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장래를 보기 위해 참고가 되는 나라다. 양국의 경제발전 과정이나 산업구조에는 유사한 점이 많으며, 사회문화적 측면에서도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저출산 문제의 본질과 그 영향을 보기 위해서는 일본의 인구감소 현상이 좋은 벤치마크가 될 것이다.일본의 출산율(합계특수출산율ㆍ여성 한 명당 평생출산수)은 1970년대에 인구 유지 수준인 2명을 밑돌고 난 이후에도 계속 하락해 왔다. 2004년의 출산율은 1.29명에 그쳤다. 이 같은 출산율의 하락은 결혼을 늦추거나 기피하는 사회적인 행태가 만연되면서 가속화돼 왔다. 일본의 경우에도 부모와 동거하면서 결혼을 기피하고 취미나 여행 등의 유흥을 즐기는 젊은 층이 확대된 것이다.육아와 직장을 양립할 수 있는 기반이 미진한 채 99년에는 ‘남녀공동참여사회 기본법’이 제정돼 여성의 사회진출이 더욱 용이해졌지만 저출산 현상은 오히려 심해졌다. 결혼하거나 출산하고 양육을 위해 직장을 그만둘 경우 나중에 재취업하기 어려운데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의 임금 격차도 심하기 때문에 결혼이나 출산을 미루려는 여성들이 늘어난 것이다.이론적으로 생각하면 고령자복지가 확대될수록 노후에 대한 불안이 줄어드는 한편 자녀들도 그만큼 부모를 부양하겠다는 의지가 약해질 것이다. 이러한 가족 의식의 변화와 교육비 부담의 확대 속에서 가족복지 수준마저 낮을 경우 사람들은 평생 소득과 소비 효용을 고려해서 자녀 출산수를 억제하는 행동을 선택하게 된다. 따라서 일본과 같이 가족지원 예산에 비해 노인복지 지출이 상대적으로 많다면 저출산 행동이 심화될 수밖에 없고 인구감소를 피하기가 어렵게 된다고 할 수 있다.5년마다 실시하고 있는 2000년 인구총조사를 기초로 2002년에 작성된 일본의 장기인구 전망에 따르면 일본의 인구감소는 2007년부터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올 상반기 일본의 사망자수는 출생자수보다도 3만1,034명이나 많은 것으로 보도되자 인구감소시대 돌입에 대한 우려가 더욱 고조되고 있다. 물론 사망자수의 동향에는 계절적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의 인구감소를 단정할 수는 없지만 일본 정부가 올해부터 인구감소시대에 돌입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할 가능성은 있다.일본의 인구감소시기가 2005년이 될지, 2006년 또는 2007년이 될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일본의 인구는 앞으로 수십년간 계속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4년 기준으로 1억2,768만명에 달한 일본의 인구는 일본국립사회보장ㆍ인구문제연구소에 따르면 2027년에는 1억1,997만명, 2050년에는 1억59만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총합연구기구(NIRA)는 일본의 저출산 현상이 계속될 경우 일본의 인구는 500년 후에 10만명으로 대폭 감소할 것이라고 경고한다.일본의 인구감소는 전후 베이비 붐 세대의 연령이 75세 이상이 될 2020년대부터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2020년대 중반에 일본의 인구는 연간 마이너스 0.5%의 감소세를 보일 전망이며, 2034년에는 인구감소율이 마이너스 0.7%에 달할 전망이다.베이비 붐 세대는 앞으로 수년 내에 대거 정년퇴직 연령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고도경제성장의 혜택도 받고 연금도 넉넉히 받을 것으로 보여 강력한 소비집단으로 활동할 것으로 보이지만 20여년 후에는 그 파워도 점차 소멸될 운명에 처해 있다.또한 저출산과 인구고령화로 인해 15세에서 64세의 생산연령 인구의 급격한 감소세가 보다 심각한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생산연령 인구는 96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했으며 2010년대에는 생산연령 인구의 연간 감소율이 1%를 넘어설 전망이다.한 국가의 경제성장 잠재력은 노동력, 자본, 생산성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생산연령 인구의 감소로 인해 일본경제의 성장잠재력은 하락 압력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자본의 확대나 기술혁신을 통해 성장세의 하락 압력을 어느 정도 억제할 수는 있다. 그러나 기업으로서는 인구감소에 따른 시장확대 기회의 감소에 대응해 과잉설비 부담을 사전에 억제하겠다는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에 자본확대도 크게 기대하기가 어렵다.일본기업들은 버블 붕괴 이후 계속 투자를 줄여왔으며 이것이 장기불황 과정에서 노동력의 감소세보다도 일본경제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최근 일본기업들은 일본경제의 회생 조짐과 함께 그동안 지나치게 설비를 줄였다고 반성하면서 설비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앞으로 계속 일본의 출산율이 회복되지 않을 경우 다시 보수적인 투자전략으로 돌아설 가능성도 있다.한편 저출산에 따른 인구 증가율의 둔화는 산업구조의 변화를 가져온다. 선진국의 경우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 증가율이 둔화되면서 제조업의 비중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 일본의 경우 제조업의 부가가치 비중은 85~2002년에 7.7%포인트나 하락했다. 