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격·불법 쟁의에 사측 새 노조 설립으로 대응..."자주성·민주성 없는 어용노조 인정 안 해"
[법알못 판례 읽기] 아무리 기존 노동조합(노조)이 폭력적인 쟁의 행위 등을 이어 갔더라도 회사 측이 만든 노조, 즉 ‘어용노조’는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 1, 2심에 이어 3심에서도 나왔다. 2011년 유성기업 내 복수의 노조가 생긴 지 10년 만에 나온 결론이다.금속노조 산하의 유성기업 영동지회와 아산지회는 2011년 1월 ‘주간 연속 2교대제 도입’을 위한 협상을 진행했지만 합의를 끌어내지 못했다. 이에 원고 노조(금속노조)는 주간 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 도입을 관철하기 위해 각종 쟁의 행위에 돌입했다.
회사 측은 직장 폐쇄를 단행하며 맞섰다. 이 과정에서 원고 노조는 노동조합법이 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은 쟁의 행위나 폭력적인 쟁의 행위를 하기도 했으며 회사 측의 일부 위법한 직장 폐쇄도 이뤄졌다.
유성기업, 기존 노조 무력화 위해 사측 노조 설립
회사 측은 ‘주간 연속 2교대 도입’과 관련된 노사 분규가 계속되자 2011년 4월 한 노무법인의 자문을 통해 ‘온건·합리적인 제 2노조 출범’, ‘건전한 제2 노조 육성’ 등의 내용이 담긴 대응 전략을 받았다.
같은 해 7월 노동조합법의 개정으로 하나의 사업장에 복수 노동조합이 존재할 수 있게 되자 회사는 수차례의 정기적·비정기적 전략 회의를 통해 사측 노조를 설립했다.
노무법인은 사측 노조 설립을 전후해 회사에 보낸 각종 문건에는 원고 노조 소속 조합원과 피고 노조 소속 조합원 간에 징계 양정에 차등을 둔다든지, 임금 협상에 원고 노조와 피고 노조 사이에 차등을 둔다든지 하는 등의 대책을 기재했다.
그러자 금속노조는 “사측이 설립한 노조는 무효”라며 사측 노조를 상대로 노동조합 설립 무효 확인 소송을 냈다.
1심은 “사측 노조 설립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노동조합법에서 규정하는 노동조합이란 근로자가 주체가 돼 자주적으로 단결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 기타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도모함을 목적으로 조직하는 단체 또는 그 연합단체를 말한다”며 “사용자 또는 항상 그의 이익을 대표해 행동하는 자의 참가를 허용하는 경우, 경비의 주된 부분을 사용자로부터 원조 받는 경우,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등의 사유에 해당하는 때에는 노동조합으로 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노동조합법이 노동조합의 설립에 관해 위와 같은 신고주의를 택한 취지는 노동조합의 조직체계에 대한 행정관청의 효율적인 정비·관리를 통해 노동조합이 자주성과 민주성을 갖춘 조직으로 존속할 수 있도록 보호·육성하려는 데에 있다”며 “동조합이 해당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 노동조합의 설립은 무효”라고 판시했다.
재판부 “노조는 자주적으로 단결해야”재판부는 사측 노조의 성격에 대해 “피고 노조는 설립 자체가 피고 회사가 계획해 그 주도하에 이뤄졌고 설립 이후 조합원 확보나 조직의 홍보, 안정화 등 운영이 모두 피고 회사의 계획 하에 수동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밖에 없는 바, 피고 노조는 그 설립 및 운영에 있어 사용자인 피고 회사에 대한 관계에서 자주성 및 독립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어 “비록 과거 상당기간 지속돼 온 원고 노조의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쟁의행위에 대응해 건전한 노사문화 형성의 필요성이 강하게 요구되는 상황에서 일부 근로자들이 이와 뜻을 같이해 새로운 노동조합의 설립을 의도했다 하더라도 사용자인 피고 회사가 그 설립부터 설립 이후 안정화, 세력화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주도적으로 개입한 피고 노조는 근로자들에 의해 자주적, 독립적으로 설립된 노동조합으로 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불복한 사측은 항소했다. 유성기업 노조 측은 “노동조합법 및 관계 법령 어디에도 노조 설립 무효 소송을 제기할 근거가 없다”며 소송이 부적법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2심 역시 사측 노조 설립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사측은 원고 노조와 심한 갈등을 겪는 과정에서 외부 자문 등을 통해 피고 노조(사측 노조)의 설립 과정 전반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논의했고 특히 피고의 설립신고서, 규약, 회의록 등 노동조합의 설립 취지 등이 담긴 핵심적인 요소들에도 개입했다”며 “따라서 원고 노조의 세력을 약화시키고 새로운 노조를 설립해 관련 지위를 확보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으로 치밀한 기획 하에 설립, 운영된 피고 노조는 노동조합으로서의 자주성 및 독립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사측은 설령 사측 노조가 그 설립에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 시점부터는 스스로 자주성과 독립성을 갖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러한 사측의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사측은 피고 노조가 설립된 이후에도 직원들에게 피고 조합원으로의 가입을 독려하며 피고를 과반수 노동조합으로 만들기 위한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했다”며 “피고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한 논의는 매우 구체적으로 이뤄졌고 실제로 그 계획대로 상집간부 회의, 노보 창간, 홈페이지 오픈, 노동조합 현판식, 간부 교육 등이 순차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2심에 이어 3심까지 재판이 이어졌지만 결론은 같았다. 대법원은 “헌법 제33조 제1항이 근로자에게 노동3권을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것은 근로자가 사용자와 대등한 지위에서 단체교섭을 통해 자율적으로 임금 등 근로조건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러한 노사 간 실질적 자치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노동조합의 주체성과 자주성이라는 전제가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노동조합의 조직이나 운영을 지배하거나 개입하려는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에 의해 노동조합이 설립된 것에 불과하거나, 노동조합이 설립될 당시부터 사용자가 위와 같은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려는 것에 관해 노동조합 측과 적극적인 통모․ 합의가 이루어진 경우 설령 그 설립신고가 행정관청에 의해 형식상 수리되었더라도 실질적 요건이 흠결된 하자가 해소되거나 치유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효”라고 설명했다.
돋보기〉2021년 노조법 개정, 노사관계 영향은?
2021년에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 개정되면서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이 허용되고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 규정이 삭제되면서 올해 노사 관계가 지난해보다 더 불안해질 것으로 전망된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회원사 403개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1년 노사 관계 전망 조사’ 결과를 지난 3월 1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59.8%는 올해 노사 관계가 작년보다 더 불안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노조법 개정이 노사 관계를 불안하게 할 것이라고 답한 기업 비율은 64.2%에 달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노조법 개정안의 핵심은 해고자·실업자와 소방공무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등 노조의 단결권을 강화하는 것이다. 단체협약의 유효 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사업장 핵심 시설 내 쟁의 행위를 금지하는 등 등 경영계의 요구도 반영됐다.
하지만 경영계는 그 무엇보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비준이 시기상조라고 반발했고 노동계 역시 경영계의 요구가 반영된 일부 내용이 독소 조항이라며 반발했다.
남정민 한국경제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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