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연말의 일본. 기업들의 매출은 전년을 밑도는 현상이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신문에선 ‘경제 성장률’ 이란 용어가 사라진 지 오래다. 그 대신 ‘경제 축소율’이 일반적으로 쓰이는 시대다.2004년 일본에서 경제ㆍ경영서적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화제가 됐던 마쓰타니 아키히코 교수의 <인구 감소 시대의 새로운 공식>은 인류가 곧 부딪힐 새로운 사회를 보여준다.눈앞에 다가온 ‘인구 감소’ 시대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기 위해 도쿄 롯폰기에 위치한 정책연구대학원대학의 마쓰타니 교수 연구실을 찾아봤다. 관료 출신이라 날카로운 모습을 예상했지만 막상 만나 보니 이웃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인상이었다.그는 “일본을 시작으로 선진국들은 2006년부터 ‘인구 감소’와 ‘경제규모 축소’라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을 맞는다”면서 “경제ㆍ사회의 체제 변화에 대비해 개인, 기업, 정부는 새로운 생존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쓰타니 교수는 특히 “기업경영의 키워드는 매출이 아닌 이익률이 될 것이며, 직장인들도 자생력을 키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한국경제의 성장모델에도 관심이 많다는 마쓰타니 교수를 만나 인구 감소 시대를 슬기롭게 대처하는 비법을 들어봤다.10년 후 보통 사람들의 삶에서 일어날 가장 큰 변화를 든다면.가치관의 변화입니다. 지금까지는 경제규모가 커지고 소득이 늘어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시대를 살아왔지만, 선진국의 경우 경제력 확대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돈을 많이 벌어 ‘경제적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은 줄어들 것입니다. 돈보다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라 늘어나는 ‘여유시간’으로 행복을 찾는 생활로 눈을 돌릴 것으로 봅니다. 특히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국가는 인구 감소가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사회변화도 급격히 이뤄질 전망입니다.노동력 감소는 어떤 형태로 해결할 수 있을까요.선진국들은 노동력 감소를 해결하기 위해 이민이나 여성인력의 취업확대 등을 추진해 왔습니다. 그러나 둘 다 실패할 것입니다. 독일의 경우 외국인 증가로 많은 사회문제가 발생한 경험이 있고, 프랑스도 최근 외국인 이민자 문제에 봉착한 상황입니다. 인구 감소로 여성인력도 줄어들기 때문에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는 대책은 되지 못합니다. 따라서 기업들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이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박리다매’를 목표로 하는 경영 시스템을 버리고, 매출이 줄더라도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대량생산 방식에 의존해 온 일본이나 한국기업들은 대응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합니다.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나면 가족형태는 어떻게 변할까요.노동력 부족으로 여성들의 취업환경이 좋아져 일하고 싶어 하는 여성의 취업 문호는 넓어질 것입니다. 또 여성의 사회진출로 결혼을 하지 않는 독신여성도 증가할 게 분명합니다. 이에 따라 가족구성원 숫자도 줄어들 것입니다. 그렇다고 가정주부의 취업이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일하고 싶어 하는 여성에게는 취업이 그만큼 쉬워질 것이라는 뜻이지요.고용과 임금제도는 어떤 방향으로 바뀔까요.고용형태는 다양화될 것입니다. 파트타이머 등 비정규직이 늘어나겠지만 그렇다고 정규직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을 위한 정규직이 필요하니까요. 고용시스템도 현재보다 훨씬 유연해질 것입니다. 임금 수준은 전반적으로 올라갈 전망입니다. 연공서열제가 무너지고 능력급제가 뿌리를 내리면서 전문성을 갖춘 유능한 젊은이들은 오히려 임금이 크게 높아질 것입니다. 이들 고소득 젊은이가 여러 방면에서 사회를 변화시킬 것으로 보입니다.인구 감소 시대에 대비해 정부나 개인이 준비해야 할 일이 있다면.우선 정부는 복지확대 정책을 포기하고, 세출삭감을 통한 재정 건전화에 우선순위를 둬야 합니다. 개인은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스스로 책임진다는 자세로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노후를 연금 등 사회보장제도에 의존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입니다. 