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석자 : 김영욱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재훈 코콤포터노벨리 대표, 박찬호 한국암웨이 홍보부장, 조성권 우리은행 공보팀장사회 : 김상헌 취재팀장똑같은 사고가 터져도 피해를 최소화하며 거뜬히 넘기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존립 자체가 어려울 만큼 휘청거리는 기업도 있다. 이처럼 위기관리는 평소에는 그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지만 일단 위기가 닥치고 보면 그 진가가 확연히 드러난다. 따라서 위기관리는 ‘준비가 있으면 근심할 것이 없다’는 유비무환의 성격이 강하다. 그렇다면 국내기업들의 위기에 대한 인식과 대응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위기관리 실태와 문제점, 대안 등을 모색하기 위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사회: 최근 들어 위기관리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위기관리가 경영전략의 핵심요소로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박재훈 대표: 위기관리는 기업의 생존전략입니다. 위기대응을 잘못하면 기업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당연히 임직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겠지요. 이 같은 최악의 순간을 비켜나기 위해서는 위기관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더군다나 최근 기업의 경영화두로 떠오른 지속성장가능경영의 핵심은 커뮤니케이션이고, 그 한 축으로 위기관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김영욱 교수: 위기관리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예전의 위기관리는 단지 돌발적인 사건사고의 대응 차원이었어요. 따라서 ‘우리 회사는 사건사고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위기관리가 필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포괄적 경영전략으로 이해되는 경향입니다. 마케팅이나 영업이 중요하듯 위기관리도 경영의 필수요소로 떠오른 것입니다.박찬호 부장: 위기관리는 기업경영에서 떼놓을 수 없는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기업경영을 하다 보면 위기상황은 반드시 오기 때문입니다. 기업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나 다름없습니다. 기업이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미지의 영역에 과감하게 도전장을 던져야 합니다. 이렇게 새로운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위기는 따라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위기관리는 기업성장의 안전장치인 셈이지요.조성권 팀장: 우리은행은 106년의 역사를 자랑합니다. 그간 27개 은행이 합병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1,300만명의 고객과 거래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위기는 늘 따라다녔습니다. 위기관리를 염두에 두지 않은 경영이란 상상하기도 힘든 일입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금융권의 경영이라는 것은 위기관리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됩니다.사회: 그렇다면 국내기업들의 위기관리 수준은 어느 정도입니까.박대표: 최근 많은 위기들이 사람에 의해 발생하고 있습니다. 내부고발 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직원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위기관리는 끝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위기관리 교육이 지속되고 시스템도 갖춰져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아직은 선진국과 비교해 수준이 크게 뒤떨어지고 있습니다.박부장: ‘위기관리’라는 용어 때문에 애를 먹는 곳도 있습니다. 위기도 아닌데 위기를 조장하느냐는 핀잔을 듣는다고 합니다.김교수: 개념에 대한 이해부족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당장의 효과를 기대하기보다는 인식의 전환을 꾀하는 것이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사회: 일반 임직원들은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고 있나요.박부장: 암웨이의 경우 이전과 달라진 점이 적지 않습니다. 5~6년 전만 하더라도 대언론관계 훈련을 할 때 홍보부 직원들만 참석했습니다만 지금은 전산, 경리, 영업직원이 함께하고 있습니다.조팀장: 금융권에서도 예전에 비해 이해하는 수준이 높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직원부정이라든가, 전산장애 등의 사고가 발생하면 은행 신인도에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사회: 이전보다 교육훈련이 강화된 것으로 볼 수 있겠군요.조팀장: 위기관리에서 교육이 가장 중요합니다. 우리은행은 전 점포에서 매주 목요일 교육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러가지 가상 시나리오를 설정, 실전처럼 연습합니다. 예를 들어 돈을 갈취당했을 경우, 전산장애를 일으켰을 경우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를 익히고 있습니다.