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년엔 땅 사지 말라’…신망 쌓아
명문가의 기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종택’(宗宅)이 온전하게 보존돼 있는지를 그 기준으로 삼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의 전통으로 한곳에 정착해 살아왔기 때문에 이웃에게 신망을 얻지 못하는 가문은 명문가로 존경받을 수 없었다. 민란 등 사회적 격변기에는 패악을 일삼은 일부 양반가들의 경우 대대로 살아온 종택조차 온전하게 보존하기 힘들었다.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서처럼 동학혁명 등 사회적 격변을 거치면서 지역민들을 못살게 군 일부 악덕지주들은 처단의 대상이 됐을 뿐만 아니라 종택마저 불에 타는 수모를 당했다. 대구폭동 때는 노동자를 착취했다며 공장들이 불에 타기도 했다.11월28일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해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부자로 통하는 경주 최 부잣집의 사랑채가 복원됐다고 한다. 1970년에 원인 모를 화재로 불탔던 사랑채가 36년 만에 옛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악행을 저지러 불에 탄 양반가문의 사랑채였다면 결코 복원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 사랑채는 최 부잣집을 존경받는 부자로 만든 상징물로서의 의미가 있다.최 부잣집이 12대, 300여년 동안 부를 이어온 배경은 다름 아닌 ‘절제’와 남에 대한 ‘배려’였다. 경주 최 부잣집은 최진립(1568~1636)과 아들 최동량, 손자 최국선에 이르러 재물이 쌓이면서 ‘진사 이상 벼슬 금지’ 등과 같은 가훈을 정하고 실천해 최준(1884~1970)에 이르기까지 12대, 300년간 존경받는 부자로 명성을 누렸다.오늘날 경주 최 부잣집이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쌓은 부(富)의 쓰임새와 부자로서의 도덕성에 있다. 이들 원칙이 이른바 최 부잣집의 수신의 철학인 ‘육연’과 제가의 철학인 ‘육훈’에 담겨 있다. 먼저 최 부잣집이 ‘청부’(淸富)로서 신망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장기적인 안목에서 부의 안정을 도모했다는 데 있다. 여기에 부합하는 원칙이 육훈 가운데 하나인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말라’다.조선시대에는 흉년이 들면 수천명씩 굶어죽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당장 굶어죽지 않기 위해 논밭을 그야말로 헐값으로 내다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 부잣집은 가난한 사람들의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던 이런 논밭은 사들이지 않았다. 최 부잣집은 다른 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이용해 잇속을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즉 최 부잣집은 ‘최대’보다 ‘차대’(次代)를 선택함으로써 장기적인 안목에서 부의 극대화와 안정을 도모했다. 재물이 넘치면 결국에는 시기와 질시를 받게 되고 이는 장기적으로는 불안정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또한 최 부잣집은 요즘 기업에서 가장 중시되는 ‘이미지 관리’에도 탁월한 안목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복원된 사랑채는 과객(過客)에게 항상 개방돼 있었다. 조선시대 양반들의 사랑채를 찾은 과객은 신분상 선비나 풍류객, 협객, 잔반(殘班) 등이었다. 이들은 세상의 소식을 알고 있었던 ‘정보전달자’라고 할 수 있다. 경주 최 부잣집에 이들은 세상 돌아가는 정세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정보 창구의 역할을 했다. 더불어 과객은 최 부잣집의 존재를 세상에 알려주는 자발적인 ‘홍보맨’ 역할도 했다. 이들은 각 지방을 다니면서 최 부잣집의 후한 인심과 높은 학덕을 널리 알렸고, 그 때문에 팔도 전역에 최 부잣집 인심이 더욱 알려지게 된 것이다.최 부잣집은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유산’이 무엇인지를 되새겨보게 한다. 최준의 손자인 최염씨는 독립자금을 댄 할아버지의 수행비서를 했지만, 할아버지가 전 재산을 대학 설립에 사용하는 바람에 한푼도 물려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최염씨는 “최 부잣집의 후손이라는 것만큼 더 값진 유산은 없다”고 말한다.최근 종합부동산세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아파트를 6채 이상 보유한 ‘집부자’가 무려 3만9,000여명이라고 한다. 이들은 ‘세금폭탄’을 맞았다며 조세저항조차 불사할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큰돈을 물려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가문경영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상징인 경주 최 부잣집은 오늘날 ‘신뢰의 위기’를 맞고 있는 재벌가의 기업경영, 나아가 노무현 정권의 국가경영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이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