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이 만든 어른들의 동화박찬욱이 컴백했다. 〈복수는 나의 것〉으로 시작, 〈올드보이〉를 거쳐 〈친절한 금자씨〉로 마무리된, 장장 5년여에 걸친 복수 3부작의 바통을 이어받은 주인공은 바로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감독 스스로 ‘잠시 쉬어가는 작품’이라 명명했지만 ‘월드스타 비와 박찬욱의 랑데부’ 등으로 일찌감치 회자돼 왔으며, 작품 자체로도 주목받을 만큼 신선하다. 어느 날 ‘몸에서 총알이 나오는 소녀’의 꿈을 꾼 박찬욱 감독은 이 인상적인 꿈 이야기를 초현실적인 커플의 기묘한 로맨틱 스토리로 발전시켰다.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오지만 더욱 엉뚱한 꿈과 사건을 키워가는 이곳은 정신병원. 여기 형광등을 꾸짖고 자판기를 걱정하며 자신을 사이보그라고 생각하는 소녀 영군(임수정)이 새로 들어온다. 남의 특징, 성격 등 무엇이든 훔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소년 일순(정지훈)은 그녀를 유심히 관찰한다. 사이보그는 밥을 먹으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점점 야위어만 가는 영군을 위해 일순은 제 능력을 총동원하고, 둘은 점점 가까워진다. 결국 사이보그가 고장 나면 언제든 달려가겠다며 ‘평생 애프터서비스’를 약속한 일순, 그리고 사이보그는 그러면 안되건만 자꾸 일순 때문에 맘이 설레는 영군. 알콩달콩 소꿉놀이 같은 사랑은 어떻게 될까?고차원적 동화 격인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박찬욱 최초의, 일종의 로맨틱 코미디다. 복수 3부작을 마친 후 편안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그가, 준비 중이던 〈박쥐〉를 미뤄둔 채 ‘딸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든 것. 강렬하고 음울한 색으로 암흑 같은 인간의 운명을 표현한 그는 혹여 사라질까 두려울 만큼 창백하고 순수한 색채의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와 함께 세 작품째 호흡을 맞추고 있는 미술감독 류성희가 “감독님도 사랑을 아세요? 로맨틱 코미디가 가능하시겠어요?”라고 농담처럼 되물을 만큼 낯선 조합일 수도 있다.하지만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사랑에 앞서 이해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이 사랑할 수 있는 건 치료받아서가 아니라 이해하고 공감하며 인정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세계에 들어가야 비로소 사랑이니까. 이 점은 이 영화가 박찬욱의 전작과 가장 다른 동시에 가장 닮은 지점이다. 편견을 부수며 쾌락을 선사했던 박찬욱은 동정의 시선을 거두고 존재하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태도로 다시 한 번 세간의 고고한 통념을 뛰어넘는다.비(정지훈)에게 섹시함을, 임수정에게서 음울한 고요함을 통째로 빼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웃기고도 슬픈 이야기가 될 것이다. 웃긴다면, 그건 바로 엉뚱한 이들의 모습에 당신을 발견하기 때문이고 슬프다면, 우리는 결코 이들처럼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q윤혜정·월간 보그(Vogue) 기자 kidult27@doosan.com개봉영화▶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 3D크리스마스 애니메이션의 고전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의 악몽〉이 다시 찾아온다. 3D로 업그레이드된 신기한 마법과 환상의 세계를 목격할 수 있다. 일상이 무료한 할로윈 마을의 호박왕 잭 스켈링턴이 사람들의 축제인 크리스마스를 접수할 음모를 꾸미면서 시작되는 이야기. 편광안경 너머 더욱 생생해진 유령 악동들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팀 버튼과 헨리 셀릭 감독이 또다시 합심했으며, ILM사의 디지털 귀재들이 프레임 하나하나를 디지털화해 감동을 배가했다. 감독 헨리 셀릭. 주연 크리스 서랜든, 캐서린 오하라 등.▶Mr. 로빈 꼬시기다니엘 헤니가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봄의 왈츠〉 이후 수많은 러브콜 중 고른 영화 데뷔작이자 베테랑 엄정화의 컴백작. 외국계 M&A회사에 근무하는 민준은 넘치는 매력의 소유자지만 밀고 당기는 기술에는 서툴다. 그런 그녀 앞에 퍼펙트가이가 나타났으니, 바로 민준이 근무하는 회사의 새로운 CEO. 수려한 외모와 빛나는 지성의 소유자인 그를 유혹해야 하는 상황에 온 민준, 과연 성공할 것인가? 로맨틱 코미디로 적당한 소재와 매력적인 배우, 〈중독〉, 〈오로라공주〉 등의 음악감독 정재형이 설계한 OST 등 이래저래 재주가 많은 영화. 감독 김상우. 출연 엄정화, 다니엘 헤니 등.▶이사벨라1999년 12월 마카오가 중국으로 반환되기 전의 세기말적 여름을 감각적인 영상과 음악에 담은 영화. 비리에 연루돼 쇠락한 경찰 싱은 유흥가를 떠돌다 얀을 만나 하룻밤을 보낸다. 싱에게 얀은 그저 하룻밤을 보낸 상대였지만, 얀은 자신이 그의 딸이라고 주장하고 급기야 둘은 이상한 동거를 시작한다. 정말 두 사람은 부녀지간이었을까? 마카오의 불안하고 음습한 공기를 담은 영화를 즐기기 위해서는 약간의 인내와 호기심, 또한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감독 팡호청. 출연 두문택, 이사벨라 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