특히 고령화로 인생을 장기적으로 설계해야 하는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에 노동력이 있고 돈을 벌 수 있는 동안 ‘제2의 인생’을 철저히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세계 각국에서 대학의 경쟁력 제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인구가 감소하면 학생수도 줄 것이고, 경쟁력 없는 대학은 도태될 것으로 보입니다.그렇습니다. 대학의 경쟁이 심해지면 대학수가 줄어들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대학은 교양교육만 시키고 업무에 필요한 교육은 기업이 맡아왔습니다. 경제축소 시대가 오면 기업들은 코스트를 줄이기 위해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실전적인 인재를 뽑을 것입니다. 대학의 역할이 ‘제너럴리스트’에서 ‘스페셜리스트’ 양성으로 바뀐다는 얘기죠. 이렇게 되면 기업이 필요한 인력을 양성하는 실무능력이 강한 대학만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대학생들도 실전 능력을 키워야 생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10년 후 세계경제 판도는 어떻게 변할까요.인구경제학적 면에서 보면 미국, 일본, 유럽 등 3개 선진경제권 가운데 10년 후에도 경제력이 커지는 지역은 미국이 유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은 젊은 노동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해 경제력이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유럽에서도 고령화와 출생률 하락이 진행되고 있지만 동유럽국가의 유럽연합(EU) 편입으로 급격한 경제력 약화는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 일본은 내년부터 실제로 인구가 줄어들고 노동인구도 감소해 선진국 중 가장 먼저 경제규모가 줄어드는 시대를 맞을 것입니다.일본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하게 된다는 뜻인가요.일본경제는 오는 2010년께부터 국내총생산(GDP) 기준 성장률이 마이너스로 떨어지면서 ‘경제규모 축소’ 시대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2010년 초반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0.5% 수준을 맴돌 것입니다. 그렇다고 1인당 국민소득이 줄어든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개인의 삶의 수준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입니다.끝으로 한국경제의 미래는 어떻게 보십니까.한국경제는 이미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일본처럼 2010년대 초반에 ‘경제규모 축소’ 시대에 접어들지는 않겠지만, 10년 정도 더 지나면 비슷한 길을 갈 것입니다. 한국은 경제ㆍ사회 시스템이 이미 선진국 궤도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앞으로 과거 고도성장시기와 같은 연 5% 이상의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내년부터라도 저성장 시대에 들어설 수 있습니다.약력: 1945년 일본 오사카 출생. 도쿄대학 경제학과 및 경영학과 졸업(공학박사). 70년 대장성 입성, 예산국 조사과장ㆍ예산담당과 심의관. 97년부터 정책연구대학원대학 교수. △저서: <인구 감소 경제의 새로운 공식> <인구 감소 사회의 설계> 등 다수돋보기 마쓰타니 아키히코 교수 누구인가베스트셀러 작가… ‘인구’ 최고 권위자2002년 <인구 감소 사회의 설계>에 이어 <인구 감소 경제학>을 잇달아 히트시키면서 일본에서 인구학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저서를 통해 “인류가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인구 감소라는 새로운 시대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면서 “특히 선진국에서 인구감소는 빠르게 밀려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강조한다.이에 따라 그는 기업들은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에 맞춰 고성장 시대의 ‘확대 경영’에서 ‘축소 경영’으로 경영시스템을 확 바꿔야 한다고 주문한다. 발상의 전환이 빠를수록 새로운 시대에 대한 적응도 빨라진다고 강조한다.마쓰타니 교수는 상아탑 안에서만 안주해 온 교수가 아니다. 실제로 정부에서 일한 경력을 갖고 있어 그의 통찰은 더욱 설득력 있게 들린다. 마쓰타니 교수는 일본에서도 엘리트들이 모여 있다는 대장성에서 예산담당관을 포함, 27년간 활동한 관료 출신으로 분석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