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락시 기업 ‘치명타’… 리스크관리 ‘필수’
환율의 사전적 정의는 서로 다른 두 나라 돈의 교환 비율이지만 실제 환율이라는 두 글자가 우리에게 주는 무게감은 훨씬 더 크다. 환율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기업에 환 위험 관리는 경영상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환율은 일반 재화 또는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결정된다. 수출이 늘어난 경우 즉, 경상수지가 올라가거나 외국인 투자가의 투자 금액이 많아져 자본수지가 많아지면 환율은 떨어진다. 이렇게 해서 달러 공급이 많아지면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고 원화가치는 오른다. 환율이 하락한다는 이야기다. 실제 원·달러 환율 하락이 본격적으로 나타난 시기는 2004년 10월부터로, 2004년 당시 경상수지는 282억 달러, 자본수지는 76억 달러 흑자였다.2004년 10월 이후 본격 하락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의 경우 환율 하락이 계속되면 환차손, 즉 환율 변동으로 인한 손해도 커진다. 현재 국내 기업의 환차손 규모는 점차 증가하는 추세다. 외환위기 이전인 1996년 중 국내 기업의 환차손 규모는 약 4000억 원이었지만 1999년에는 6조 원 규모로 확대됐다. 2000년에는 상장기업의 환 손실 규모만 약 4조 원에 달했다. 환율 하락은 또 가격 경쟁력을 떨어뜨려 수출 둔화로 이어지고 경상수지 적자로 이어진다. 기업 실적을 떨어뜨려 주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정환율제로 묶여 30년 가까이 조용하던 우리나라의 외환시장은 지난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이후 큰 변화를 겪었다. 환율제도가 자유변동환율제로 이행되면서 외환위기 이전에 있었던 일일 변동 폭 제한이 철폐됐다. 또 외환자유화가 실시돼 규제가 대부분 사라지고 외화 유출입이 자유로워졌다. 자연히 각 경제 주체들의 환 리스크 노출도 커지고 있다.특히 최근 들어 원화 환율의 변동 폭이 확대되는 추세여서 기업들은 환 리스크에 대한 대비가 절실한 시점이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원화 환율의 일일 평균 전일 대비 변동 폭은 4.8원으로 2000년 3.3원에 비해 1.5원 확대됐다.원·달러 환율의 결정은 기본적으로 수급에 의해 이뤄지지만 이 밖의 변수도 많다. 시장 기대와 경제 지표, 각종 뉴스, 주변국 환율 등의 단기 요인과 물가 수준, 생산성 변화, 교역 조건 변화 등의 장기 요인 등이 직간접적으로 환율에 영향을 미친다. 금리가 높아도 해외 자금의 국내 투자가 늘어 궁극적으로 환율을 떨어뜨린다. 정치가 불안정하거나 국가 분쟁이 벌어져도 환율이 오른다. 달러 가치가 뛰기 때문이다.최근에는 특히 미국 금리 인상 국면이 언제 마무리될 것인가 하는 점, 또 지난해 이미 국내총생산(GDP) 대비 6%를 넘어선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중국의 위안화 추가 절상 가능성 등 글로벌 달러 약세 요인 등에 많은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다. 특히 미국은 최근처럼 환율을 예상하기 어려울수록 예의 주시해야 할 대상이다.한편 원·달러 환율은 1월말 기준으로 지난해 대비 4.7% 하락해 유로화(2.4%), 엔화(0.08%) 등에 비해 빠른 하락 속도를 보이고 있다. 원화 환율은 지난해 12월 중에는 2.1%, 올 1월 중에는 4.7% 하락했다. 지난해 12월 이후 무려 6.7%나 하락했다는 얘기다. 같은 기간 엔화는 1.7%, 유로화는 2.7%, 싱가포르 달러는 3.8% 떨어졌다.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은 세계 시장에서 일본과 경합하는 일이 많다. 따라서 이처럼 원화 환율 하락 폭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에 크게 노출돼 있음을 의미한다.이와 관련, 최근에는 원·달러 환율뿐만 아니라 원·엔 환율의 하락(원화가치 상승)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원·엔 환율 하락이 소위 일류(日流)의 확산, 즉 대일 경상수지 적자 시대 고착화로 이어지리라는 우려가 나올 정도로 원·엔 환율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기업들, 환 헤지 거래 적극적원·엔 환율 하락은 무역 적자 증가와 동시에 기업 수익률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 상위 50대 수출 품목 중 일본과 세계 시장에서 경합하는 품목 수는 24개이며, 이들 경합 품목의 수출 비중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휴대전화 자동차 반도체 등의 주요 수출 품목이 일본의 주요 수출 품목과 경합하는 분야다. 