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공동체 정신 회복서 시작됩니다’

김주영 소설가·파라다이스 문화재단 이사장1939년 청송 출생. 62년 서라벌예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71년 월간문학 <휴면기>로 문단 데뷔. 소설 <객주> <활빈도> <화척> <야정> <홍어> 등 출간. 이산문학상(96년), 대산문학상(98년), 김동리문학상(20002년) 등 수상. 2005년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현)유순신 유앤파트너즈 사장1957년 서울 출생. 성신여대 불어교육과 및 헬싱키 경영대학원 졸업. 89년 NCH코리아 세일즈 매니저. 92년 유니코써어씨 헤드헌터. 2001년 유니코써어치 사장. 2003년 이화여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유앤파트너즈 사장(현)2006년은 후세의 사가들에게 어떻게 기록될까. 사상 초유의 집값 폭등, 황우석 박사의 가짜 줄기세포 쇼크, 그리고 북한의 핵개발 공포까지. 국론은 사분오열되고, 국민들의 가슴속엔 실망만이 넘실댔다. 그렇게 한 해가 저물었다. 그리고 정해년 새해가 열렸다. 새해를 맞는 사람들은 ‘만사형통(萬事亨通)’의 꿈을 꾼다.그렇다. 꿈을 갖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우리 조상들은 포기를 몰랐다. 쓰러지고 또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고야 말았다. 그 희망의 목소리를 <객주> <활빈도> <화척> 등의 소설로 유명한 김주영 소설가 겸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과 국내 헤드헌팅 업계의 선두 주자인 유순신 유앤파트너즈 사장으로부터 들었다. 12월 20일 파라다이스문화재단 회의실에서 두 사람이 만났다.유순신 사장(이하 유 사장): 10년은 젊어 보이십니다. 특별한 비결이 있습니까.김주영 이사장(이하 김 이사장): 제 성격이 워낙 낙천적입니다. 일에 착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빙그레 웃더니) 또 나이 많은 사람과는 상종하지 않습니다. 한 살이라도 어린 사람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합니다.유 사장: 일하는 사람들의 정년이 점점 짧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이사장님은 나이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보여주신 셈입니다.김 이사장: 언제부턴가 나이 많은 사람들은 퇴출되는 분위기가 생겨났어요. 그들이 갖는 위기감과 패배의식이 걱정될 정도입니다. 단순히 나이로 역량을 평가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생각이에요. 예를 들어볼까요. GM대우는 예전에 어려울 때 구조조정으로 물러나게 한 사람들을 다시 불러들인 적이 있습니다. 이후 기업이 활기를 되찾고 능률도 크게 올랐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오래된 이야기지만 중동 건설 붐이 한창일 때 건설노동자들을 대거 젊은 사람들로 교체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일의 진척이 늦고 시행착오가 줄을 이었지요. 결국에는 다시 나이 많은 사람들을 투입해 정상화시켰던 기억이 납니다. 경험 많은 사람들의 효율이 더 높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사회적으로 경륜을 존경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합니다.유 사장: 2006년 한 해 가장 큰 이슈는 집값 폭등이 아닐까 싶습니다. 집 장만 하려면 10년, 20년 걸려도 힘들게 됐다며 한 숨을 쉬는 서민들이 늘어났습니다.김 이사장: 지리적으로 보면 사계절 구분이 뚜렷한 나라 국민들이 집에 대한 집착이 강합니다. 역사적으로는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면서 집 없는 자의 서러움을 톡톡히 겪은 기성 세대들이 집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 의식 속에 집에 대한 집착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지요. 안타까운 점은 정부가 연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반값 아파트 문제만 하더라도 연구해 볼 생각은 하지 않고 그저 안 된다는 소리만 하고 있어요.유 사장: 집값 폭등과 함께 사행성 게임의 일종인 ‘바다이야기’ 파문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습니다.김 이사장: 한 나라의 경제는 제조업이 이끌어가야 한다고 봅니다. 누군가는 우리가 쓰는 물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비행기가 안전하게 뜨고 내리는 것은 바퀴가 두개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 제조업보다는 정보통신 산업 쪽으로 방향을 너무 틀어버린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조업과 정보통신 산업이 균형 있게 발전해야 되는 데 말이죠. 정부가 벤처 붐 등을 조성하면서 우리 의식 속에 잠들어 있는 한탕주의에 불을 붙인 것입니다. 정직하게 돈 버는 풍토가 없어져 버렸어요. 집값 폭등도 이런 한탕주의의 산물이라고 봅니다.유 사장: 황우석 박사의 가짜 줄기세포 사건도 너무나 충격적이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났을까요.김 이사장: 과학자는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연구하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독립돼야 해요. 세계 피겨스케이팅 대회에서 1등을 한 김연아 선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진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 어린 학생이 허리가 끊어지는 듯한 통증을 참으면서 큰일을 해내지 않았습니까. 