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드·판단력·추진력 ‘놀라워라!’

과연 기회는 찾는 자의 몫일까. 2000년대 들어 명문기업으로 우뚝 선 프라임, S&T, 유진, C& 등 4대 신흥재벌 오너들의 성공스토리를 들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들은 볼품없는 중소기업으로 사업을 시작해 자사보다 몇 배나 덩치가 큰 기업들을 사들이는 괴력을 보여줬다. 그것도 이미 부도가 났거나 자금난 등으로 남들이 거들떠도 보지 않는 기업들이 대다수였다.불량식품을 먹거나 과식을 하면 배탈이 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갖지 못한 ‘소화능력’을 자랑했다. 이는 신흥그룹의 오너들이 단순한 기업사냥꾼이 아니라 미래 안목이 뛰어난 기업경영의 ‘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능력은 어떻게 가진 것일까.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비교적 작은 규모지만 자신들이 직접 기업을 경영하면서 생존의 법칙을 배운데다 기업을 보는 통찰력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기업 규모가 커졌다고 해서 ‘책상경영’에 머물지 않고, 현장에서 임직원들과 동고동락하며 온몸으로 경영하는 스타일도 이들의 공통점이다.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54)은 광주고와 전남대를 졸업했다. 1975년 건설업체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84년 소형 주택건설사인 호프주택건설을 설립하며 독립했다. 88년 프라임산업을 세우며 본격적인 디벨로퍼의 길을 걷는다. 98년 강변역 테크노마트 개발로 대박을 터뜨리면서 ‘테마상가 원조 디벨로퍼’라는 별칭을 얻었다.2000년대 들어 한글과컴퓨터, 프라임상호저축은행, 삼안 등 위기에 처한 기업들을 인수해 되살린 이후 ‘기업 리모델링 전문가’로도 불린다.중국 춘추전국시대 법가(法家) 사상의 하나인 ‘형명참동 신상필벌’(形名參同 信賞必罰)이 그의 경영철학이다. 사업계획(名)과 실적(形)이 부합하면 상을 주고 아니면 벌을 내린다는 뜻으로 자율 속 책임경영체제를 확고히 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3·3·3·1제도’를 도입했다. 10% 이상의 수익을 달성하면 수익의 30%는 재투자, 30%는 주주배당, 30%는 직원 인센티브로 할당하고 나머지 10%는 사회에 환원한다는 원칙이다.하지만 그를 원칙만 고집하는 경영자로 봐서는 곤란하다. 형식이나 권위적인 것을 무척 싫어한다. 요즘도 휴일이면 수행비서 없이 지하철을 타고 테크노마트, 명동 아바타, 광명 크로앙스 등을 돌아다닌다. 고객의 시각에서 무엇이 부족한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다.특유의 친화력도 백회장의 장점으로 꼽힌다. 그는 언론 인터뷰나 강연과 같은 대외활동은 가급적 고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룹 내에서는 ‘마당발’로 불릴 정도로 활발하게 임직원들을 만난다. 매달 초 서울시 구의동 프라임센터에서 열리는 임원 조찬회도 백회장의 아이디어다. 사업 특성상 한곳에 모여 있지 못하는 그룹 임원들을 위해 정보교류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그는 매년 보름간 다녀오는 우수 직원들의 유럽 배낭여행에도 빠지지 않고 함께한다.임병석 C& 회장(45)은 85년 한국해양대 해양학과를 졸업했다. 전공을 살려 5년 동안 마도로스(항해사)의 길을 걸었다. 항해사로 승선생활을 하던 중 세상이 너무 좁다고 느껴 창업을 꿈꾸게 됐다. 90년 스물아홉의 나이에 자신의 돈 500만원과 4,500만원을 빌려 칠산해운이라는 조그만 회사를 설립했다. 칠산해운은 선박·화물 중개업무를 하던 회사로 연료탄 운송사업 매출이 증가하면서 돈을 꽤 모으게 됐다.95년 회사이름을 쎄븐마운틴해운으로 바꾸고 해운업에 본격 진출한 그는 2002년 세양선박을 인수하며 해운업계의 ‘무서운 별’로 떠올랐다. 세양선박은 51년 설립돼 77년 주식시장 상장된 유서 깊은 해운전문기업이다. 이후 황해훼리, 필그림해운, 세모유람선, 진도, 우방, 생활경제TV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승승장구했다.그는 항해사 출신답게 치밀하게 준비하고 행동하는 경영자다. 평일 퇴근시간은 오후 10시가 넘어서다. 해운업은 각종 해운지수, 운임, 환율 등 다양한 변수들에 의해 시시각각 변한다. 그가 거의 매일 오후 10시 넘어 런던에서 발표하는 해운지수 등을 직접 확인한 후 퇴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늘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움켜쥘 수 있다”고 강조한다. 비교적 큰 자금을 투입하지 않고도 많은 기업들을 인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이 같은 치밀한 준비에 있다. M&A 대상을 정할 때도 이미 검증된 법정관리기업들을 공략했다.