산업별로는 섬유산업 등 노동집약적 산업의 쇠퇴 경향이 특히 심했다. 섬유산업의 경우 사업소수, 취업자수, 출하금액 모두 60% 이상 감소했다.저출산에 따른 제조업의 부진은 노동인력의 증가세 둔화와 함께 소비가 부진을 보이면서 가속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구 증가율의 정체와 함께 여러 분야에서의 소비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산업의 기반이 되는 제조업에 대한 수요가 감소한 것이다. 저출산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결혼 부진으로 인해 전통적인 핵가족이 늘어나지 못한 것도 소비에 부정적으로 작용했다.결혼한 젊은 세대가 내구재를 완성하게 구입하면서 자녀를 늘려 가정을 형성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약해짐으로써 내구소비재에 대한 지출비중이 전반적으로 하락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85년 4.3%였던 가계의 내구재 소비지출 비중이 2003년에는 3.4%로 하락했다.물론 장기불황을 극복한 일본 산업이 앞으로 90년대와 달리 공동화 압력을 완화시키는 데 성공할 수도 있다. 최근 일본기업들의 설비투자도 회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저출산 인구감소 경제에 대응하면서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제조업의 재강화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쉽지만은 않을 것이며 기업간 및 산업간 차별화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인구감소로 인해 전체적으로 시장의 확대 폭이나 시장 자체가 감소할 것으로 보여 고부가가치화에 성공한 기업이나 산업은 호조를 보이겠지만 그러한 호조는 다른 분야의 축소를 수반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서비스산업 부진과 지방경제 쇠퇴 압력제조업의 공동화 현상과 함께 일본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높아져 왔지만 이 또한 전반적으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저출산 초기에는 아동 관련 산업이나 결혼 관련 산업이 1차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이유식, 아동의류 및 구두, 완구 등의 아동 관련 제조업의 부진과 함께 유치원, 아동용 교육산업, 산부인과 및 소아과 병원, 결혼식장 등이 타격을 받았다.그리고 저출산의 악영향은 점차 일반서비스업에도 파급되고 있다. 인구의 정체로 전반적으로 레저산업에 대한 수요는 둔화될 수밖에 없으며, 자가용 수요의 둔화와 함께 놀이시설 등에 대한 수요가 둔화되고 있다. 장기불황에도 계속 좋은 실적을 거둬 일본 산업계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 도쿄 디즈니랜드의 경우에도 최근 방문객수가 눈에 띄게 감소하기 시작했다.90년대의 경우 저출산과 함께 일본 각지에서 종합레저업체들의 부도 사태가 속출했으며, 외식산업의 경우 각 분야에서 시장규모가 줄어들기까지 했다. 백화점 등의 소매업, 교육산업 전반, 출판산업, 수송 및 물류산업 등과 함께 생계형 서비스산업들이 저출산으로 인해 위축되고 있다. 인구의 정체로 인해 이발소 및 미용실, 택시, 목욕탕, 약국, 문방구 등 생계형 서비스산업의 경우 부도와 폐업이 앞으로도 속출할 것으로 보인다.인구의 정체는 인구이동성의 저하를 가져오기 때문에 교통 비즈니스에 심각한 영향을 주며, 이는 국가경제와 지역경제의 활력을 전반적으로 떨어뜨린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민간철도회사들은 초우량 기업의 대명사였지만 90년대에는 여객수의 감소와 함께 노선 확장을 위해 미리 구입한 토지가 10년 이상 방치되는 사태가 발생, 이로 인해 철도회사들의 경영이 급격히 악화됐다. 최근에는 일본 유수의 철도회사였던 세이브가 경영위기를 겪고 있을 정도다.교통과 함께 거대 서비스업이라고 할 수 있는 건설업에 대한 수요도 계속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개인 주택수요가 인구 정체로 둔화되는 한편 과거와 같은 공공 인프라에 대한 수요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사실 저출산과 함께 일본 건설산업의 비중이 90~2002년에 3%포인트나 하락했다.물론 노인 간병 및 요양시설 등 고령화 사회에 대응한 새로운 서비스산업이 생겨나겠지만 이들이 기존 서비스업의 몰락에 따른 경제적인 충격을 만회하기에는 역부족일 것으로 보인다.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전반적인 부진과 함께 지방도시나 농촌지역의 과소화(過疎化) 현상이 심화되고 지역경제의 몰락이 가속화되고 있다.일본 각지에서는 과소화 및 고스트시티(Ghost City)화 현상에 이어 점차 대도시의 인구고령화 및 과소화가 우려되기 시작했다. 특히 인구감소에 따른 세수부진으로 인해 앞으로는 막대한 재정자금을 투입해서 구축한 기존의 사회적 인프라를 유지ㆍ보수하는 것도 어려워지고 이러한 경비 때문에 새로운 공공투자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점점 약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저출산의 개선이 없을 경우 지방 중소도시의 인프라 포기와 주민들의 이주 문제도 선택지가 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