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뺏고 뺏기기.’

올해 서울대 경영학과에 임용된 교수는 2명이다. 이 두 교수 모두 고려대에서 스카우트했다.경영학과 교수쟁탈전이 치열하다. 대학가의 경영학과 키우기가 본격화되면서 경영학 교수는 ‘귀한 몸’으로 떠올랐다. 경영학과를 육성하려면 일단 인프라부터 완벽하게 갖춰야 한다. 교육분야의 경우 핵심 인프라가 바로 인적자원이다. 경영학과 교수진의 ‘드림팀’을 꿈꾸는 대학들. 자연히 교수확보를 위해 고심하고 있다.경영학 교수를 충원하려는 대학은 많지만 정작 경영학 박사는 부족하다. 특히 외국에서 경영학 박사를 딴 인력은 오히려 줄었다. 경영학 교수의 수요가 공급을 훌쩍 뛰어넘어선 것이다. 교수수급에 문제가 생겼다.먼저 경영학 교수를 한 명이라도 더 충원하려는 대학은 부지기수다. 대학경쟁력 강화를 위해 경영학과를 키우려는 마당에 교수가 부족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또 MBA 등 경영전문대학원을 도입하려면 경영학 교수를 지금보다 파격적으로 늘려야 한다.경북대는 지난해 1명, 올해 5명의 경영학 교수를 임용했다. 하인봉 경북대 경상대 학장은 “장기적으로 경영전문대학원을 계획 중”이라며 “또 외국 경영대 MBA와 연계해 학생들에게 외국대학과 경북대의 이중학위를 주는 제도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보다 많은 경영학과 교수를 원하는 중요한 배경이 또 있다. 바로 경영학과의 국제경쟁력을 입증하기 위해서다. 경영학과 교육품질에 인증서를 주는 기관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곳은 세계경영대학협회(AACSB)다. AACSB는 1916년 미국 경영대와 기업 등이 설립한 비영리기관이다. 교수진과 학생, 시설, 연구실적 등 100여개의 항목으로 경영대 교육의 질을 평가한다. 평가결과 AACSB 기준에 부합하면 우수경영대로 인증서를 준다. AACSB의 인증조건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100여개의 평가 가이드라인 중 경영학과 전임교수 비율이 75% 이상이어야 한다는 항목이 있다. 또 학생 이수학점의 60% 이상을 전임교수가 가르쳐야 한다.외국의 상위권 경영학과는 대부분 AACSB의 인증을 받았다. 세계 100위권 경영학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AACSB 인증부터 확보해야 한다. 글로벌 대학이라고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선행조건인 셈이다. AACSB 인증을 받은 대학은 아직 국내에 3곳밖에 없다. 2002년 서울대 경영대가, 2003년엔 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대학원이 AACSB 인증을 받았다. 올해 들어서는 고려대 경영대와 경영대학원이 인증을 획득했다.이에 질세라 다른 대학의 경영대들은 인증자격을 갖추기 위해 교수 충원경쟁에 뛰어들었다. 연세대는 지난해 4명, 올해 6명의 경영학과 교수를 임용했다. 이번 학기 들어 전임교수의 비율을 72%까지 끌어올렸고, 내년에는 80%까지 올려 AACSB 인증을 받을 계획이다. 이를 위해 현재 50여명인 경영학과 교수를 80명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다. 또 단국대는 지난해 2명과 올해 1명, 동국대는 지난해 2명에 이어 올해 3명의 경영학과 교수를 채용했다. 올 들어 아주대는 5명, 이화여대는 4명, 한국외대ㆍ부산대ㆍ명지대는 각각 2명의 경영학 교수를 영입했다.이렇게 경영학과 교수의 인기는 치솟는 데 반해 교수가 될 인력은 턱없이 부족해졌다. 일단 미국에서 경영학 박사를 따는 것 자체가 어려워져서다. 미국에서 경영학과 교수는 인기직종이다. 미국은 국내와 달리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교수연봉이 책정된다. 미국 경영대 교수의 연봉은 다른 학과 교수보다 2~4배 높다. 연간 12만~20만달러(약 1억2,000만~2억원)를 받는 경영학과 교수도 적지 않다. 고액연봉의 경영학과 교수가 되려는 미국인 학생은 급증했다. 반면 미국 대학들은 박사과정의 정원수를 그 인기만큼 늘리지는 않았다.정원이 제한된 박사과정 인원 중 미국인이 늘면서 외국인은 줄 수밖에 없었다. 반면 경영학 박사과정을 따려는 중국인과 인도인 학생은 늘어났다. 정해진 외국인 할당량(T/O) 가운데 한국인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는 더욱 좁아졌다. 국내 대학의 한 교수는 “90년대에는 미국의 경영학 박사과정을 밟는 미국인과 외국인 비율이 50대50이었다”며 “지금은 미국인과 외국인의 비율이 80대20”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딴 사람이 급감하자 교수부족 현상은 심화됐다. 자연스럽게 국내 다른 학교에서 경력을 쌓은 교수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하게 됐다.춘천에 위치한 한림대 경영대는 지난해 1명을 신규교수로 임용했지만 올해는 대폭 늘려 7명의 새 얼굴을 경영대 교수로 데려왔다. 윤석헌 한림대 경영대 학장은 “최근에 교육부가 주관하는 ‘누리(NURI)사업’이라는 ‘지방대혁신역량강화사업’ 프로젝트를 수행하게 됐다”며 “그중에서도 은퇴설계, 노후설계를 한림대가 맡게 돼 3명의 경영학 교수를 더 뽑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림대 경영학과는 고민도 있다. 