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 양승득 편집장‘수처작주’(隨處作主).손학규 경기도지사의 집무실에 들어서면 곧장 보이는 벽에 이 같은 사자성어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 손지사가 생활의 좌우명으로 삼고 있기도 한 이 말은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 있는 곳이 모두 진리’라는 뜻을 담고 있다. 중국 당나라 선승 임제의현 선사의 어록인 <임제록(臨濟綠)>에 수록된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入處皆眞)에서 나온 말이다.손지사는 경기도가 105개의 해외 첨단기업 투자유치라는 대규모 프로젝트를 달성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로 바로 이 주인정신을 꼽았다. 그는 “나의 역할은 그동안 경기도가 수행해 온 업무를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었을 뿐”이라면서 “공무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잘 따라와줘 계획했던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손지사는 해외 첨단기업 유치를 민선3기의 핵심사업으로 삼아 굳세게 밀어붙인 결과 지난 4년간 138억달러의 외자를 유치, 7만여개 일자리 창출의 성과를 거둬들였다. 그는 특히 이 과정에서 ‘발로 뛰는 행정’을 몸소 실천, 직접 세계를 누비고 다니며 ‘CEO지사’라는 닉네임을 얻었다.그는 현대자동차그룹 비자금사건에 대한 의견을 묻자 “비자금 조성과 변칙적 경영권 승계는 없어져야 하지만 한국 자동차 산업을 스스로 죽여서는 안 된다”며 정몽구 회장 구속에 반대의 뜻을 밝혔다. 이어 이번 사건에 대한 정부의 강경한 태도를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우는 격”으로 비유하는 등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도지사 임기를 이제 2개월여 남겨놓은 손지사는 “그동안의 성과에 대해 스스로 점수를 매기기는 어렵다”면서도 “원 없이 도지사 일을 했다”며 강한 자부심을 나타냈다.임기 동안의 성과에 대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경기도가 대한민국의 드라이빙 엔진으로서, 특히 첨단산업과 첨단기술 개발의 선봉장 역할을 해내고 교육과 문화산업의 기반을 구축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낍니다. 대한민국 발전을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고 경기도가 세계화의 선구적인 역할을 하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외자유치에 발벗고 나서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해외기업 유치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국내기업들의 시설투자 부진으로 인한 경기침체 때문입니다. 저출산·고령화, 청년실업 문제 등 ‘잠이 오지 않는’ 경제 난맥상 속에서도 정부는 분배문제를 거론하고 편 가르기로 소일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국가경제를 지탱할 가장 빠르고 효과적인 버팀목이 될 해외 첨단기업 유치에 발벗고 나선 것이죠.특히 첨단 산업기지 설립에 중점을 두었는데요.한국경제는 해방 직후 경인공업지대를 중심으로 한 봉제, 가발 등의 수출이 주류를 이뤘죠. 이후 면방직 중심의 대구로 넘어갔다가 70년대 중반에서야 중화학공업이 국내 산업의 중심이 되면서 동남해안으로 경제의 중심이 넘어갔습니다. 그러다 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 산업의 선도적인 역할을 IT를 비롯한 첨단산업이 하게 돼 경제의 중심이 다시 수도권으로 넘어왔습니다. 이는 수도권의 입주환경이 고급 기술인력 확보나 연구능력, 물류환경과 행정, 재정, 통신, 법률 등의 차원에서 기업에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기도는 그런 면에서 대한민국을 끌고나갈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래를 준비하는 차원에서 첨단과학 R&D에 투자하는 것이고 또 이런 외국기업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고 있습니다.경기도 내에서도 특히 파주가 각광을 받고 있는 듯합니다. LG필립스LCD단지와 영어마을이 그렇지 않습니까.의도적으로 파주를 집중 육성한 것은 아닙니다. LG필립스LCD 산업단지가 워낙 큰 프로젝트여서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이지요. 사실 첨단기술 외국기업의 경우만 봐도 평택과 화성에 집중돼 있습니다. 따라서 파주에 외자유치가 집중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파주에 LCD산업단지와 영어마을이 들어선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사실입니다. 과거 분단과 대결의 상징이었던 경기도 북부지역이 이제는 남북교류의 장이면서 새로운 번영의 근거지가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경기도는 휴전선과 불과 10㎞ 떨어진 접경지역에 파주 LCD산업단지를 유치함으로써 외국인투자가들의 안보 불안을 해소시켜 주고 있습니다.