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쉰에도 만화책 즐기며 사업아이템 발굴

국내서만 1700만 개 이상 팔린 ‘메가 히트’ 팽이 완구 ‘탑블레이드’를 내놨던 손오공이 신개념 완구로 또 다른 신화 쓰기에 나선다. 손오공이 최근 개발한 이 야심작은 바로 무선 조작을 통해 새처럼 날갯짓으로 나는 로봇새 ‘스카이버드’. 이 회사는 스카이버드를 2007년 2월 출시해 이 제품으로만 300억 원의 매출을 올린다는 목표다. 2006년 손오공의 전체 예상 매출 550억 원의 무려 절반이 넘는 수치다.스카이버드는 건국대 대학생 벤처인 마이크로에어로봇이 개발한 소형 비행체를 손오공이 2년간의 연구 끝에 완구로 상품화했다. 제품 기술의 핵심은 초경량 소형 모터와 이 모터의 회전운동을 상하 수직운동으로 바꿔주는 소형 크랭크암. 이들 장치를 이용해 스카이버드는 모형 헬리콥터나 비행기처럼 로터를 사용하는 대신 새처럼 날갯짓으로 비행한다. 각 부품이 초경량으로 제조되고 전체 재질도 스티로폼으로 구성돼 날개 길이 350㎜, 동체 길이가 290㎜에 달하면서도 제품 무게는 50g에 불과하다. 또 날개에는 카본 뼈대와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 소재의 비닐이 사용돼 쉽게 부러지거나 찢어지지 않는다. 또 사용자의 조작 실수로 제품이 추락할 경우 날개와 동체가 분리돼 충격이 분산되도록 고안돼 있어 파손 가능성도 매우 적다고 덧붙였다. 스카이버드는 발광다이오드(LED)가 부착돼 밤에는 불빛까지 낸다.최신규 손오공 대표(50)는 “최근 수개월 동안 주말마다 서울 여의도에 나가 시제품을 날리며 성능 시험을 했다”며 “나는 모습은 물론 날갯짓 소리까지 새를 빼닮아 실제 새를 날리는 듯한 쾌감을 준다”고 말했다.이 제품은 10초 충전하면 30초 정도 비행할 수 있는 급속 충전형과 10분 이상 비행할 수 있는 리모컨 조작형 2가지 형태로 출시될 예정이다. 가격은 6만~8만 원대로 책정돼 2007년 수출을 포함, 50만 개가량 팔릴 것으로 최 대표는 내다봤다. 그는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크게 어필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현재 미국 유럽 일본 등 국가의 10여 개 기업과 수출 상담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최 대표는 2001년 줄을 당기면 발사돼 돌아가는 신개념 팽이 완구 탑블레이드를 내놔 단숨에 손오공을 국내 완구 업계 1위로 도약시킨 인물. 탑블레이드는 출시 후 국내에서만 1700만 개 이상 판매되는 등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일본 등 세계 52개국에 수출됐다.13세때 금세공으로 사회생활 시작최 대표는 그야말로 ‘밑바닥’에서 출발해 오늘날 국내 완구 시장 30%를 점유하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로 발돋움했다. 그는 세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행상을 하던 어머니는 가난에 못 이겨 그를 시골 큰형님 집에 맡겼다. 학교 다닐 형편이 안돼 애초에 공부보다 기술에 뜻을 둔 그는 열세 살 때부터 금은방에서 금 세공사로 일했다. 그의 공식 학력은 초등학교 중퇴다.그는 이후 선반·주물기술을 배워 번 돈으로 1974년 열아홉 나이에 셋째 형과 수도꼭지 만드는 협성공업사라는 회사를 세웠으며 1983년 서울 개봉동에 ‘서울다이캐스팅’이라는 회사를 설립, 야외용 가스레인지와 녹즙기 부품 생산에 나섰다.그러던 어느 날 그는 장난감 자판기를 만들어 달라는 주문을 받으면서 완구 사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그는 당시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파리잡이용 ‘끈끈이’에 주목했다. 최 대표는 “독성물질 시비가 벌어지고 있던 이 제품을 안전하게 완구로 상용화하면 크게 히트를 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고 말했다.그는 1985년 서울 문래동에 ‘서울화학’이라는 작은 장난감 공장을 차려놓고 연구를 거듭했다. 화학상에서 고무와 플라스틱을 혼합한 클레이턴이라는 재료를 구해 조그만 셋방 연탄아궁이에 직접 끓이고 실험하면서 숱한 실패와 시행착오를 겪었다. 