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련 많았어도 희망을 노래하자

2006년 당신은 진정 행복했나요?’한 해가 저물어 간다. 하루가 아무리 길어도 지나고 나면 찰나다. 그렇게 365일이 ‘잠깐’ 지나가고 있다.그래서일까. 사람들의 ‘현재’는 항상 사람들의 ‘과거’를 밀어낸다. 온 나라를 충격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일도 시간이 지나면‘그런 일이 있었나?’하고 되묻는다. 하지만 ‘과거’는 소중한 자산이다. 꼼꼼히 기록하고 되묻는 자만이 풍성한 미래를 맞이할 수 있다.우리가 알고 넘어가야 할 2006년 경제 문화계 이슈들을 정리해 봤다.잘 견뎠다. 수없이 거친 풍랑이 몰아쳤지만 한국 경제는 견뎌냈다. 그리고 지혜롭게 헤쳐 나왔다. 무엇보다 일년 내내 환율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1008원(1월 2일)으로 시작된 원·달러 환율은 5월 8일 950원 선이 무너지고, 12월 7일에는 913원까지 추락했다.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 기업들은 일년 내내 ‘환율 공포’에 시달리며 ‘비상 경영 체제’를 가동했다.환율뿐이 아니다. 내수 경기는 부진을 면치 못했다. 회복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몰려갔던 기업들도 고전의 연속이었다. 그렇다고 그동안 기업들을 옥죄어 왔던 각종 규제가 완화된 것도 아니다. 이처럼 2006년은 기업들에는 ‘시련의 해’로 기억될 듯싶다. 이러다보니 서민 경제도 움츠러들었다. 주머니 사정은 더욱 나빠졌다.환율이 기업들을 울렸다면, 집값 폭등은 서민들의 가슴을 마구 헤집어 놨다. 현재 서울·수도권 지역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는 강남 삼성동 아이파크다. 아이파크 55평의 최근 매매가는 최고 32억 원이다. 2001년 55평 분양가가 7억 원이었으니 최초 입주자는 5년 만에 25억 원을 번 셈이다. 강남 지역에 국한됐던 집값 폭등은 서울 전 지역을 비롯해 수도권으로 확대됐다.부동산 정보업체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올 1~11월 수도권 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지난해에 비해 29.2% 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 상승률보다 16.7%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이렇게 되자 평범한 샐러리맨의 내 집 마련은 거의 불가능해졌다.정부는 ‘버블 세븐’ ‘투기와의 전쟁’ ‘부동산 필패론’ 등 다양한 어휘와 각종 규제를 동원해 집값을 잡겠다고 호언했지만 결국 공염불에 그쳤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집값 폭등이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기업도시·혁신도시 등 전국적인 개발계획, 고분양가로 인한 집값 상승 압력 증가 등으로 분석한다. 실수요자들의 불안심리가 가중되고 전세난이 심화된 것도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외롭지는 않아요. 주변에 워낙 많으니까요.’ 거리에 청년백수가 넘쳐난 것도 2006년 한국 경제의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청년실업률이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9월 기준으로 20대 청년실업률은 7.2%. 전체실업률(3.2%)의 두 배 이상이다. 20~29세 취업자 수는 월평균 407만2000여 명으로 1995년(502만2000여명)의 비해 95만 명 줄어들었다. 이는 1985년 406만8000명 이후 가장 적은 수치다.청년실업 문제는 개선될 희망이 보이지 않을 뿐더러 나날이 악화돼 가고 있다. 청년실업이 심화되고 있는 것은 경기 침체의 장기화로 기업의 고용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눈높이가 높은 것도 문제다. 어느 설문조사에서 청년실업자의 50%가 ‘중소기업에는 가지 않겠다’고 답변한 것은 이러한 세태를 반영한다.