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감을 찾으려면 로펌을 들여다봐라.”지난 6월2일 법무법인 해마루에서 변호사로 일했던 전해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민정수석에 발탁됐다. 지난해에는 김&장 법률사무소에 몸담고 있던 한덕수 전 국무조정실장이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에 올랐다. 앞서 2003년에는 당시 법무법인 율촌 고문으로 있던 이정재 전 재경부 차관이 금융감독위원장에 임명됐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도 법무법인 지평의 대표변호사로 재직했었다.국민의 정부 때 발탁된 이명재 전 검찰총장과 김창국 전 국가인권위원장도 취임하기 전 각각 법무법인 태평양과 법무법인 덕수에 몸담고 있었다. 로펌이 최근 들어 고위관료들을 배출하는 산실 역할을 하고 있다. 그만큼 로펌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얘기다.이런 로펌의 맨파워는 로펌들이 단기간에 급속 성장한 밑바탕이 됐다. 로펌들은 그동안 ‘첫째도 사람, 둘째도 사람’을 외치며 고위관료들에게 러브콜을 보내왔다.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은 서영택 전 국세청장을 비롯해 이주석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등 수많은 세무전문가와 김병일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과 전홍렬 금감원 부원장 등 경제계 고위관료들을 영입했다. 3위권 로펌인 태평양도 이에 못지않다. 관세청장을 지낸 김영섭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 이건춘 전 건교부 장관, 김수동 전 특허청장, 추준석 전 중소기업청장, 정재룡 전 자산관리공사 사장 등이 태평양에서 활동 중이다. 법무법인 광장과 법무법인 세종의 인력풀도 돋보인다. 광장은 조학국 전 공정위 부위원장을 고문으로 스카우트했고 세종은 류시열 전 은행연합회장과 백원구 전 증권감독원장, 김영태 전 산업은행 총재 등 쟁쟁한 경제계 인사들을 고문으로 끌어들였다.고위관료 출신들은 대부분 4~5개 정도의 대형 로펌에 자리를 잡고 있다. 대형 로펌들은 이들 고위관료와 발을 맞출 수 있는 변호사수도 이 기간에 급속히 늘렸다. 김&장 소속 변호사수(외국변호사 포함)는 2003년 222명에서 올해 311명으로 3년간 모두 89명이 증가했다. 법무법인 광장도 3년간 54명의 변호사를 채용했고 태평양과 세종도 같은 기간에 각각 28명과 37명을 보강했다.대형 로펌들이 규모의 경제를 앞세울 때 그보다 규모가 작은 로펌들은 대형화보다 ‘전문화’를 앞세웠다. 97년 7월 설립돼 현재는 변호사수로 6위권인 법무법인 율촌은 처음에는 조세와 공정거래 전문 로펌을 표방했다. 우창록 대표변호사와 율촌 설립멤버인 윤세리 변호사가 이끌고 있는 공정거래팀은 업계 최강으로 손꼽히고 있다. 오성환 전 공정위 상임위원과 예일대 법학박사 출신의 정영진 변호사 등이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소순무 변호사가 주축인 조세팀은 이재광 전 국세청 국장 등 5명을 영입, 21명의 전문가그룹을 만들어냈다. 초기에 수적 열세를 ‘특화’로 극복한 율촌은 이후 급속히 몸집을 불리며 대형 로펌 반열에 동참했다. 2003년 57명의 변호사가 전부였던 율촌은 현재 100명이 넘는 변호사를 보유한 대형 로펌으로 거듭났다. 이 과정에서 전문분야를 부동산과 금융 등으로 확대해 나갔다.이 같은 성과로 율촌은 2004년에 이어 2005년에도 영국의 유력 법률전문지 <글로벌 컴피티션 리뷰(GCR)>가 발표하는 ‘세계적인 100대 경쟁법 전문 로펌’에 선정됐다. 는 율촌에 대해 “꾸준한 전문가 영입으로 아시아지역 다른 로펌에 비해 높은 비율의 전문가그룹을 형성했다”며 “또한 휴렛팩커드, 노키아, 리얼네트웍스 등 다수의 다국적기업을 고객으로 유치했고 한국 자본시장의 국제화에도 크게 공헌했다”고 평가했다.9위권으로 분류되는 법무법인 서정의 성장도 주목받고 있다. 서정은 99년 7월 유순석 대표변호사 등 6명의 변호사가 주축이 돼 설립됐다. 서정은 외환위기를 도약의 기회로 삼은 케이스. 