나중에는 자금이 부족해 전세금과 아내의 결혼반지 등 전 재산을 털어 공장에 투자했다.그는 결국 연구 8개월 만에 손에 묻어나지 않으면서도 말랑말랑하고 독성이 없는 ‘끈끈이’를 만들어냈다. 당시 100~200원 했던 이 제품은 전국적으로 큰 인기를 모으며 무려 40억 원의 수익을 회사에 안겨다줬다. 이에 힘입어 그는 1990년 장난감 자동판매기 사업에 뛰어들어 또 한번 빅히트를 기록했다. 1992년 서울양행과 서울화학을 합쳐 손오공을 설립한 최 대표는 이번에는 장난감 로봇 개발에 나섰다. 손오공은 당시 일본 2위 완구 업체인 ‘다카라’와 기술제휴를 통해 1994년 국내 최초로 합체 변신 로봇 ‘그레이트 다간’을 선보이며 또 한번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손오공의 대표작은 단연 ‘탑블레이드’가 꼽힌다. 이 제품의 빅히트에는 최 대표의 ‘원소스 멀티유즈’ 전략이 크게 기여했다. 탑블레이드를 내놓기 전 먼저 이 제품을 소재로 한 한·일 합작 애니메이션을 일본과 한국에서 선보인 것. 이 애니메이션은 각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팽이 제품까지 덩달아 불티나게 팔렸다.손오공은 그러나 최근 탑블레이드 매출이 떨어지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 발굴이 요구돼 왔다. 2005년에는 2001년 이후 처음으로 영업이익 적자까지 냈을 정도. 이에 따라 개발된 제품이 바로 스카이버드다.손오공은 또 이름을 부르고 만져주면 눈빛으로 슬픔과 기쁨 등 5가지 감정을 표현하는 인공지능 로봇 ‘페로’, 밤에도 배드민턴을 칠 수 있는 ‘발광 셔틀콕’ 등 신제품도 2007년 내놓을 계획이다. 발광 셔틀콕은 빛을 내기 위해 전지와 전구가 들어갔으면서도 무게는 기존 셔틀콕과 같도록 만들어졌다. 최 대표는 “최근 발광 셔틀콕을 시험 삼아 1000개를 시장에 내놓았는데 모두 팔렸다”며 “스카이버드와 함께 앞으로 주력품목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최 대표는 나이가 50이지만 아직도 만화책과 TV 개그프로그램을 즐겨 본다. 또 틈나는 대로 동네 놀이터와 문구점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이 무엇을 가지고 노는지 살핀다. 어린이와 젊은 세대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내 아이디어를 짜내기 위해서다. 실제 경험과 관찰은 그의 제품 개발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고 있다. 발광 셔틀콕도 그가 아내와 함께 배드민턴을 치면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어두운 밤에도 쉽게 셔틀콕을 식별하면서 배드민턴을 칠 수는 없을까’하는 고민에서 나온 것. 그가 지금까지 만들어낸 제품만 1000여 가지, 따낸 특허만 300여 개에 달한다.최 대표는 게임 사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05년 손오공은 코믹 스포츠 액션 게임 ‘컴온베이비’를 내놓고 온라인게임 사업에 진출했으며 2006년 11월에는 온라인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PRPG)인 ‘샤이아’를 중국 시장에 선보였다. 이 회사 게임사업은 완구사업에 비해 그동안 주목할만한 실적을 내지 못한 것으로 업계는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 대표는 샤이아가 중국 시장에서 오픈 베타 서비스 첫날 30분 만에 30만 명이 동시 접속하는 등 큰 인기를 얻고 있어 게임사업 전망도 밝게 보고 있다. 그는 “샤이아의 접속 대기를 최대한 원활히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서버를 증설할 것”이라고 밝혔다.최 대표는 “사업에 대한 욕심이 최근 더욱 넘치고 있다”며 “손오공을 세계적 완구 회사로 일궈낼 것”이라고 말했다.약력:1956년 서울 영등포 출생. 74년 협성공업사 창업. 86년 서울화학 창립(나중에 손오공으로 사명 변경). 2003년 중소기업청 신지식인 선정. 2004년 벤처기업협회 부회장. 2004년 한양대 명예경영학박사. 2005년 한양대 총동문회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