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명옥국회의원(한나라당)약력: 1954년 인천 출생. 79년 연세대 의과대학 졸업. 87년 차병원 산부인과 과장. 92년 연세대 의과대학 의학박사. 98년 UCLA 보건학 박사. 2004년 한나라당 국회의원(현). 국회보건복지위·국회여성가족위·국회 저출산 및 고령화사회 대책 특별위원회 간사(현)며칠 전 정부가 발표한 국가 장기발전전략 보고서인 ‘비전 2030’은 현재까지 큰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 비전 실현을 위한 재원인 1,100조원 내지 1,600조원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은 밝히지 않은 채 1인당 국민소득 4만9,000달러와 국가경쟁력 순위 10위 달성, 국민 삶의 질 10위 달성 등 환상적인 목표치만 제시하는 행태에 대해 국민들은 신뢰를 보내기 힘들 것이다.‘비전 2030’의 기저에 흐르고 있는 중심 철학은 복지는 소비가 아니라 미래성장을 위한 투자라는 것이다. 좋은 생각이다. 이러한 철학하에 복지 지출 비중을 40%까지 끌어올려 정책목표를 달성한다는 기본구상이다. 국민들로부터 1,100조원 내지 1,600조원의 세금을 더 거둬들인, 호주머니 두둑한 큰 정부가 복지 분야 투자를 주도해 나가면 좋은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성공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계획에 확신이 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의 정책기조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한 상황에서 집권 후반기에 내놓은 같은 색깔과 무늬의 장밋빛 청사진이 과연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까? 국민이 납득할 수 없는 정책은 성공할 수 없다.성장과 분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고 공언했던 참여정부가 들어선 이래 소득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2분기 기준 도시근로자가구 소득 5분위 배율도 2003년 5.00, 2004년 4.93, 2005년 5.13, 2006년 5.24를 기록하는 등 소득재분배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 2001년 2분기 이후 낮아지는 조짐을 보이던 생활경제고통지수는 이 정부 들어서 꺾일 줄 모르고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는 2003년 129만2,690명, 2004년 133만7,714명, 2005년 142만5,684명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반면, 수혜자로부터 벗어나는 소위 탈수급자는 2003년 20만6,578명, 2004년 17만3,817명, 2005년 16만7,544명으로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지난해 모 경제지가 직장인 7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참여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 대한 질문에 ‘분배에 우선을 두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무려 82%나 됐다. 또한 정부의 분배 우선 정책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는 반대가 80명, 찬성이 40명, 그리고 550명은 ‘장기적으로 분배 정책은 필요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응답했다. 현 정권이 분배 우선 정책기조를 견지해 왔지만, 현실적으로 아직은 시기상조의 방향이라는 게 직장인들의 대체적인 평가라고 할 수 있다.‘성장이냐 분배냐’ 하는 해묵은 논쟁에 대해선 어느 경제학자도 명쾌한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분배의 개선 없이 성장한 나라가 없으며, 경제성장의 지속 없이 분배가 개선된 경우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이런 관점에서 볼 때도 막대한 세금을 거둬들여 복지혜택을 늘리겠다는 단순한 방식으로는 ‘비전 2030’이 그리는 꿈같은 현실은 다가오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때그때 퍼주는 식의 시혜적 혜택으로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 경제연구소들이 내년도 성장률을 4%대로 전망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내년도 복지 부문 예산을 올해보다 무려 10%나 늘려 62조원을 편성했다고 한다. 복지예산이 크게 늘고 있지만 양극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는 것은 세금을 갹출해 일방적 시혜를 베푸는 기존 방식이 더 이상 효과적이지 못하다는 걸 방증하는 것은 아닌가?변화하는 시대흐름에 맞게 복지 패러다임도 바뀌어야 한다. 한국이 처한 현실을 감안할 때 복지정책은 민간투자 활성화와 고용창출 등을 통해 경제효율을 견지하면서 사회통합을 모색해나가는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은 거창한 계획이나 장밋빛 희망보고서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때가 아니다. 경제와 복지의 선순환 구조 회복을 위한 구체적 방안과 이의 실현을 위한 국민적 설득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