외환위기 이후 쏟아져 나온 부실채권 처리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부실채권 처리를 책임지는 자산관리공사(캠코)의 법률자문역을 맡은 것이 주효했다. 99년에는 부실채권시장 규모가 수십조원대에 이르렀지만 벌처펀드 등 채권 관련 컨설팅시장에 진입한 로펌은 전무했다. 서정은 이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외국 법률자문사들과 경쟁하면서 국내 유일 채권 전문 로펌으로 성장했다. 캠코가 99년에 시행한 NPL(Non Performing Loan·무수익여신) 1차 옥션 입찰에 참여한 업체 중 GE캐피털, 서머러스, 모건스탠리 등 3개 업체를 동시에 대리했을 정도다.서정은 부실채권시장의 독주체제를 발판으로 설립 4년 만인 2003년부터 송무분야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2003년 6월 김대웅 전 광주고검장을 대표변호사로 영입했고 2004년에는 삼성 기업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전무를 파트너변호사로, 박만호 전 대법관을 법률고문으로 모셔왔다. 서정은 5년 만에 변호사수 58명으로 몸집을 불리며 변호사수 100명권인 ‘톱5’ 진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정의 한 관계자는 “법률시장 개방에 대비해 변호사수를 100명선까지 늘릴 계획이며 동시에 전문화에도 더욱 힘쓸 계획”이라고 말했다.‘강금실 효과’로 급속 성장한 법무법인 지평도 이름 그대로 한국 로펌 역사에 새 지평을 열고 있다. 지평은 법인이름부터 ‘Horizon Law Group’으로 정해 설립자들의 성을 따 영문법인명을 만드는 여느 로펌과 차별화를 꾀했다. 지평은 창립 초기인 2000년에는 변호사수가 10여명밖에 안되는 소규모 로펌이었다. 지평은 규모 면에서 자사와 처지가 비슷한 벤처기업들을 적극적으로 공략했다. 이후 ‘벤처전문 로펌’으로 입지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지평은 벤처에서 닦은 명성을 다른 영역으로 확대해 나갔다. 남들 다 하는 소송과 기업 인수합병(M&A) 등으로 전선을 넓혀 나갔다. 주 고객도 벤처기업 외에 금융기관과 대기업, 외국기업으로까지 다양해졌다. 6년 만에 변호사수는 50명대로 5배 가량 늘었다.최근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으로부터 대표변호사 바통을 이어받은 양영태 대표변호사는 “지평은 다른 로펌과 달리 전문성과 공익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로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대형화와 전문화가 우리나라 로펌 성장의 주 배경이지만 정치적 환경변화 역시 로펌 성장사에 중요한 변수로 자리잡고 있다. 참여정부와 특수관계를 맺고 있는 로펌들은 지난 2년여 동안 급속 성장해 왔다.노무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가 소속돼 있는 법무법인 화우가 대표적이다. 인터넷 법률사이트 ‘로마켓’에 따르면 화우는 변호사수로는 5위지만 2년 반 동안(2003년 1월1일~2005년 6월30일) 소송건수에서는 김&장을 제외한 5대 로펌 중 1위를 차지했다.화우에는 지난해 4월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생명윤리 심의위원회 초대위원장을 맡았다가 최근 황우석 사태로 사임한 양삼승 변호사와 노대통령과 사시 17회 동기로 ‘8인회’의 핵심멤버인 강보현 변호사가 대표변호사로 재직 중이다. 또 지난해 열린우리당 추천으로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된 조대현 변호사도 화우 소속이었다. 이들 변호사는 2004년 노대통령 탄핵심판 때 대통령 변호인단으로 활약한 바 있다.문재인 전 민정수석이 대표로 활약한 법무법인 부산은 같은 기간 9,173건의 소송을 맡아 중소형은 물론 대형 로펌 등을 합친 전체 순위에서 2위를 차지했다. 또한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노대통령과 함께 근무했던 법무법인 해마루도 변호사수로는 35위에 불과하지만 수임건수에서는 12위에 올라 주목을 끌었다.정인설·한국경제 사회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