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현재 진행 중인 한·미 FTA협상에 대해 많은 국민과 다수의 이익단체들은 탐탁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 같은 부정적 시선은 협상의 당위성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내부적 협상절차를 충분히 거치지 않고 협상을 진행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훌륭한 목표와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내부협상 과정을 거치지 못한 상태에서 협상을 진행하는 협상팀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자신이 속한 조직으로부터 전폭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협상가가 협상을 제대로 진행할 리 없다. 조직의 지지가 없는 상태의 협상가는 상대방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다. 상대방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는 협상가는 신뢰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협상을 진행하는 것과 같다. 상대방이 내가 표현하는 말과 행동을 믿지 않는 상태에서 어떻게 협상을 제대로 진행할 수 있겠는가. 또 조직의 지지가 부족한 협상가는 소신껏 협상을 진행하므로 이상적인 협상결과를 추구할 수 없다. 불확실성이 언제나 내재될 수밖에 없는 협상 과정에서 나타나는 사소한 실수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성공적 협상의 방해물은 설득되지 않은 우군이다. 내부협상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던 경험은 협상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다. 협상의 어려움은 상대방과 만나는 시간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준비하고 계획한 협상의 내용에 대한 내부적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협상을 잘하는 조직이나 개인은 협상이 이렇게 두 번 진행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이에 따른 나름대로의 협상 노하우를 지니고 있다.우리는 종종 이런 말을 듣는다. ‘적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 있다.’ 이 말 뒤에는 협상 과정에서 자신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 외부의 상대방이기보다 내부에서 같은 목적을 갖고 함께 행동해야 하는, 우군이라고 믿었던 동료들이라는 경험이 숨어 있다. 내부협상 과정에서 적절하게 설득되지 못한 우군이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기 때문이다.성공적 협상을 위해 가장 먼저 넘어야 할 것은 협상의 목표와 방법에 대해 동의하지 못하는 내부자들을 설득하는 내부협상 과정이다. 내부협상은 우회할 수 없는 필수 과정이다.급한 성격으로 협상을 실패로 이끌어가는 사람은 내부협상을 우회할 수 있는 것이라고 종종 착각한다. 상대방과 협상을 통해 성공적인 결론을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내부적 의견조율은 나중에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순서를 바꿔도 안되고 생략할 수도 없는 것이 내부협상이다.내부협상을 소홀히 해 본협상에서 실패한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우자동차의 매각협상과 관련, 협상단은 노조를 설득하는 내부협상에 실패하면서 매각 본협상에서 노조의 반발을 불러왔고 결국 자신의 발목을 잡아 상대방에게 끌려다니는 단초가 됐다.또 하이닉스반도체의 매각협상을 진행하면서 협상단은 이사회 구성원을 설득하는 내부협상을 소홀히 해 결국 신뢰를 잃고 상대방에게 많은 힘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국력을 앞세워 지나치게 독선적으로 협상을 진행한다는 평가도 있지만 미국 통상협상단은 우리 정부에 비해 주도권을 쥐고 힘 있게 협상에 임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관리와 비교하면 훨씬 더 많은 권한을 갖고 국민과 기업 위에 군림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 정부의 통상협상단은 협상테이블에서 힘을 활용하지 못하고 대체로 수세에 몰리며 협상을 진행한다. 이 같은 힘의 불균형은 상당부분 실패한 내부협상에서 시작된다.성공하는 협상가는 언제나 내부적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필요한 권한을 충분히 갖고 준비된 자세로 협상테이블에 나온다. 그들은 협상의 결과 때문에 돌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할 것인가에 대해 신경을 쓰기보다 어떻게 하면 지금 진행하고 있는 협상을 잘할 수 있을까에 모든 힘을 쏟기 때문이다.미국 일리노이주립대 경영회계학 석사. 시카고 로욜라대학 법학 박사. 국제변호사이자 공인회계사. K&P홀딩스 대표. △저서: <비즈니스 협상론>, <상대를 내편으로 만드는 협상기술> 등.©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