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 최숙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전광희 충남대 교수, 안명옥 한나라당 국회의원, 손건익 보건복지부 정책총괄관(좌로부터)사회 : 김상헌 취재팀장인구감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됐다고 보긴 힘들다. 여자 1명이 가임기간 중 낳는 평균 자녀수를 나타내는 합계출산율이 1.16에 불과하다는 발표가 나온 뒤 위기감이 조금씩 확산되는 정도가 전부다. 세미나와 연구논문 발표가 이어지지만 ‘쇼크’로 보는 견해는 많지 않다. 그만큼 저출산 문제를 접하는 자세가 느긋한 편이라는 이야기다.문제는 ‘아이 낳지 않기’가 하나의 조류로 굳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획기적인 계기가 있지 않는 한 출산율이 지금보다 높아질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구감소는 곧 국력 쇠퇴’라는 우려가 무색하게, 정작 가임여성들은 출산율 하락에 무감각한 것도 현실이다.그러나 전문가들은 ‘인구감소는 미래의 일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재진행형의 중대 사안’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저출산 현상이 국력 쇠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도 이견이 없었다. 한마디로 ‘쇼크’ 이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위기를 제대로 인식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인구감소 쇼크를 최소화하고 저출산 문제를 지혜롭게 극복할 방법은 무엇인지, 2시간 동안 이어진 열띤 토론을 지상 중계한다.사회: 인구감소 문제는 사안의 중대함에도 불구, 사회적 인식은 미흡한 것 같습니다. 먼저 저출산 원인과 배경부터 알아볼까요.안명옥 의원: 저출산은 경제적 원인, 사회 가치관의 변화 등 복합적인 이유로 발생합니다. 특히 IMF 외환위기 이후 비혼(非婚), 만혼 풍조와 육아 및 교육 부담 등이 한꺼번에 나타나면서 심화되고 있어요. 결혼, 가족, 자녀에 대한 가치관이 변한 것도 빼놓을 수 없는데, 자식을 낳아 예쁘게 기르고 싶다는 욕구보다 자산을 늘려 경제력을 키워야 한다는 욕구가 앞서고 있지요. 가부장시대가 지나가면서 여성의 사회진출이 일반화된 것도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과 상관없는 자유로운 출산이 용인되지 않는 사회풍조 역시 아이 낳기를 막는다고 봅니다.전광희 교수: 사실 출산율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60년대부터 가족계획운동이 벌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떨어지기 시작했지요. 83년도에는 출산율이 인구대체출산율(인구를 현상 유지하는 데 필요한 출산율의 수준)인 2.1명 이하로 떨어지면서 급기야 1.16명에까지 이른 겁니다. 이미 20년 전부터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 거죠.최근의 출산 기피 현상은 ‘잘살고 싶은’ 욕구와 반비례합니다. 잘살려고 하다 보니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논리에요. 게다가 지금은 사람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는 세상입니다. 일자리가 부족하고 육아에 교육문제까지 겹치니 아이 낳을 엄두를 내지 못하는 거죠.최숙희 수석연구원: 경제학적으로는 자본주의의 고도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가족 자체가 노동력의 수단이었지만 산업화 이후에는 자식이 주는 물질적 편익이 줄어들고 비용이 올라가는 구조가 됐어요. 자식을 책임질 기간도 길어져 경제부담이 훨씬 커지니 많이 낳지 않으려고 할 밖에요. 이게 바로 선진국의 저출산 현상과 다른 점입니다.IMF 위기는 기름을 부은 계기가 됐는데, 이전까지는 ‘어렵지만 자식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후에는 이런 생각도 바뀌었어요. 직장을 첫 번째 목표로 삼는 여성이 늘어났음에도 출산과 육아의 책임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것도 부담이지요. 이런 복합적인 요인이 씨줄 날줄처럼 엮여 나타나는 게 한국적 저출산의 특징입니다.손건익 정책총괄관: 아무래도 결혼, 가정, 자식에 대한 가치관 변화가 가장 큰 요인이라 봅니다. 자아실현 욕구와 미래에 대한 불안이 함께 높아지니 출산을 기피하는 거죠. 설상가상으로 일자리가 급속히 줄어들어 불안감이 더 높아지고 있어요. 문제는 불안요소를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 입니다.사회: 사회 경제에 미치는 파장이 심각하다고 보는 견해가 많은데요.전교수 : 출산율이 정말로 낮은 거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만큼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죠. 무엇보다 큰 문제는 평균 초혼 연령이 높아지면서 출산율이 낮아진다는 겁니다. 2000년 이후 매년 평균 0.2세씩 초혼 연령이 올라가고 있어요. 