그녀가 세계 대회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그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하지만 그녀가 갑자기 나타난 것은 아닙니다. ‘김연아’라는 이름이 알려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눈물을 흘리면서 훈련을 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과학자도 이 같아야 하지 않을까요.유 사장: 우리나라 경제가 세계 10위권으로 비상했지만 청년실업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나라에 대한 믿음마저 상실할까 두렵습니다.김 이사장: 젊은 시절에 같은 경험을 했어요. 취직을 하려고 친구가 잘 아는 출판사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찾아갔는데, 막상 할 말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취직시켜주면 뼈가 부스러지도록 일하겠습니다’라고 말했어요. 그러니까 면접을 본 사장이 하는 말이 ‘뼈가 부러지면 일을 못하지 어떻게 일을 해’하고 아무렇지 않게 툭 던지는 말투로 대꾸하는 겁니다. 그 말을 들으니 기가 막히고 두 번 다시 말하고 싶지 않아지더군요. 그냥 묵묵히 앉아 있다가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우리 기성 세대가 젊은 사람들의 절박한 심정을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정부와 기업이 어떻게든 손발을 잘 맞춰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주어야 합니다.유 사장: 주변에 자녀교육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뚜렷한 해결책이 없을까요.김 이사장: 부모들의 의식이 잘못됐습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식 사랑이 너무 넘쳐납니다. 자녀를 군대에 보내면서 우는 어머니를 보면 답답합니다. 우리가 왜 이리 연약해졌을까 싶어요. 마흔이 되어도 결혼을 하지 않으면 붙잡고 있어요. 자식과 떨어져 살면 죽을 것 같은 표정을 자식에게 보입니다. 미국이나 독일 등에서는 아주 엄격하게 자식을 키웁니다. 일찍 내보내서 경쟁력을 키워줍니다.유 사장: 앞만 보고 열심히 살면 바보 취급을 당하는 잘못된 사회 가치관이 확산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김 이사장: 얼마 전에 신문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경마장에서 사람들이 난동을 부리고 불을 지르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눈이 많이 쌓여 경마장 측이 경기를 중단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쩌다가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이렇게까지 피폐해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유 사장: 최근 인문학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것도 가치관의 혼란으로 생긴 문제가 아닐까요.김 이사장: 인문학 위기는 사회가 경제 위주로 가다보니 이공계나 자연계를 강조하게 되면서 나타나게 된 것 같아요. 상대적으로 인문학이 괄시받고 있는 셈이지요. 하지만 이는 상당히 위험합니다. 우리가 왜 돈을 법니까. 우아하고 품격 있는 삶을 누리기 위해서가 아닐까요. 인문학이 실종되면 어떻게 사는 것이 우아하고 품격 있는지에 대한 방향감각 자체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인문학이 중요한 이유예요.유 사장: 이기주의가 극심해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사회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가라앉힐 수 있는 방도는 없을까요.김 이사장: 우리나라는 지금 국론이 사분오열돼 있는 형편입니다. 정치는 참담하게 분열돼 있고, 보통 사람들의 삶은 암담한 처지입니다. 정말 답답합니다. ‘밀운불우(密雲不雨)’라는 사자성어가 떠오릅니다. 구름은 잔뜩 끼어 있으나 비가 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답답한 현실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가진 자들이 허세 부리는 분위기는 점점 없어지고, 궁핍을 겪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유 사장: 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오늘보다 내일이 더 희망찬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해 보입니다만.김 이사장: 소설을 쓰면서 선배들에게 들은 이야기 중 하나는 어깨에 힘을 빼라는 거예요. 골프를 시작하면서도 역시 선배들이 어깨에 힘을 빼라고 이야기합디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선배들로부터 힘을 빼라는 조언을 듣는다고 합니다. 힘이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힘을 빼라고 말합니다. 힘을 빼라고 하는 것은 이를 악물지 말라는 것과 같은 얘기입니다. 오늘의 정치는 이 악물고 하는 정치예요. 힘을 빼야 합니다.유 사장: 선생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시간가는 줄 모르겠습니다. 이사장님의 새해 소망을 말씀해 주시죠.김 이사장: 개인적으로는 2년6개월 전에 담배를 끊고 난 뒤 집중이 안돼 글을 못 쓰고 있습니다. 소설을 쓸 수 있는 근력을 되찾았으면 하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공동체 의식을 회복해 다함께 잘 사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정리 = 권오준 기자 / 사진 = 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