박대표: 이전에는 위기관리를 ‘안전관리’나 ‘환경관리’ 등 부분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적잖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전사 차원의 통합관리로 이해하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은 교육의 효과로 볼 수 있겠지요.김교수: 교육의 효과도 있지만 법이나 사회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는 것도 기업이 위기관리에 관심을 갖는 이유입니다. 인터넷이나 PL법(제조물책임법) 등으로 인해 일반 대중의 힘은 점차 세지고 있습니다. 기업들이 발 빠르게 대응하지 않으면 경영상의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사회: 하지만 통합적인 위기관리는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조팀장: 기업들이 위기관리 측면에서 하고 있는 일들이 많습니다만, 솔직히 통합 매뉴얼을 갖춘 곳은 많지 않을 겁니다. 위기관리의 필요성에 대해 인식은 하고 있는데 이행하는 과정에서 2% 부족한 셈입니다.박대표: 위기관리컨설팅을 요청하는 기업들의 문의를 받아 보면 대다수는 언론대응을 도와달라, 아니면 교육을 시켜달라는 것입니다. 상당수 기업들이 위기관리를 대언론관계로만 여깁니다. 위기관리는 언론뿐 아니라 소비자, NGO, 정부 등과의 관계가 모두 포함되는 것입니다. 이를 경영전략 차원에서 통합하지 않으면 시너지가 날 수 없습니다.사회: 그렇다면 위기관리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인프라 구축에 먼저 나서야겠군요.박대표: 시스템이 돼 있느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전담조직 및 예산을 갖고 있느냐와 전략수립 여부를 따집니다.김교수: 위기관리 작동시스템이 갖춰져 있더라도 실질적인 지원은 미흡한 편입니다. 이런 기업들은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야 위기관리 프로그램을 가동합니다. 또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 김치파동 때도 위기관리를 잘하는 회사와 그렇지 못한 회사가 확연히 구별됐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이후의 위기관리는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위기관리입니다.박부장: 기업의 위기관리 담당자 입장에서도 고충이 없지 않습니다. 위기관리는 단순히 마케팅이나 홍보 측면이 아니기 때문에 겉으로 성과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경영진에서 보면 ‘너는 뭐했나’라는 시선을 가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사회: 위기관리에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은데요.김교수: 전반적으로 가장 미흡한 부분이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시스템을 꾸리기는 했는데 실행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히 위기관리가 기업의 중장기 경영전략과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보니 교육이나 훈련이 부족합니다.박대표: 내부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위기는 현장의 직원으로부터 최고결정권자에 이르는 과정에서 정확하게 전달돼야 합니다. 늦장보고, 왜곡보고 등으로 최초보고자와 최고결정권자 사이에 왜곡이 있어서는 위기관리가 아예 불가능합니다. 이런 내부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교육과 시스템으로 해결해야 합니다.박부장: 두 가지가 이뤄져야 합니다. 첫째, 목표하는 공중이 어떻게 생각하고 변화하는지를 매일 주시해야 합니다. 모니터링을 잘하는 기업은 위기관리를 잘합니다. 둘째, 목표공중과의 관계기상도입니다. 기상이 매일 바뀌듯 관계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이를 주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관리해야 합니다.사회: 그럼 국내기업들이 위기관리를 좀더 잘하기 위해서는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까요.박부장: 모니터링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합니다. 미디어뿐만 아니라 국회상임위원회, 정부, NGO, 인터넷 등도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이를 기초로 관계기상도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보완해나가야 할 것입니다.조팀장: 매뉴얼은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오히려 이해당사자들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데 우리 쪽에서 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박대표: 이제까지 단편적ㆍ지엽적으로 이루어져왔던 위기관리가 전사적으로 통합돼야 합니다. 기업이나 정부가 위기관리의 중요성을 직시하고 실행하면 명성관리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김교수: 우선 전반적인 경영전략으로 봐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 다음으로 사건에 대응하는 차원이 아니라 예방과 대응학습 등 종합적인 프로세스에 의해 이뤄져야 합니다. 외부의 객관적 시각이 필요합니다. 외부자문이나 컨설팅을 통해 정확한 공중관리에 나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