수출 상위 품목 중 한·일 간 경합하는 품목 비중은 2000년 28.8%, 2004년 46.1%, 2005년 50.6%로 늘었다.이 같은 특징은 특히 가격 경쟁력이 주요 변수로 작용하는 북미 시장 수출의 부진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2006년 세계적인 수출 단가 하락과 함께 원화 강세와 엔화 약세로 미국과 캐나다의 자동차 시장과 HDTV 시장에 한국 상품 수출이 부쩍 줄었다.지난 2005년 1~12월 중 한국의 대미 수출은 전년 동기간에 비해 3.7% 감소한 반면 일본은 6.4% 증가했고 중국(1~11월중)은 무려 31.7%나 늘었다. 미국 자동차 시장에서 한국 현대자동차의 쏘나타는 1만6358달러에서 1만8300달러로 가격이 상승한 반면 일본 도요타의 캠리는 1만8500달러의 가격을 유지해 한국의 대미 자동차 수출은 27.5% 감소하고 일본의 대미 수출은 140.1% 늘었다.한마디로 환율 하락은 채산성 악화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난 2005년 수출 금액을 보면 2000년 대비 9.7%, 제조업 생산은 7% 늘었지만 제조업 고용은 오히려 1.3% 감소했다. 수출과 고용의 상관관계가 1990년대(1991~2000)에는 양의 관계에서 2001~04년에는 음의 관계로 전환됐다. 이는 산업 구조의 변화, 글로벌 아웃소싱의 증가, 부품 소재 산업 미흡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부품 소재의 아웃소싱이 확산되면서 국제 경쟁력이 없는 국내 중소 부품 소재 기업의 영업 기반이 붕괴되고 있다. 특히 최근의 수출 채산성 악화는 환율 하락이 직접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무역협회 무역연구소 동향분석팀이 지난 연말 84개 수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긴급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명제를 도출할 수 있다. 환율 하락이 신규(수출) 오더를 받는데 미치는 영향을 물어본 결과 환율 하락으로 상당수의 기업들이 신규 오더를 포기한 경험이 있거나 출혈 수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설문에 응한 기업 중 36.9%가 ‘채산성이 맞지 않아 오더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출혈 수출에도 불구하고 장기공급 계약 또는 가동 유지를 위해 수출을 계속 진행하고 있다’는 응답도 28.6%를 차지했다.다행히 많은 수출 기업들은 2004년 이후 환차손의 엄청난 위력을 체감하면서 위기의식을 느끼고 적극적인 환 헤지(위험 분산) 거래를 했다. 또 수입 기업들도 환율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만큼 결제, 즉 달러 매수를 가급적 늦추고(래깅·lagging), 일부에서는 유전스(usance·기한부어음) 등 외상 수입을 적극 활용했다. 한국은행 관련 자료에 따르면 일부 중견, 중소기업의 경우 전통적인 환 헤지 수단인 선물환 거래 대신 통화 옵션 또는 수출보험공사의 환 변동 보험을 적극 활용했다.하지만 여전히 높은 달러화 결제 비중은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수출 비중에 비해 수출 결제 통화 다각화 정도가 낮다. 한국의 대미 수출 비중이 20% 내외임에도 불구하고 달러 결제 비중은 80%를 상회하고 있다. 반면 선진국은 수출 결제 시 자국 통화의 비중이 일본을 제외하고 거의 50%를 상회한다. 일본도 엔화 결제 비중이 2000년 35.1%에서 2004년 상반기 40.1%로 점차 높아지고 있다.각 경제 연구기관은 올해 원·달러 환율이 900원 초·중반대를 유지하리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2006년보다 크게 하락하지는 않는다는 예상이다. 하지만 환율이 기업 경영 성과에 미치는 영향, 커지는 환율 변동 폭 등을 고려할 때 환율 변동에 따른 환 위험은 계속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결국 환 위험 관리는 기업이 본연의 생산 활동에 충실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조건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