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마다 권위원장이 기자들에게 하는 얘기가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별로 중요한 이슈가 아닌데 어떤 얘기를 해도 결국 기사의 주제는 출총제가 된다”는 푸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출총제보다 독과점규제에 공정위가 힘써야 할 것”이라고 틈만 나면 강조했다.실제로 권위원장이 취임 이후 전력을 기울이는 분야 중 하나가 ‘기업결합심사’다. 기업결합심사는 권위원장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이기도 하다. 권위원장은 지난 7월 기자들과의 오찬자리에서 “서울대 교수로 재직할 때 공정위가 기업결합심사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을 보면서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고 말했다. 자신이 재임하는 기간에는 기업결합심사를 보다 엄격하게 할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그러나 권위원장의 취임 이후 공정위가 맞닥뜨린 기업결합심사 안건들은 만만찮은 것들이다. 첫번째 시험대는 동양제철화학이 카본블랙업체인 미국 컬럼비안케미컬즈(CCC)코리아를 인수한 것. 이 인수건은 국내기업이 업계 세계 3위 업체를 삼켰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는데 문제는 동양제철화학이 CCC코리아를 인수할 경우 국내 고무용 카본블랙 시장에서 명백한 경쟁 제한성이 생긴다는 점이다. ‘국내시장 독과점 규제’라는 원칙과 ‘국내기업의 글로벌화’란 국가이익 사이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권위원장의 고민도 깊어졌다. 당시 권위원장은 심사결정을 위한 전원회의가 열리기 직전 주말에 관련자료를 모조리 집으로 가져가 이틀을 두문불출하며 고심했다. 결론은 동양제철화학의 공장 1곳 매각이란 단서를 단 조건부 승인이었다.권위원장이 두번째로 오른 시험대는 이랜드의 한국까르푸 인수건이다. 이 인수건은 국내 유통기업들에 대한 사실상 최초의 기업결합심사인데다 할인점업계 1위인 신세계 이마트의 한국월마트 인수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공정위로서는 부담스러웠다.공정위는 지난 8월30일 전원회의를 열고 약 5시간에 걸친 ‘마라톤 심사’를 했으나 결국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랜드 소유의 2001아울렛과 뉴코아를 과연 할인점으로 볼 수 있느냐를 놓고 위원들간에 의견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정위 실무진은 일부 지역의 2001아울렛 매장과 뉴코아 매장은 제품구성이나 가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할인점과 다를 바 없다는 결론을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좀더 엄밀하게 따져볼 여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공정위 실무진은 이번 심사에서 유통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을 따질 때 행정구역이 아닌 실질적 상권을 기준으로 따지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향후 다른 기업결합심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이랜드와 한국까르푸, 이마트와 한국월마트의 기업결합심사가 원활히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그다음에는 보다 어려운 상대가 권위원장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 국민은행의 외환은행 인수건이다. 지난 2004년 정부가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각종 의혹들이 제기돼 감사원의 감사뿐만 아니라 검찰수사까지 진행되고 있는 사안이다. 때문에 권위원장뿐 아니라 이 안건을 심사하는 공정위 실무진은 엄청난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오죽하면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이 지난 8월29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협상기간 종료일(9월16일)까지 검찰수사가 끝나지 않을 경우 외환은행 매각 계약이 마무리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하자 공정위 한 실무자가 “차라리 계약이 파기됐으면 좋겠다”고까지 얘기했을까. 권위원장은 지난 4월 “금융업은 여타 산업과 다른 측면이 있기 때문에 별도의 독과점 기준이 필요하다”며 국민은행의 외환은행 인수 관련 기업결합심사를 보다 엄격하게 진행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러나 금융업계는 물론 재경부 공무원들조차 “권위원장이 취임 초기라 아직 뭘 모른다. 공정위가 ‘인수불가’ 결정을 내리긴 어려울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권위원장이 취임 후 세번째 맞닥뜨린 난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