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에 정용진(사진) 시대가 열리고 있다. 롯데를 제치고 한국의 ‘유통황제’로 등극한 신세계의 경영권 승계에 가속도가 붙었다.신세계는 지난 9월7일 정재은 명예회장이 본인의 신세계 지분 7.82%를 모두 아들·딸인 정용진 부사장과 정유경 조선호텔 상무에게 증여했다고 밝혔다. 정회장의 지분은 147만4,571주로 정부사장에게 84만주, 정상무에게는 63만4,571주가 각각 증여됐다. 지난 9월6일 종가 기준(46만6,000원)으로 7,000억원 상당이다. 이로써 정부사장의 신세계 보유지분은 4.86%(91만7,100주)에서 9.32%(175만7,100주)로 늘어 이명희 신세계 회장에 이어 2대주주로 뛰어올랐다. 아직은 정상무와 함께 3,500억원으로 추정되는 세금을 내야 하는 문제가 남아 있지만, 조만간 정부사장이 경영 전면에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신세계의 경영권 승계작업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신세계와 함께 유통업계 ‘빅3’로 불리는 롯데쇼핑과 현대백화점은 각각 신동빈 부회장과 정지선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지어가는 단계다. 더구나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나이가 63세로 적지 않은데다 정부사장이 오랫동안 경영수업을 받아왔다는 점도 지분상속을 서두른 이유 중의 하나로 관측된다.정부사장은 이건희 삼성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의 고종사촌으로 68년생이다.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다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브라운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다. 1995년 신세계에 입사해 체인사업본부, 경영지원실 상무 등을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았다. 2000년에는 신세계 부사장으로 전격 승진했다.정부사장은 지난해까지 경영일선에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룹 고위 관계자들도 “현안에는 관여하지 않고, 그저 경영을 배우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거나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는 것이 신세계의 전통”이라며 정부사장이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은근히 내비치곤 했다. 그러나 올 들어 정부사장의 행보는 180도 달라졌다. 회사 공식행사에 잇따라 참석하면서 ‘베일에 싸인 황태자’라는 외부인식을 스스로 걷어내고 있다.기자들과의 만남도 꺼리지 않을뿐더러 특유의 솔직한 발언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과감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 그룹 경영권에 대한 욕심을 은연중에 내비치기도 했다. 지난 7월에는 “언제 어떤 일이 주어져도 잘할 수 있을 만큼 제 자신을 가꾸고 공부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고, 각종 경영현안에 대해서도 스스럼없이 분명한 견해를 밝힐 정도로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다.그러나 경영권 승계가 언제쯤 완전하게 이뤄질지는 지켜볼 일이다. 전문경영인인 구학서 사장에 대한 이명희 회장의 신임이 워낙 두터운데다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자식에게는 쉽사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는다는 삼성가의 전통을 감안하면 경영수업 기간이 생각보다 길어질 수 있다. 신세계측은 “이명희 회장 지분의 상속 일정은 정해진 바가 없다”고 밝혔다. 아무튼 재계 최초로 적법한 절차를 통해 거액의 증여세를 내고 지분을 상속받았다는 것은 정부사장이 향후 경영일선에 전면적으로 나서는 데 큰 힘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