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최정예 투자은행 만들 터’

교보증권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국내 1호 증권사이면서도 이렇다 할 특징도, 주특기도 없이 많은 중소 증권사 가운데 하나였던 과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규모면에서 중소 증권사인 것은 다름이 없지만 중소기업에 특화된 ‘투자은행’(IB)으로서 튼튼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이다.기업공개(IPO) 건수 1위, 해외채권(BW/CB) 발행 점유율 1위, 총액인수 유상증자 건수 1위가 지난해 교보증권의 성적표다. 그 결과 IB사업의 전체 매출 비중은 업계 평균 10%를 훌쩍 뛰어넘은 40%에 이르게 됐다. 국내업계에서 가장 선진화된 매출구조를 가지게 된 셈이다. 이런 추세는 올해도 이어지고 있다. 최명주 교보증권 사장은 이를 “색깔이 없던 회사에 색깔이 생긴 것”이라고 표현한다.교보증권의 화려한 변신은 최사장이 취임하면서 시작됐다. 컨설턴트 출신인 최사장을 두고 일각에선 CEO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앞날을 우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회색빛 전망’은 멀찌감치 빗나갔다. 오히려 최사장은 베테랑 컨설턴트답게 회사의 강점을 ‘콕’ 집어내 이를 성장의 발판으로 삼는 ‘솜씨’를 발휘했다. 하지만 정작 최사장은 “없던 것을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있던 것을 발견했을 뿐”이라고 짐짓 몸을 낮췄다.중소기업에 특화된 IB사업으로 주가를 올리고 있습니다. IB사업을 강화한 배경은 무엇입니까.교보증권은 대형사들에 견줘 내세울 무기가 없었습니다. 규모도 작고 브랜드 인지도도 높지 않고 인적·물적 인프라도 취약했죠. 그렇더라도 경제학자 리카르도가 말하는 ‘비교우위’가 반드시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남보다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발전시키지 못하면 회사는 물론 고객도 힘들어지게 마련인 만큼 ‘비교우위’ 요소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다행히도 특징 없는 회사라고 생각했던 교보증권에 막상 와 보니 IB부문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두고 있더군요. 특히 IPO부문은 매년 3위 안에 들 정도로 경쟁력이 있었습니다. 이거다 싶었죠.문제는 ‘비교우위 요소를 어떻게 특화할 것인가’에 대한 방법론이었습니다. 교보증권은 ‘혁신형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IB사업에 무게중심을 두기로 했습니다. 이 사업을 ‘기관차’ 삼아 전체가 앞으로 나가자는 전략이었죠.투자은행을 선언하는 은행, 증권사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 부문에서도 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어떤 대응책을 마련해 놓으셨습니까.혁신형 중소기업에 대한 IB를 더욱 강화할 방침입니다. 우선 올해 전사적 ‘1인 1기업 섬기기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1,004개의 혁신형 중소기업을 발굴, 육성할 방침입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해당 기업의 임직원에게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해 리테일 영업력과 시너지효과도 제고할 계획입니다. 지난해에는 ‘이노비즈 IB센터’도 설립했습니다. 3만여개의 혁신형 중소기업 가운데 300여개를 선별해 집중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정했습니다. 현재 이노비즈협회, IT벤처협회, 바이오벤처협회, 중소기업연구원 등과 제휴를 맺은 상태이고 지금까지 2,300여개의 기업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네 차례 ‘바이오기업 투자유치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노비즈 전용펀드를 설정해 한층 효과적인 자금조달도 지원할 예정입니다.컨설턴트 경력이 경영에 도움이 됩니까.주로 외국계 컨설팅 기업에서 일을 해서 선진경영 사례를 많이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섣불리 적용하면 오히려 낭패를 봅니다. 글로벌 스탠더드는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지만 글로벌 베스트 프랙티스(Global Best Practice)는 함부로 채택할 대상이 아닙니다. 지금도 많은 기업이 이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대로 해도 되는 것, 하면 안되는 것, 약간 변형하면 되는 것 등 3가지로 나눠 도입해도 되는 것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취임 당시 ‘나침반이 되겠다’는 각오를 밝히셨습니다. 나침반은 잘 작동하고 있습니까.‘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로 한 말이었습니다. 