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남미 등 거대시장 진출 ‘징검다리’

멕시코는 최근 떠오르는 신흥시장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나라다. 은 납 아연 등 광물자원이 풍부하고, 세계 5위 산유국이자 세계 8위 원유 수출국이다. 멕시코만 일대에서 끊임없이 탐사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어 추가적인 원유 확보 가능성이 높다.하지만 멕시코가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거대시장으로 통하는 최적의 입지조건 때문이다.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미국과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해 무관세 수출의 혜택을 누리고 있으며, 일본 유럽연합(EU) 등 세계 43개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는 ‘FTA의 허브 국가’다.그렇다고 멕시코 자체의 소비시장이 작은 것도 아니다. 멕시코는 1억7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인구 대국 중 하나다. 최근 꾸준한 경제 성장과 함께 멕시코인들의 구매력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멕시코의 1인당 국민소득은 7600달러지만,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 계산하면 1만600달러에 달한다.‘브릭스’ 개념을 창안한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이런 멕시코의 잠재력에 주목해 ‘Next-11’ 국가 중 멕시코를 한국과 함께 경쟁력이 가장 높은 나라로 꼽았다. ‘정크본드의 황제’로 이름을 떨쳤던 미국의 투자가 마이클 밀켄도 미국이 중국과 인도의 무서운 성장세에 대항하기 위해 손잡아야 할 첫 번째 나라로 멕시코를 들었다.멕시코는 1980년대 초반 외채 위기를 겪은 이후 무역자유화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해 왔다. 그 결정판이 1992년 체결돼 1994년부터 발효된 NAFTA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에 체결된 첫 FTA인 NAFTA는 멕시코 경제 발전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1993년 400억 달러에 불과했던 대미 수출이 3배 이상 급증해, 미국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수출을 많이 하는 나라가 됐다. NAFTA의 원산지표시 규정을 준수하면 멕시코에서 생산된 제품은 무관세로 미국 시장에 수출할 수 있다.골드만삭스, ‘멕시코에 주목하라’이에 따라 1994년 이후 전 세계 기업의 멕시코행이 줄을 이었다. 현재 미국의 ‘빅3’를 비롯해 도요타 닛산 폭스바겐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모두 멕시코에 공장을 두고 있다. 초기에는 소형 승용차, 자동차 부품, 산업용 기계, 컴퓨터, 전자기기, 수송기기, 가공식품, 기초석유화학 분야의 외국인 투자가 주를 이뤘지만 저임금으로 무장한 중국이 부상하면서 2000년 이후에는 금융, 수송, 통신서비스 부문으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는 상황이다. 멕시코는 자체 기술과 브랜드는 취약하지만 조립·공정 분야에서는 뛰어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멕시코를 북미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삼는 기업들이 늘면서 국내에서도 1995~97년 한차례 ‘멕시코 투자 붐’이 불었다. 하지만 곧이어 터진 외환위기로 투자가 위축된 이후 멕시코가 지닌 전략적 중요성에 비해 좀처럼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현재 멕시코에서 가장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는 한국 기업은 LG전자다. 1988년 처음 멕시코에 진출한 LG전자는 PDP TV, 세탁기, 에어컨 등 8개 부문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멕시코에서만 7억2400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LG전자의 매출 성장세는 극적이다. 1997년 1억 달러를 돌파한 이후 2000년 2억 달러, 2002년 5억 달러, 그리고 지난해 7억 달러를 돌파했다.물론 멕시코에도 불안 요인이 적지 않다.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이 빈곤층일 만큼 빈부격차가 심하고,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는 마르코스 부사령관이 이끄는 사파티스타민족해방군이 정부에 맞서 활동하고 있다. 올 초 대통령 선거에서는 NAFTA 재협상 문제가 쟁점이 되기도 했다. 멕시코 국내총생산(GDP)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원유, 해외 거주 멕시코인의 국내 송금, 관광 수입 등이다. 이는 멕시코 산업의 미개척 분야가 그만큼 많다는 것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