출산시기에 한계가 있는 만큼 초혼 연령이 높아지면 출산도 자연스레 줄어들 수밖에 없는 거죠. 초혼 연령을 1년 앞당기면 합계출산율이 0.3이나 올라간다는 가설이 있어요.안의원: 불임률이 최근 15%까지 올라갔습니다. 초혼 연령이 높아지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이미 절대적인 출산 감소가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더 이상 합계출산율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최연구원: 인구가 서서히 줄어들면 비교적 적응이 쉽겠지만 갑작스레 감소하는 현상이 일어나면 아래쪽의 버티는 힘이 달립니다. 아래쪽이란 젊은층을 말하는데,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부담을 지게 될 수도 있어요. 자신의 앞날을 개척하는 것도 힘든데 노인부양까지 맡아야 하니까요. 특히 베이비 붐 세대를 후세대가 맡아야 하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어요. 이민이 자유롭다면 이를 활용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그것도 아니지요. 인구유입 여지가 없어서 일본보다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고 봅니다.손총괄관: 당장 노동력 감소, 노동력 고령화, 경제성장 둔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2040년 경제성장률이 0.4%로 급속히 떨어진다는 분석도 있어요. 나라가 망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거죠. 저출산 문제는 경제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대로 가다간 2020년에는 일하는 사람 4명이 노인 1명을, 2050년에는 1.4명이 1명을 부양해야 합니다. 15년 이내에 노동생산성을 두 배로 키워내지 못하면 제품 및 가격 경쟁력을 잃는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 저출산은 단순한 사회문제, 노인복지와 관련 있는 문제가 아니라 국가 존립에 관한 문제입니다.안의원: 양면성이 있다고 봅니다. 인구 자질을 극대화ㆍ최대화하면 인구가 줄어들더라도 경쟁력을 확보할 수가 있어요. 인구 늘리기와 더불어 인구 자질을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은 인구로 강대국 만드는 방법 말입니다.최연구원: 일본의 경우 올해 출생자수가 사망자수보다 적어졌어요. 그럼에도 경제성장은 2%가 더 올랐습니다. 이 사례는 질을 높이면 길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하지만 우리의 경우 경제활동인구, 즉 생산라인 인구가 줄어드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경제 근간이 되는 것은 내수인데, 결국 장기적인 내수 침체를 각오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렇게 되면 기업은 투자 여력이 줄어들고 결국 성장이 주춤해지겠지요. 생산가능인구 감소 → 내수 침체 → 투자 감소 → 성장 저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손총괄관: 프랑스는 노동생산성 두 배 키우기에 150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초고령사회로 진행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준비하고 실행할 시간이 매우 부족한 상황이에요.안의원: 생산가능인구 추이를 주목해야 합니다. 20~49세 인구는 2007년을 피크로, 이후에는 감소하게 돼 있어요. ‘아직 10년 남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안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는 거죠. 현실은 훨씬 절박합니다. 저출산에 따른 인구감소는 바로 코앞에 닥친 생존의 문제입니다. 사회 전체가 위기감을 느껴야 해요. 위기감이 심하면 출산율이 더 떨어질까 봐 걱정이지만, 해결책은 반드시 있어요.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라도 저출산 문제는 풀어야 합니다.사회: 저출산 고령화가 먼저 진행된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지 않을까요.손총괄관: 일본의 경우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사회로 25년 동안 전이가 됐습니다. 그동안 고령사회 대책과 저출산 대책을 각각 나눠 수립해 실천했지요. 하지만 무척 자신 없어 하는 게 사실입니다.우리 사회는 일본만큼 사회구성원이 협력하면서 문제를 짚어보고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정부가 범정부적 대책기구를 만들었지만, 본부 역할에 대해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많아요. 당장 지혜를 모아 대책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식세대에 큰 죄를 짓게 될 겁니다. 주어진 시간은 짧은데 체계적인 협력이 안된다는 건 무척 안타까운 일이죠.