나침반이 언제나 바른 길을 알려주듯이 경영도 편법이나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 원칙과 정도를 지켜야 성장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IB사업을 예로 들면 설혹 교보증권엔 손해가 나더라도 고객이나 투자자에게 있는 그대로 진실을 전달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제대로 된 ‘복덕방’ 노릇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최사장은 IB를 기업과 투자자를 잇는 복덕방 사업이라고 표현했다). 현재 전사 사업평가에서 ‘나침반 경영 평가 지수’를 평가하고 있으며 모든 지사에 나침반 정신을 알리는 포스터를 붙이는 등 잘 작동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조직문화를 바꾸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요물론입니다. 하지만 그것 역시 CEO의 과제입니다. 크게 보면 두 가지 길이 있을 겁니다. 하나는 못하는 사람을 다그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잘하는 사람을 부추기는 것입니다. 전자는 규제와 내부통제의 길이고 후자는 자율통제의 길입니다. 저는 후자를 택했습니다. 경영목표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을 내치기보다 상대적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을 챙겨주면서 자연스럽게 문화가 바뀌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물질적 보상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갈길이 아직 멀고도 멀었습니다.조직문화에서 특히 강조하는 사항이 있습니까.처음 교보증권에 와서 받은 느낌은 자신감이 부족하고 부서간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신감과 패밀리십(Familyship·조직원간 화합을 나타내는 교보증권의 고유어)은 조직에서 일종의 인프라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잘한 일은 적극적으로 포상하고 성공담은 서로 공유합니다. 또 어려운 상황에 처한 동료를 무엇보다 먼저 챙기는 등 화합의 문화를 만들고 있습니다.IB사업의 성공을 위해 특히 중요한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금융공부를 하고 금융권에서 경력을 쌓을수록 결국 ‘사람이 답’이라는 믿음이 굳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역량과 이를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하는 조직의 역량이 결합돼야 최상의 IB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경영자의 몫 역시 조직원의 잠재력을 일깨우고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회사나 경영자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습니다. 다만 열심히 도와줄 뿐입니다. HR팀에 끊임없이 ‘가장 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를 내놓으라고 다그치는 것도 이를 위해서입니다.교보증권의 미래상을 그려주십시오.무엇보다 아시아형 IB가 뭔지를 보여줄 겁니다. 아시아 기업의 특징에 걸맞은 IB사업의 모델을 만들어갈 방침입니다. 고객을 가장 잘 아는 IB, 고객의 일을 내 일처럼 불편 없게 생각하는 IB를 추구해 ‘동북아 최정예 투자은행’으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선 기업의 의사결정자와 기업의 색깔을 꼬치꼬치 추적하고 관리하고 활용해서 해당 기업과 가장 잘 어울리는 IB를 해나가겠습니다. 관계형 뱅킹(Relational Banking)을 제대로 해 잘되는 기업을 더 잘되게 해보자는 거죠. 한번 고객은 평생 고객으로 만들어나갈 것입니다. 1회성 IB나 컨설팅이 아니라 고객과 IB가 함께 크는 전략이죠. 중소기업 가운데 대기업이 나오고 글로벌 기업이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란 견해도 많지만 궁극적으로는 교보증권이 성장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재임기간 중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습니까.교보증권을 모든 임직원과 그 가족들이 이구동성으로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으로추천하는 일터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뿐입니다.약력: 1956년생. 74년 대구상고 졸업. 78년 서경대 경제학과 졸업. 81년 서울대 경제학 석사. 91년 옥스퍼드대 경제학 박사. 74년 한국은행 입행. 80년 산업연구원 연구원. 89년 세계은행 국제금융국 컨설턴트. 98년 보스턴컨설팅그룹 금융고문. 2000년 IBM BCS 부사장. 2005년 교보생명 상임고문. 2005년 5월 교보증권 사장(현)정리=변형주 기자 / 사진=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