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은행’ 지휘… 금융계 ‘신화적 거장’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68)은 금융계의 살아있는 신화다. 동종 업계는 물론 재계 전체를 통틀어 가장 드라마틱한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다. 상고 졸업 학력으로 최대 금융사의 장수 최고경영자(CEO)가 됐다는 점에선 국민적 귀감이라 할만하다. 특히 올해는 LG카드 인수라는 초대형 이슈를 발판 삼아 기라성 같은 스타 CEO들을 물리치고 ‘2006 올해의 CEO’ 베스트10에 선정됐다. 이는 2002년 이후 4년 만의 ‘컴백’이다.라 회장의 저력은 ‘최초의 은행장 3연임, 금융지주회사 회장 연임’이라는 기록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된다. 임기조차 채우기 쉽지 않은 국내 금융업 환경을 감안하면 더욱 빛나는 성과다. 더구나 그는 1999년 금융계를 떠났다가 2년 만에 복귀, 지금의 신한금융지주를 일궈냈다. 당시 회장직을 여러 차례 고사했지만 신한은행 임직원들과 재일동포 주주들이 간곡하게 청해 끝내 물리치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진작부터 신한은행 내부에선 “지주회사 CEO는 응당 라응찬 회장이 맡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널리 퍼져 있었을 만큼 독보적인 지명도를 갖추고 있었다.라 회장은 올해 대외 활동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음에도 ‘올해의 CEO’ 선정단의 큰 지지를 받았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사상 최대 인수·합병(M&A)으로 불리는 LG카드 인수 때문이다. 조흥은행과의 통합으로 은행 부문의 덩치를 키운 한편 LG카드 인수로 비은행 부문을 보강, 완벽한 금융그룹 모델 완성에 한걸음 가까이 다가섰다는 평이다. 단숨에 카드 업계 1위이자 국내 금융그룹 2위의 지위를 확고히 굳혔다. 이뿐만 아니라 이제 리딩뱅크 자리를 놓고 국민은행과 경쟁을 벌일 수 있는 위치로까지 올라섰다.특히 인수 성공 배경에 라 회장 특유의 판단력이 작용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지면서 그의 경영 감각이 또 한번 화제가 되기도 했다. LG카드 입찰 제안서 접수 마감일인 지난 8월 10일, 라 회장은 현장에 있던 실무진에게 전화를 걸어 이미 의견조율이 끝났던 입찰가 수준을 주당 1000원 정도 더 올려 적으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 있는 수’로 신경 써 골라 인수가격을 6만8410원으로 결정했다는 설도 있다. 뚜껑을 열어보니 신한금융지주는 하나금융지주를 간발의 차로 따돌렸다. 가격 요소에서 두 기관 간 점수차는 불과 1점 이내로, 7조 원대 거래가 불과 70여억 원 차이로 갈렸다. 결국 라 회장이 던진 막판 승부수가 적중한 것이다.이처럼 라 회장은 강력한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개인보다 조직이 먼저’라는 지론을 대쪽처럼 고수해 주주와 직원들의 존경을 이끌어내 왔다. 특히 라 회장에게 인사나 대출 청탁은 절대 통하지 않는 ‘금기’나 다름없다. 라 회장과 신한은행의 인연을 맺어준 김준성 전 부총리의 부탁을 거절한 일은 이미 잘 알려진 일화다.하지만 한편으로 겸손하고 자상한 성품 또한 그의 본모습이자 강점으로 꼽힌다. 직원들과 소박하게 어울리며 교유하길 즐기지만 밖으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것은 매우 꺼린다. LG카드 인수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평에 대해서도 무척 부담스러워한다는 후문이다.그럼에도 자신을 낮춰 원만한 대인관계를 일구고 이를 통해 국내와 일본에 탄탄한 인맥을 확보, 현재의 신한지주를 만들었다는 것에는 별 이견이 없다. 실제로 ‘라 회장이 없었으면 지금의 신한은 없다’는 말이 있을 만큼 그의 존재는 절대적이다.최근 한 조사에서 라 회장은 금융회사 CEO들이 가장 벤치마킹하고 싶은 CEO로 꼽혔다. 이건희 회장,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득표 결과였다. 그런 라 회장이 또 어떤 ‘전설’을 만들어낼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라응찬 신한금융지주 회장1938년 경북 상주 출생. 선린상고 졸업. 59년 농업은행 입행. 75년 대구은행 비서실장. 77년 제일투자금융 이사. 82년 신한은행 상무. 91~99년 신한은행장. 99년 신한은행 부회장. 2001년 신한금융지주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