안의원: 지난 89년 미국에서 귀국했는데, 그때 일본은 저출산 현상을 ‘쇼크’라고 표현하면서 위기를 공유했어요. 당시 일본보다 한국이 더 심각한 수치였는데도 말이죠. 이후 저출산 문제를 강하게 제기하면서 활동을 시작했는데, 최근 들어 정부와 정치권, 언론 등이 문제의식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게 그나마 무척 다행으로 생각합니다.최연구원: 일본은 원인에 대한 처방이 잘못돼 미미한 효과에 그친 것이라 봅니다. 어떤 원인을 대책과 연관지을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일본에서는 원인을 분석하면서 육아의 책임을 상당부분 여성의 책임으로 돌렸어요. 공동 책임으로 접근해 대책을 세워야 함에도, 자녀양육의 주체가 여성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하다 보니 효과가 미미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사회: 그렇다면 문제의 해법은 무엇일까요.전교수: 구미 선진국에선 ‘복지국가 위기는 곧 고령화’라는 인식이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에는 저출산이 고령화를 심화시키고 있어요. 균형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저출산의 수치 변화가 세계 어느 곳보다 빠르니까요.손총괄관: 국가사회 발전의 과정에는 기술혁신의 단계가 있습니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기술혁신이 있을 것이란 이야기죠. 예를 들어 로봇이 노동력 대체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미래의 노동력은 20세기 잣대와 다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령화가 될수록 노동생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꼭 필요한 노동력을 확보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일과 가정을 양립시켜야 합니다. 기업 문화를 바꾸고 기업에 조세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어요.안의원: 우선순위를 분명히 정해야 합니다. 하나하나 원인을 캐고 대책을 세우면 문제해결이 가능해지지요. 암울하게만 보지 말았으면 합니다.먼저 기업이 바뀌어야 해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인구감소 문제에 대해 절박함을 느끼고, 기업과 개인이 어떻게 문제를 풀 것인지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더불어 고령 친화적 산업, 노인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사업을 개발할 필요가 있어요. 인구 자질을 높이는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요.최연구원: 민간부문의 역할이 큽니다. 이미 우리 사회가 정부 주도로 나가는 사회가 아닌 만큼 민간에서 주도할 수 있게끔 지원해 줘야 합니다.무엇보다 가사와 직장이 양립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정책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없는 원인은 무엇인가 분석하고 실마리를 풀어야죠. 여성 노동력 활용과 모성보호에 앞장서는 기업에 박수를 보내고, 확실한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합니다. 여성인력이 중요하고, 노동력 확보 측면에서 필요하다면 반드시 결단을 내려야 하는 문제입니다.사회: 정부가 해야 할 일도 많을 텐데요.전교수: 정부는 돈 쓸 생각을 하라고 요구합니다. 인구감소에 따른 국방력 저하를 걱정하면서, 저출산 문제에 국방비 정도의 예산을 투입할 생각은 하지 않아요. 이건 나라가 살고 망하는 문제인데도 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출산을 늘릴 수 있도록 정부가 국방비 이상을 써야 한다고 봅니다. 최소 비용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요.손총괄관: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세 가지가 있을 겁니다. 첫째, 일과 가정을 양립하며, 육아부담을 줄여 가치관의 변화를 유도하는 겁니다. 둘째는 출산을 장려하는 인센티브제도를 도입하는 겁니다. 출산에 공이 큰 가족과 기업 등이 대상이 되겠지요. 셋째는 엄격하게 법과 제도를 적용, 불법적인 임신중절수술을 단속하는 등의 정책을 펴는 겁니다. 이 가운데 가능한 방안을 적절히 구사해야 합니다.무엇보다 아이가 있는 삶과 가정이 얼마나 행복한가를 느끼게 해줘야 하는데, 그것이 크나큰 숙제입니다. 우리는 이미 10년 정도 실기했다는 조급함에다 사회의 의견을 모아 대안을 체계적으로 수립ㆍ시행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하거든요.안의원: ‘수태부터 무덤까지’라는 가치관이 자리잡아야 합니다. 출생부터가 아니라 수태할 때부터 보호를 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는 세계에서 유례없이 성공한 인구정책 경험을 갖고 있어요. 산아제한에 성공했듯, 출산 증가에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