한반도의 전쟁위협에 대한 외국투자가 또는 기업들의 우려는 해외 첨단기업 투자유치에 큰 장애요소 중 하나입니다. 특히 휴전선과 인접한 경기도의 경우에는 이러한 문제에 더욱 민감합니다. 결국 파주 LCD클러스터는 산업적, 경제적 가치를 초월하는 ‘통일의 클러스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영어마을은 어떻습니까.영어마을의 아이디어는 청소년들이 세계와 편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존전략에서 나왔습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고 글로벌 사회의 생존수단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탄탄히 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살아 있는 영어를 배우고 문화를 체험함으로써 한국이 동북아 허브의 역할을 하는 데까지도 미리 준비하자는 것입니다. ‘글로벌 코리안’(Global Korean) 양성에 기여하겠다는 의미입니다. 대한민국이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려면 미래를 담당할 저소득층 자녀·농어촌지역 자녀를 비롯한 학생들의 영어교육 접근성 향상을 통한 ‘영어격차’(English Divide)의 극복이 이뤄져야 합니다. 영어마을은 양극화 해소를 위한 교육혁명의 모델이 될 것입니다.투자진흥과 직원을 비롯해 경기도 공무원의 이미지가 많이 바뀌었습니다.이미지만 바뀐 게 아니라 경기도 공직자의 자세가 실제로 바뀌었습니다. 주인의식, 긍지와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습니다. 공직자의 에너지는 긍지와 자부심입니다. 자신을 존경하는 마음이야말로 공직자가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는 원천입니다. 그래서 저는 중하위직 공무원들도 자신의 일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듀폰의 경우만 봐도 듀폰 이 경기도에 투자하도록 유인한 최초의 단서를 추진한 사람이 6급 공무원이었습니다.최근 현대자동차그룹 비자금사건과 관련, ‘정몽구 회장의 구속만은 절대 안된다’는 요지의 성명서를 발표했는데요.경기도가 100번째로 유치한 외국기업이 프랑스의 FCI라는 자동차 부품업체입니다. 현대차그룹과 거래하기 위해 투자를 결정한 자동차 관련 업체가 FCI를 포함, 25개사 8억달러에 달합니다. 비자금 조성이나 변칙적인 경영권 승계 등의 관행은 당연히 없어져야죠. 이번 사건을 계기로 대기업은 철저히 반성하고 앞으로 투명경영, 건전한 지배구조 등을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 국가는 기업의 투명성, 지배구조 건전성, 정상적인 승계 등도 중요하겠지만 우선적으로 국민의 생활을 책임져야 합니다.현대차그룹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한다고 봅니까.아마 저 역시 경기도지사로서 자동차 부품회사의 투자를 유치한 경험이 없었다면 이번 사건에 대해 법과 정의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도 젊은 시절 삼성재벌 밀수사건 규탄시위로 무기정학을 당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국민경제 기여’라는 요소는 염두에 두지 않았던 셈이죠. 그런데 델파이연구소, FCI 등 자동차산업을 접하면서 한국 자동차산업의 발전에 대해 경이로운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이들 기업이 바로 현대와 인연을 맺고자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전세계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발전을 놀라운 눈으로 바라보는 데 반해 우리는 자동차산업을 스스로 죽이려는 형국 아닙니까. 한 기업의 회장이 잘못한 사실에 대해 법의 잣대만으로 심판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성숙하게 한 국가를 책임지려 한다면 이런 경우 슬기롭게 대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업의 거버넌스(지배구조)도 바꾸고 대한민국의 소중한 자산인 글로벌 기업을 살리고 국민경제를 살려야죠. 그게 바로 일자리 아닙니까. 말로만 양극화 해소를 이야기하고 또 그 첫 번째는 일자리 만드는 일이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일자리를 없애는 일을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잘못된 경영관행, 오너의 전횡은 없어져야겠지만 검찰수사가 기업의 존립 자체를 흔들어서는 안된다는 의미로군요.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구속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기업은 많이 훼손됐습니다. 미국 조지아주의 기아차 공장 착공식이 두 번이나 연기됐고 슬로바키아 공장 건설 일정도 불투명하지 않습니까. 그렇지 않아도 최근 원/달러 환율이 떨어져 글로벌 기업으로서 수출전략 수정에 관심을 쏟아야 할 시기에 검찰에서 어떤 답변을 내놓을 것인가 등을 연구하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속 차원이 아닌 우리 생존에 직결된 문제입니다. 