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돈’… 외국 관광객은 펑펑족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워낙 복잡다단한 게 인간사회이다 보니 인간을 규정하는 말은 자고로 많다. 정치적, 사회적 동물이라는 측면에서 ‘호모폴리티쿠스’라 하고 근본적으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고 경제적 이해 관점에서 움직인다는 점에서는 ‘호모에코노미쿠스’라고 한다. 다른 동물과 달리 지혜가 있고 머리를 쓴다 해서 ‘호모사피엔스’라는 말이 일찍 쓰였고 두뇌가 획기적으로 발전했다는 점에서 슬기를 두 번 강조해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라고도 한다.인간을 설명하는 또 하나의 개념은 ‘호모루덴스’다. 네덜란드의 학자 호이징가가 규정한 이 말은 ‘놀이라는 인간’, ‘유희하는 인간’이라는 의미다. 인간만이 제도와 학습을 바탕으로 도구를 가지고 놀이를 한다는 것이다. 그가 ‘호모루덴스’라고 했을 때는 물론 문화와 축제, 유희라는 틀을 염두에 두었다. 노래를 듣거나 부르고, 바둑이나 체스를 두고, 온갖 프로운동에 열광하면서 주말에는 골프를 치고, 틈나면 영화를 관람하고, 휴가 내서 국내외 관광을 다니며, 카지노에 가는 한편, 일상적으로 TV를 보며 웃고 운다. 이렇듯 문명과 경제,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놀이의 내용은 더욱 다양해지고 자극의 강도도 강해진다.‘햇볕(Sunshine)의 주(州)’라는 미국 플로리다의 올랜도 외곽의 거대한 놀이공원 ‘디즈니월드’를 보면 과연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놀이를 하고, 늙으나 어리나 결국은 놀기 위해 사는 것 같다. 열심히 일해 돈을 버는 진짜 이유도 혼자서 또는 가족끼리 몰려다니며 놀기 위한 것, 재밋거리를 찾기 위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다.미키마우스라는 인류 역사상 걸출한 캐릭터 겸 상징물을 만들어낸 월트 디즈니의 꿈과 이상이 스며든 세계 최대의 테마공원이 바로 이곳이다. 미국은 물론 전세계적으로 자녀를 위해 또는 가족끼리 재미있는 한때를 보내려는 사람이라면 한 번은 방문하고 싶어 하는 곳이기도 하다. 1,000만평이 넘는다는 방대한 부지에 갖춰진 별난 시설들을 보면 상상가능한 놀이기구는 많고도 많다.빠른 속도로 돌면서 괴성을 지르고, 일부러 어둠 속에서 떨어져 놀라고, 물을 튀겨 옷을 버리면서 웃는 등 정신없이 노는 곳(매직 킹덤)이 한곳에 넓게 펼쳐져 있다. 그 옆에는(실제로는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다) 내일의 세계, 미래를 주제로 한 또 다른 방향의 과학적 놀이시설(엡콧, 미래관)들이 있다. 넓은 아열대의 수림 속에는 아프리카 사바나의 동물들까지 두루 옮겨놓은 사파리(동물의 세계)도 있고, 월트디즈니사의 계열 영화사인 MGM의 유명 영화를 주제로 하면서 영화, 영상과 관련된 또 다른 놀이거리를 한군데서 즐기도록 한 곳(MGM스튜디오)까지 4개의 큰 영역으로 나눠져 있다.놀이야말로 경제이고, 특히 탈공업시대의 탈출구라는 점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놀이시설들은 경제적 시간관리를 하면서 관람하도록 서비스되는데 한껏 즐기고 나오는 길, 감동이 사라지기 전 출구에서는 반드시 판매매장도 거친다. 물론 군데군데 먹고 마시는 곳과 아이들의 장남감이나 기념품을 파는 시설도 있다.미키마우스도 따지고 보면 생쥐를 예쁘게 의인화한 만화였을 뿐이다. 그러나 미키마우스로 시작된 방대한 놀이시설로 디즈니월드를 살펴보고 여기서 파생되는 일련의 경제적 파급효과와 경제적 부가가치까지 들여다보면 미키마우스와 디즈니월드는 고대 희랍인들이 여러 신을 만들고 가지를 계속 쳐 체계화된 신의 세계를 구축하면서 신전을 세웠고 이것이 오늘날 그리스가 내세우는 세계적 관광자원이 된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상상력을 동원해 가상의 세계를 만든 뒤 이를 뒷받침하는 현실을 계속 만들어 나가는 과정이 그렇다. 미키마우스가 선보인 지 반세기가 지났지만 오늘날까지 전세계적으로 미키마우스는 학용품과 옷, 장난감까지 온갖 형태로 어린이들 옆에 종교처럼 서 있다. 다만 그리스신화와 신전이 애초 영원과 불멸 같은 개념을 추구하면서 형성해낸 결과물이라면 미키마우스가 디즈니월드로 이어지는 것은 재미와 흥미라는 또 하나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만들어졌다는 점이 다르다. 