적으로 보면 시장 개입은 항상 효과가 그리 크지 않아요. 개입해서 좋게 만들면 나중에 그만큼 환율에 충격을 주기 때문에 오히려 비용만 올라가는 결과를 가져오지요. 그나마 한 가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경상수지가 예상보다 좋아지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펀더멘털이 예전보다 악화될 가능성이 있고, 이것이 환율에 영향을 미쳐 환율 상승을 가져올 수 있다는 뜻이지요. 1997년 이후 10년간 계속 환율 하락이 이어졌는데, 이제는 그런 트렌드가 꺾일 때가 됐어요.이 실장: 지금까지의 추세와는 다른 방향의 흐름이 나타날 것이라는데 동의합니다. 다만, ‘타이밍’이 문제일 뿐이지요.김 원장: 시장의 큰 흐름이 바뀔 때가 매우 위험할 수 있어요. 1995년에도 그런 일이 있었지요. 엔-캐리 자금 말씀하셨는데, 이번에도 굉장히 큰 위험 요인이 될 수 있어요. 지금 금융사나 기업, 공공기관들이 엄청나게 엔화를 차입해 오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시장 흐름이 확 바뀌면 큰 혼란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거죠.이 실장: 정부가 좀 더 선제적인 대응에 나서야 합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경기 과열, 경기 침체에 대비해 미리 움직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항상 늦게 갑니다. 부동산만 해도 다 오르고 난 다음 대책이 나옵니다. 이번 해외 투자 활성화 대책도 마찬가지죠. 자칫하면 해외 투자에 나섰다 상투를 잡을 수 있고, 그러니 정부도 투자자들이 알아서 판단하라고 한발 빼는 모습을 보입니다. 하지만 환율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 것만은 틀림없어요. 그동안 무조건 달러가 들어오는 것은 선, 나가는 것은 악으로 봐 왔어요. 또 외환시장의 풍토도 바뀌어야 해요. 지금처럼 기업들은 계속 달러를 쏟아내고, 사는 쪽은 계속 후퇴하는 구조로는 안 됩니다. 지금 환율은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요. 체력과 능력에 비해 환율이 고평가된 상태가 오래 지속되면 될수록, 이후 균형점으로 다시 돌아갈 때 충격이 클 수밖에 없지요.사회: 올해 구체적인 환율 수준은 어떻게 전망하십니까.박 대표: 940원을 기준으로 ±2.5% 범위에서 박스권 등락할 것으로 봅니다. 펀더멘털 측면에서 원화 강세가 이어지기는 어렵다고 봐요. 단기적으로도, 미국 금리가 현 수준에서 올해 내내 동결 상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아요. 미국 금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원화 콜금리도 움직이기 어렵습니다.이 실장: 환율 하락 요인으로 먼저 달러 약세 심리를 들 수 있습니다. 실제 달러가 약세를 보이는 것이 아니라 달러가 약세로 갈 것이라는 믿음이죠. 또 수급상으로 보면 선물환이나, 현물환이나 내다 팔 매물이 아직도 많아요. 반대로 상승 요인은 국제수지 흑자폭이 예전보다 줄고 있다는 것이지요. 또 금리 격차 때문에 달러가 약세로 가기도 어렵죠. 올 상반기는 920~940원에서 움직일 걸로 봅니다. 940원이면 대다수 수출 기업이 달러를 내다 팔면서 큰 불만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920원까지 가면 환율을 맞추기 어렵죠. 기업들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달러를 내던질 가능성은 낮아요. 또 920원 정도면 매수 세력도 나온다고 봐요. 920~940원에서 최근 1~2년 쌓인 매물을 털어내고 하반기에는 경기와 글로벌 달러의 향방에 따라 움직일 겁니다.사회: 요즘 기업들도 외환 운영 다변화에 관심이 많습니다. 유로, 엔, 위안화 전망은 어떻습니까.이 실장: 유로가 가장 강세고, 그 다음 달러, 엔 순서로 봅니다. 위안화는 결국 절상될 수밖에 없어요. 절상폭은 중국에 달려 있지요. 유로는 올해 큰 변화가 없을 겁니다. 파운드는 더 이상 강세로 가기 어려워요. 그렇게 되면 달러가 역사적 저점을 내주고 무너지게 되는데, 2007년이 그런 단계에 도달했다고 보기는 어렵죠. 국제 외환 시장에서 달러는 약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상태로 갈 겁니다. 달러가 특별히 강세를 보일 이유는 없지만, 그러면서도 모두가 예상하는 ‘약한 달러’는 오지 않는 거죠.사회: 기업들이 할 수 있는 환 리스크 관리는 어떤 것이 있나요.김 원장: 지나치게 달러에만 의존해서는 안 됩니다. 유로, 엔, 위안화 등 지역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한쪽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쪽에서 채울 수 있지요. 기업들이 환율 흐름을 시시각각 쫓아가면서 헤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통화 지역을 다변화하는 것이지요.박 대표: 기본적으로 환율 변동은 생산성 향상으로 커버해야 합니다. 헤지는 어디까지나 비용을 감소시키는 것일 뿐이지요. 삼성과 LG가 똑같이 LCD를 생산하는데 삼성은 이익을 내는데 LG는 적자입니다. 핵심 부품을 국산화했느냐, 생산성이 어느 정도이냐로 갈리는 거죠. 보통 대기업은 헤지도 하고 선물환 매도도 하고 금융사 협조도 활발히 구합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환 리스크 관리가 전무하죠. 중소기업은 외환 다변화를 통한 위험 분산이 정말 필요해요. 현재 중소기업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것은 한국수출보험공사의 환율변동보험제입니다. 최고경영자(CEO)가 스스로 환율 민감도에 따른 현금흐름표를 작성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되지요.이 실장: 대기업은 환 리스크 관리를 어느 정도 합니다. 반면 중소기업은 능력도 안 되고 하지도 않아요. 설사 리스크 관리를 한다고 해도 매도 헤지뿐이지 매수 헤지를 하는 경우는 드물지요. 하반기에 환율이 의외로 상승 방향으로 움직이면 어떻게 될까요. 800원대로 내려갈 수도 있지만 큰 폭으로 뛸 수도 있어요.김 원장: 거의 대부분의 기업이 올해 예상 환율을 낮게 잡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보면, 모두가 한 방향을 예측하고 있을 때 의외의 상황이 벌어지면 ‘패닉’ 상태에 빠질 수 있어요. 기업이나 금융사 모두 나름대로 하반기 환율 움직임에 관심을 갖고 대응해야 합니다.정리= 장승규 기자 skjang@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