현대차그룹은 대한민국을 세계 자동차 5대 강국으로 만드는 엔진입니다. 이런 식으로 기업을 다뤄서야 어떻게 선진국을 건설하고 일자리를 만들겠습니까. 경기도지사로서 투자유치 활동을 해 오면서 흘린 피와 땀을 생각하면 정말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국가경제는 말로 이뤄지는 게 아닙니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일자리 하나를 더 만드는 게 중요한 것이지요. 이번 사건은 단순히 검찰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경영 차원에서 대통령이 판단해야 할 문제입니다. 현대차그룹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그저 법에 맡길 게 아니라 정치적인 판단을 해야죠.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워서야 되겠습니까. 기업은 살리고 기업 경영환경은 바꾸는 슬기와 지혜가 필요한 시점입니다.중앙부처 차원의 규제나 불필요한 절차가 투자유치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습니까.아마 저는 중앙정부의 간섭이 없었다면 훨씬 더 빨리 지금의 성과를 거둘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규제는 우선 수도권 규제와 행정적인 규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공장입지에 관한 규제는 대폭 지방에 이양해야 합니다. 지방자치시대 아닙니까. 지방에서 국내기업이든 해외기업이든 유치하기 위해 적극 뛰고 있으니 권한을 맡겨야죠. 잘못된 점은 사후 감사를 통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중앙정부가 사전 승인권을 두고 있으니 여러가지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또 지역적으로 수도권에 대한 규제가 많은 것도 그렇습니다. 한국의 수도권은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경쟁력이 있는 것은 살려야죠. 다른 지역과 차이가 난다고 해서 이것을 잘라내려 하면 되겠습니까. 무엇보다 수도권에 대한 중앙정부의 규제와 관련해서는 정부가 세계적인 마인드를 가져야 합니다. 경쟁주체가 수도권과 지방이 돼서는 안되죠. 세계와 경쟁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세계화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을 제대로 갖추는 중앙정부의 변화가 시급합니다. 그러한 문제들이 결국 행정의 스피드를 늦추는 요인이 되겠군요.저는 경기도의 행정 모토를 신속행정, 유연행정, 자율행정으로 정했습니다. 흔히 대한민국이 ‘빨리빨리병’에 걸렸다고 하지만 저는 ‘더 빨리 더 빨리’ 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 정신이 아니었다면 LG필립스LCD 산업단지 준공식은 아마 더 늦춰졌을 것입니다. 또한 법대로만 시행할 목적이라면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무엇 때문에 따로 두겠습니까. 모든 일을 법대로 처리하는 일은 말단 공무원도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필요하면 법을 어겨가면서라도 추진해야 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남은 임기는 어떻게 마무리할 계획인지요.무엇을 마무리한다는 생각보다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임기가 끝나는 시간까지 국가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사업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해외 첨단기업 유치, 영어마을, 한류우드 조성 등의 주요 사업이 모두 마무리보다 계속성을 유지해야 하는 국가인프라 구축 사업입니다. 경기도는 이제 아시아의 심장이자 두뇌를 목표로 해야 합니다. 강남~판교~분당~수원이 동북아 최대·최고의 지식산업벨트가 돼 고부가가치와 국부창출의 요람이 되도록 하는 체계적 육성전략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저는 그동안 이를 위한 초석을 다졌다고 생각합니다. 차기 도지사가 이를 더욱더 발전시켜 경기도를 아시아 지식산업의 메카로 조성하길 기원합니다.이제 곧 대권레이스가 시작됩니다. 일각에서는 대선주자로서 대중적 지지도 열세를 지적하기도 하는데요.대선주자로서 저는 좌우, 지역, 세대를 아우를 수 있는 통합과 경제번영의 적임자라고 자부합니다. 나라를 융성하게 만들고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기 위해 어떤 지도자가 필요합니까. 말로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 또 말로만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실제 기업에 도움이 되고 국민이 편안해질 수 있는, 또 젊은이들이 꿈을 키워갈 수 있게 하는 사람이 필요하죠. 이런 문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토론이 이뤄지고 또 대통령을 뽑는 시점이 가까워질수록 국민들이 꼭 필요한 사람을 제대로 뽑으리라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