올해 7명의 신임교수를 임용한 데는 또 다른 배경이 있었다. 윤학장은 “지난해 3명, 올해 2명의 경영학과 교수가 다른 학교로 자리를 옮겼다”며 “대부분 서울 소재 대학으로 갔다”고 전했다. 윤학장은 이어 “교수가 서울로 스카우트됐다는 것은 곧 한림대가 다른 학교도 인정할 만한 경쟁력 있는 교수를 채용했다는 증거”라며 “하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교수들이 계속 다른 학교로 전근하는 게 바람직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경영학 교수 스카우트 전쟁은 곧 도미노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교수가 다른 학교로 전근 가면 또 다른 학교에서 교수를 스카우트해 온다. 경북대에 올해 임용된 경영학과 교수 가운데 2명도 국내 대학에서 경력을 쌓은 인력이다. 각각 세명대와 동서대에서 스카우트됐다.이런 현상이 지속되자 대학들은 교수 채용방식을 아예 바꿨다. 교수 채용공고를 낸 뒤 지원한 박사 가운데 뽑는 수동적 방식에서 탈피했다.장하성 고려대 경영대 학장은 “올해 6명, 지난해 5명의 교수를 임용했다”며 “채용공고를 내고 뽑는 게 아니라 로드쇼 형식의 채용설명회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영학 분야별로 큰 학회가 개최될 때 학회가 열리는 장소에 직접 찾아가는 것이다. 때로는 개별접촉을 통해 교수를 임용한다. 물론 다른 대학에서 스카우트하는 데도 적극적이다. 장학장은 이어 “내년에는 대규모 채용공고를 내서 하반기까지 70명으로 교수로 늘리겠다”며 “3년 내에 외국인 교수 15명, 전임교수 80~100명의 경영대로 만들겠다”고 덧붙였다.경영학과 교수들은 달라진 교수 채용기준도 교수쟁탈전의 원인으로 손꼽았다. 2000년대 들어 학위와 교육경력 외에도 국내외 메이저 경영학 저널에 논문이 실린 교수가 채용에서도 유리해졌다. 일반기업의 헤드헌터처럼 대학도 교수를 채용할 때 실력을 우선 보게 됐다는 얘기다.교수 스카우트 현상에는 자유로워진 경영학과 인력시장의 분위기도 기여했다. 본교의 학부를 졸업한 인력을 교수로 선호하는 데서 탈피했다. 효율을 추구하는 경영학과의 본질처럼 교수 채용에도 실리를 추구하게 됐다. 대학간의 막혀 있던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경영학과 교수 스카우트는 자연스럽게 이뤄졌다.경영학과 교수가 부족한 현상은 국내 경영학계의 반성으로도 이어졌다. 국내 박사 양성에 소홀히 하지 않았냐는 지적이 일어나면서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5~10년 후에는 경영학과 교수 수급 불균형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장하성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국내 박사를 기르기 위해 취업을 하지 않고 학업에만 열중한다는 전제하에서 박사과정에 들어오는 학생의 등록금은 전액 면제해 주기로 했다”며 “조교로 일하면 생활비 100만원을 지급한다”고 말했다.INTERVIEW 조동성 한국경영학회 회장(서울대 경영대 교수)‘경영학과는 명실상부한 간판학과’한국경영학회는 전국 각 대학 경영학과 교수들이 모여 만든 학회다. 한국경영학회를 통해 국내 경영학과의 동향과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지난 2월 한국경영학회 회장으로 취임, 활발히 활동 중인 조동성 서울대 교수는 “경영학과 키우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지난 20년간 경영학과는 명실상부한 대학의 간판학과로 육성돼 왔다는 것. 조교수는 “최근 경영학과에 역량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뚜렷해진 것은 사실”이라며 “과거에 비해 ‘실사구시’, 즉 실용성을 추구하는 사회 흐름과 맞물려 경영학과가 부각됐다”고 설명했다.대학생들이 정치ㆍ사회 문제보다는 커리어 계발에 관심을 갖고 자연스럽게 경영학과에 몰리게 됐다는 얘기다. 아울러 조교수는 “예전에는 경영학과와 경제학과가 같은 단과대에 소속돼 있었으나 최근에는 경영학과가 경영대학으로 분리, 독립되는 사례가 늘어났다”며 “경영학과 경제학의 차별화가 이뤄지고 있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게다가 글로벌 무한경쟁시대가 되며 경영학과는 더욱 돋보이게 됐다. 이론적인 학문보다 기업 현장에 접목할 수 있는 경영학이 기업의 생존ㆍ성장에 디딤돌이 되기 때문이다.조교수는 경영학과 교수 스카우트 열풍의 근본 원인 또한 설명했다. 그는 “경영학은 복수전공과 부전공으로 인기가 많은 분야”라며 “경영학 과목의 수강생이 상대적으로 많다”고 밝혔다. 다른 학과가 학생과 전임교수의 비율이 20대1이라면 경영학과는 50대1 정도다.경영학 교수가 마이크를 잡고 100명이 넘는 학생들에게 강의를 하는 경우도 있다. 조교수는 “경영학과 일부 과목은 정원이 100명이라면 20~30명만 경영학과 학생이고, 나머지는 다른 과 학생들인 경우도 있다”며 “늘어나는 수강생에 비해 교수가 적어 경영학 교수의 충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교수는 “최근 들어 국내 대학간의 교수 이동이 자유로워졌다”며 “교수 또한 몸담고 싶은 대학을 선택할 수 있게 되면서 자기발전의 자극제가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