이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를 모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론스타는 국내 금융계를 사정없이 흔들어 놓으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3월 론스타는 스타타워 빌딩 매각과 관련해 국세청이 부과한 세금 1400억 원을 낼 수 없다며 국제심판원에 심판청구를 제기했다. 우리나라와 미국이 맺은 조세조약의 맹점을 악용해 막대한 차익을 거두고도 세금은 한푼도 낼 수 없다는 투기 자본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셈이다.검찰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수사에 강력 반발하더니 기어코 7조 원에 이르는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계약당사자인 국민은행은 물론 매각 컨설팅을 했던 메릴린치, 삼성증권, 씨티그룹 등은 앉아서 막대한 손해를 봤다.한·미 FTA도 올 한해를 뜨겁게 달군 이슈다. 찬반논쟁이 가열되면서 국론 분열 양상마저 띠고 있다. 정부는 60억 원의 홍보·광고비를 들여 적극적인 홍보전에 나설 계획이며, 농민단체와 시민단체들은 한·미FTA범국민운동본부까지 설립해 반대운동에 나서고 있다. 폭력과 공공기관 방화사태로까지 번진 최근 한·미 FTA 반대 시위는 이해 당사자 간 반목의 골이 심각한 수준임을 나타낸다.한·미 FTA 협상은 지난 6월 워싱턴에서 1차 회의가 열린 이후 이미 5차례에 걸쳐 협상이 진행됐지만 결론을 내지 못하고 2007년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FTA 협상의 핵심은 관세 양허(Tariff Concession)다. 특정 품목에 대해 일정 수준 이상으로 관세를 부과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의미한다. 공산품 섬유 자동차 등에 있어서는 우리가 미국에 관세 양허 확대를 요구하는 반면 미국은 의약품 농산물 등에서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쌀을 비롯한 농산물이 최대 민감 품목이다.2006년 재계의 최대 화두는 ‘두바이’와 ‘사회공헌 열풍’으로 요약된다. 이건희 삼성 회장, 이재현 CJ회장, 최태원 SK회장 등 재계 오너들이 줄줄이 다녀간 곳은 바로 ‘천지개벽’ 중이라는 두바이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10월 두바이를 방문, 삼성물산이 짓고 있는 세계 최고층 빌딩 ‘버즈 두바이’를 찾았다. 두바이 지도자 셰이크 모하메드에게서 창조 경영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때부터 ‘창조경영’은 재계의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다.재계가 두바이에 흠뻑 빠진 이유는 뭘까. 중동의 두바이는 열사의 불모지에서 세계적 금융허브이자 쇼핑과 관광의 명소로 거듭난 곳이다. 두바이 개혁의 아이콘으로 통하는 ‘에미리트 몰’은 사막 한 가운데 실내 스키장과 쇼핑시설을 설치해 구미 관광객들을 유치한다는 대담한 발상의 산물이다. 당분간 두바이로 가는 행렬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과 개척정신을 가진 두바이는 재계에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기에 ‘기막힌’ 장소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올 한해 재계에는 나눔 경영 열풍이 특히 뜨거웠다. 사회공헌이 기업의 당연한 역할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삼성 전체 임직원 15만여 명은 올해 총 200만 시간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사회공헌에 보냈다. 또 당초 임직원 참여율 95%를 목표로 했던 기대치를 넘어 97%의 직원이 참가한 ‘함께 하는 봉사’라는 결실을 얻었다. 활동비로만 올 한 해 총 5000여억 원을 사용했다.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이 올 들어 20여 차례 직접 현장을 다니며 나눔 경영에 앞장서고 있다. 최 회장은 소외계층에 보낼 김장을 직접 담그는 등 현장에서 평사원들과 똑같이 비지땀을 쏟았다. 이에 따라 SK그룹은 연인원 4만3000여 명이 1인당 연 15.2시간, 총 21만 시간의 자원 봉사활동을 펼쳤다. 2006년은 기업들의 나눔 경영이 기존의 이벤트성에서 벗어나 하나의 기업 문화로 정착된 원년으로 기록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