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칠두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은 공단의 변화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인물이다. 지난해 10월 산업자원부 차관을 거쳐 산단공 이사장에 취임한 뒤 혁신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었다. 김이사장은 ‘혁신클러스터 사업’만이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전국 공단의 재도약을 꾀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혁신클러스터’란 제조업 위주로 개발된 산업단지에 연구개발 및 기업지원 서비스 기능을 결합한 단지를 뜻한다.그가 클러스터 사업을 대안으로 보는 이유는 이렇다. “선진국에서 기술을 줍니까, 시장을 줍니까? 경쟁자일 뿐입니다. 후발주자인 중국이나 동남아 국가들도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끝없이 추격해오고 있습니다. 무한경쟁시대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기업이 대학, 연구소 등과 ‘포도송이’처럼 연계돼 움직여야 합니다.”그는 클러스터의 성공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꾸겠다는 자세다. ‘마누라, 자식 빼곤 다 바꾸겠다’고 선언할 당시의 이건희 삼성 회장보다 더 독하게 마음먹은 듯했다. 실제로 그는 취임 이후 ‘한국산업단지공단’이라는 이름을 관련 법률개정을 거쳐 ‘산업단지진흥원’으로 개명작업 중이다. 지금의 회사명이 혁신클러스터를 주도하는 산단공의 변화하는 이미지를 담기에는 미흡하다는 판단에서다.이뿐만 아니라 기존 조직에도 칼을 댔다. 클러스터 사업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조직으로의 변화를 꾀했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에 있는 본사는 슬림화시켜 추진본부 역할을 맡도록 했다. 지역본부는 현장에서 산학연을 연결하고 조율하는 브로커 조직으로 체질을 개선했다. 이를 위해 본사 인력을 대거 지방으로 내려보냈다.그렇다고 그가 서울 산단공 이사장실에 가만히 앉아 보고서류만 뒤적거린 것은 아니었다. 그가 필요한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지 달려갔다. 그동안 정부를 믿지 못하고 산단공에 큰 기대를 걸지 않았던 산학연 인사들의 두 손을 붙잡고 클러스터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그 결과 지난 4월 구미, 창원, 울산, 반월시화, 광주, 군산, 원주 등 7개 시범단지의 추진단장을 선임할 수 있었다.하지만 이제껏 없던 것을 새로 만든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국내 중소기업들은 성장이 정체된데다 변화에 익숙하지도 않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살길을 찾는 업체도 부지기수다. 이들이 대학이나 연구소 등과 네트워크를 맺더라도 실질적인 도움을 받고 클러스터의 필요성을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래야 클러스터 사업이 반석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이런 생각에서 시작한 것이 미니클러스터 사업이다. 미니클러스터란 클러스터 내 세부업종 또는 기술별로 산학연이 네트워크를 만들어 함께 과제를 내고 해결방안을 찾는 소규모 협의체다. 7개 시범단지 안에 41개 미니클러스터를 만들었고, 여기에는 700여개 업체가 참가하고 있다.실적을 논하기에는 길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열심히 뛴 결과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지난 10월 한국의 전자업체들이 일본 도쿄지역 기술선진공업지역(TAMA)과 가진 ‘한ㆍ일간 전자기기 생산 수탁 서비스(EMS-R2) 그룹’ 제휴 조인식은 성공사례 중 하나다. 이번 제휴로 일본의 전자기기 개발ㆍ설계기업인 테크, 커뮤네트 등 5개사와 한국의 PLC모뎀 제조사 KIT, 유엔아이 등 6개사가 한ㆍ일 클러스터간 기술교류 차원에서 이업종그룹을 결성, 전자기기의 공동개발에 나서게 된다. 그는 혁신클러스터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10년 뒤 시범단지의 수출은 지금보다 3배 이상 늘어나고, 8만여명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남북경협도 그가 심혈을 기울이는 사업 중 하나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구로공단)에서 인기를 끌었던 아파트형 공장을 개성공단에도 짓겠다는 것. 국내산업단지 입주업체들의 대북 진출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남북경협아카데미’를 운영할 계획이다. 이외에도 수도권에 미니 산업단지를 조성하고, 경남 김해시에 의료기기 전문산업단지를 추진하는 일도 그가 의욕을 보이는 사업이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우리가 못할 것이 뭐가 있겠느냐”며 변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다시 한 번 나타냈다. 그래서일까. 그가 추진하는 산단공의 변화가 한국경제의 희망으로 피어나길 기대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