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금융 자존심 지키는 ‘검투사’
국제금융 전문가로 정평이 나 있는 황영기 우리금융지주(이하 우리금융) 회장(54)이 <한경비즈니스>가 뽑은 ‘올해의 베스트 CEO’에 선정됐다. 지난 2004년 우리금융 회장 겸 우리은행장으로 부임한 황 회장은 인사 시스템 혁신, 인재 육성, 성과주의 문화 정착을 비롯해 윤리 경영,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 개성공단지점 개설, 은행과 증권을 결합한 복합금융 센터 개설 등 변화의 패러다임을 여는 작업에 큰 역할을 해 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황 회장 부임 후 우리금융은 2004년 말 그룹연결기준 137조 원 수준이던 자산 규모를 2006년 3분기 말 199조1000억 원 수준으로 45% 이상 키워냈다. 수익성도 향상돼 2004년 1조300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한 데 이어 2005년 1조6882억 원, 올해 3분기까지 1조5972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두는 등 3년 연속 1조 원 이상 당기순이익 달성에 성공했다.황 회장은 또 지난해 4월 LG투자증권을 인수해 우리증권과 합병하고 6월에는 우리투신운용과 LG투신운용을 합병해 국내 6위의 자산운용사인 우리자산운용을 출범시키는 등 비은행 부문 역량 강화에도 힘써 왔다. 이를 통해 은행과 비은행 부문의 복합금융 서비스 제공이 가능해져 고객만족도도 높아졌다는 평가다. 2004년 3월 30일 황 회장 취임 당시 8850원이던 우리금융 주가도 2006년 12월 기준으로 2만 원대로 높아진 상태다. 따라서 2004년에 ‘주목할 만한 CEO’에, 지난해에는 ‘베스트CEO’ 에 오른 황 회장이 올해는 금융권 최고 점수로 올해의 CEO로 선정된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황 회장은 사실 일찌감치 지난 2001년 ‘올해의 CEO’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삼성증권 사장이었던 그는 증권 업계에 대변화의 바람을 몰고 와 화제가 됐다. 그는 당시 정도 경영을 선언하고 증권 업계 전체의 발전을 위해 소모적 약정 경쟁을 중단하고 고객 중심의 종합투자은행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후 약정 중심의 직원 평가제를 폐지했으며 고객 요구(needs)에 따른 맞춤형 금융 서비스를 도입했다. 또 종합자산관리와 인베스트먼트 뱅킹(IB) 강화 등을 통해 증권업의 선진화를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황 회장이 오늘날 국제금융 전문가로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삼성그룹 회장비서실에서 일한 것이 계기가 됐다. 1975년 삼성물산에 입사한 그는 그룹 영어경시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비서실 국제금융팀 발령을 받았다.이후 골드만삭스, 씨티은행 등과 접촉하며 국제금융 전문가로 차츰 인정받기 시작했고 전문적 국제금융 지식의 필요성을 느껴 런던정경대(LSE)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곳에서 재무관리를 전공한 그는 1981년 뱅커스트러스트은행 서울지점에서 기업금융 부장을 지냈다. 1986년에는 뱅커스트러스트은행 도쿄지점에서 국제자본시장부 아시아 지역담당 부지점장을 맡았다.황 회장은 평사원으로 직장생활을 시작해 입사 25년 만에 CEO 자리에 오른, 이른바 ‘샐러리맨의 기적’을 이룬 인물이다. 따라서 샐러리맨의 기적을 이룬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황 회장 역시 ‘독한’ 면이 있다. ‘CEO는 검투사와 같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좌우명을 갖고 있을 정도다.황 회장은 우리금융을 은행과 비은행부문의 사업포트폴리오 균형을 갖춘 명실상부한 종합금융그룹으로 성장시켜 국내는 물론 외국 금융사와의 경쟁에서도 토종 금융의 자존심을 지키겠다는 각오다. 그가 외국 금융사와의 맞대결 등 앞으로 있을 싸움에서도 진정한 검투사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지 주목된다.황영기 우리금융지주 회장1952년생. 75년 서울대 무역학과 졸업. 81년 영국 런던정경대 대학원 석사. 75년 삼성물산 입사. 94년 삼성전자 자금팀장. 98년 삼성생명 투자사업본부장. 2001년 삼성증권 사장. 2004년 3월 우리금융지주 회장 및 우리은행장.©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