경제적 의미에서는 둘 다 유사성이 많다.방문객마다 다르지만 미국에 체류하는 한국인들이 디즈니월드를 방문한 사례를 들어보면 대개 현지에서 3~4일 정도는 머무른다. 하루에 한 곳씩 테마공원에서 놀이를 즐기는 경우 어린이 1명(9세 이하만 적용)을 포함한 4인 가족의 경우 입장료만 800달러가 넘는다. 이 가족이 3일간 놀되 매일 테마공원을 옮기며(실제로 하루 한 곳을 충분히 보면서 다른 테마놀이장으로 이동하기는 시간상 쉽지 않지만) 즐길 수 있는 자유이용권을 끊으면 1,000달러쯤은 된다. 방문객들은 디즈니월드 안이나 주변 올랜도 일대의 숙박시설에서 묵고 음식을 사 먹으며 인형이다 뭐다 해서 최소한 방문 기념품도 몇 개씩은 산다. ‘메이드 인 차이나’ 상표가 선명히 붙은 조그만 자석 하나, 열쇠고리 하나가 4~7달러이고 아이스바 하나가 2.5달러다, 이런 방문객이 연간 3,000만명 이상이라고 한다.디즈니월드에서 멀리 벗어나 플로리다 남쪽에 ‘컴포트인’이라는 조그만 체인형 모텔로 들어가봤다. 4인 가족이 한방에서 하룻밤 묵고 가는 데 드는 숙박비는 할인받아 74.99달러였다. 여기에 플로리다주 세금 5.25달러와 해당 지역(카운티) 세금 5.50달러가 별도로 붙었다. 아무것도 없었을 광대한 아열대 수목지대에 들어선 놀이시설 디즈니월드가 플로리다의 지역경제에 한몫 하는 사례다. 수많은 플로리다 관광객들은 디즈니월드에서 혼을 빼놓을 정도로 ‘호모루덴스’에 충실했다가 아쉬움을 감추지 않은 채 다시 플로리다의 남단 키웨스트로 향하기도 한다. 조그만 섬, 카리브해에 접한 이 어촌으로,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살며 글을 쓴 곳이란 사실 하나에 명작의 고향을 찾고 돈을 쓰는 것이다.결국은 현대사회에서 경제를 일으키는 좀더 손쉬운 길은 3차산업, 특히 서비스산업의 육성으로 보인다. 미국은 디즈니월드로 관광객을 불러들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볼거리, 재밋거리를 수출하며 경제의 성장동력을 키워나간다. 곳곳에 별것도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관광상품화하고 있다.한국은 어떤가. 한국도 방향은 제대로 잡는 것 같다. 경기부양이란 말을 피하면서, 장기발전을 도모하는 경제의 신성장동력을 만들고 청장년층의 신규 고용창출을 이끌어내는 길을 서비스산업을 중심으로 한 3차산업에서 잡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최근 정부정책에서 서비스산업 육성이란 말이 자주 보인다.광복 이후 정부가 수립되고 근대화, 산업화 길을 겪으면서 세계 10위권 안팎의 경제강국으로 커 온 한국의 성장과정을 보면 결국 1차산업에서 2찬산업을 거쳐 3차산업으로 성장해 온 것으로 정리된다. 해방될 무렵 제대로 된 통계치도 없겠지만 농업 등 1차산업 인구는 최소한 80~90%선에 달했을 것이다. 그러나 5개년 경제개발기를 거치면서 농어업 인구는 계속 줄어 이제 한 자릿수가 됐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7월 현재 한국의 농림어업 인구는 194만7,000명으로 전체 경제인구 2,344만7,000명의 8%선에 불과하다. 비율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다. 공업 등 제조업 인구도 60~80년대 고도성장기에 계속 늘어났으나 이제는 정체 상태에 들어섰다. 이에 반해 통계청의 분류항목인 ‘사회간접자본 및 기타 서비스’ 부문은 지난 7월 현재 1,730만3,000명으로 전체 경제인구의 73%에 달한다. 물론 여기에는 좁은 의미의 서비스업종뿐 아니라 음식숙박, 도소매, 건설, 공공서비스, 운수창고, 금융까지 망라된 것이지만 이 분야 종사자는 절대수와 비중이 함께 늘어났다. 경제가 고도성장한 결과로, 혹은 이처럼 산업구조가 ‘범놀이 분야’에 속하는 서비스 부문 종사자가 확충되면서 국민총생산(GNP)은 늘어났고 경제는 성장한 것이다.사막에 신기루처럼 도박과 쇼의 불야성이 세워진 라스베이거스, 거대 자본과 첨단과학기술이 결합된 할리우드의 영화산업, 전세계 청소년들을 열광시키는 프로농구(NBA), 한국의 유선방송에도 서서히 파고드는 골프 관련 대회와 방송중계, 집집마다 보급되고 있는 DVD와 함께 성장하는 가정용 영화산업 등 ‘돈이 되는’ 미국의 놀이 관련 산업들을 보면 앞으로 21세기 경제는 ‘호모루덴스’라는 개념을 알아야만 풀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