최평규 S&T그룹 회장(54)은 경희대 기계공학과 출신이다. 71년 대학을 졸업한 최회장은 발전부품 관련 업체에서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다. 그러다가 78년 처갓집 식구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하지만 이듬해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귀국하자마자 그는 13평짜리 아파트를 판 돈으로 직원 6명과 함께 삼영기계공업사를 차리며 경영자의 길에 들어섰다. 알짜 중견기업 대표로만 알려졌던 그는 2003년 통일중공업을 시작으로 대화브레이크, 경우상호저축은행, 호텔설악파크 등을 줄줄이 인수하면서 국내 M&A(인수·합병) 시장의 ‘실력자’ 소리를 듣게 된다.그는 스피드경영을 강조한다. ‘생각 즉시 행동’은 그의 경영지침이기도 하다. 이는 모든 일에 관심을 갖고 임해야 한다는 ‘관심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평소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있으면 급변하는 환경으로 인해 위기가 닥치더라도 슬기롭게 대처하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즉시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현장경영, 정도경영, 투명경영’은 그의 경영모토다. 특히 현장을 중시하는 경영자다. 항상 작업복 차림으로 근무하는 현장밀착형 경영으로 46년간 적자에 시달리던 통일중공업을 인수 1년 만에 흑자기업으로 돌려놓았다. 당시 인수와 함께 통일중공업 창원공장에 내려간 그는 365일 머물면서 직원들과 동고동락했다.분기별로 경영실적에 대한 경영설명회를 개최하고, 이를 전 사원이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투명경영에도 매진했다. 그는 직원들의 사기진작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지난해 S&T중공업 생산직을 포함한 전 직원 1,200여명에게 1인당 1만주씩의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을 부여하는 ‘파격경영’으로 화제를 모았다.이뿐만 아니다. 직원 자녀들을 대상으로 2주간 ‘청소년 영어캠프’를 개최하고 있으며, 성적이 우수한 20명의 자녀를 선발해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2주간 해외어학연수를 실시한다. 물론 연수비용은 전액 회사에서 지원한다. 직원가족까지 챙기는 세심한 감성경영에 직원들의 호응이 높은 것은 당연한 이치다.유경선 유진그룹 회장(51)은 연세대 중문과를 졸업했다. 80년대 초 부친(유재필 명예회장)의 사업에 참여해 경영수업을 받았다. 80년대 중반 이후 그룹의 레미콘사업을 맡아 국내 1위로 올려놓는 저력을 보여줬다. 레미콘사업에 뛰어들 때만 해도 남들은 ‘레미콘은 이제 한물갔다’며 말렸지만, 그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건물이 올라갈 허허벌판이 널려 있고, 레미콘은 담보가 없으면 물건을 주지 않는 공급자 중심의 시장이라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그는 철인(鐵人) 경영자로 불린다.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에서 2시간 58분의 기록을 세운 강철체력을 자랑한다. 트라이애슬론은 올림픽 공식종목으로 수영 1.5㎞, 사이클 40㎞, 마라톤 10㎞를 쉬지 않고 달려야 하는 경기다. 이 때문인지 유회장은 일단 결정하면 강하게 밀어붙이는 힘이 대단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2004년 주식시장 상장기업이던 고려시멘트를 인수할 때도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로 과감한 판단력과 추진력을 자랑했다.유회장은 인재육성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광산에서 사금을 캐 모으듯 정성스럽게 인재를 모셨다”며 ‘사금경영론’을 신주단지 모시듯이 한다. 그는 “시설에 100억원을 투자하면 사람에게도 100억원을 투자해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외부 인재 유치에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으며, 사내교육에도 연간 60억~70억원을 쓰고 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도 누누이 강조해 왔다. 유진은 96년 어린이복지재단을 설립해 부천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해 오고 있다. 맞벌이 직원 부부의 자녀가 집에 방치돼 있다가 화재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재단을 설립하는 계기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