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시간의 주제발표가 끝난 후 토론ㆍ질의시간이 이어졌다. 4명의 석학들은 짧은 코멘트를 통해 심포지엄의 의의를 확인했고, 상대방의 의견에도 나름의 입장을 개진했다. 특히 공동연구기관 설립 제안에 대해선 모두 찬성의견을 보태 힘을 실어줬다.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킨 참석자들의 다양한 질문도 속속 쏟아졌다.▷ 테라시마 지쓰로 일본종합연구소 이사장 = 이제 한국의 역할은 아주 커졌다. 20세기 전반은 일본의 강점기시대였고 유린시대였다. 독립 후에도 한국전쟁을 거치며 냉전으로 고생해 왔다. 지금은 냉전이 끝난 지 15년이 지났다. IT혁명도 있었다. 냉전이 끝난 건 한국엔 큰 의미다. 냉전에서 익숙했던 과거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활력 있는 지역엔 공통점이 있다. 우선 국경을 넘는 지역연대의 성공사례가 많다. 가령 독일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한 발트해 도시연합은 큰 의미가 있다. 150개 도시가 힘을 합해 문화ㆍ경제교류를 심화하고 있다. 이는 현대판 ‘한자동맹’이다. 현재 유럽은 통화까지 단일화해 협력을 위한 에너지가 대단하다. 활기가 넘친다. ‘산학연계’도 활력의 특징이다.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려면 첨단기술에 대한 지식정보가 필요하다. 산학 공동연구는 국경을 넘어 추진하는 게 좋다.현재 개인적으로 ‘아시아ㆍ태평양연구소’(가칭)에 열의를 갖고 있다. 누구든 일상적인 정보공유가 가능한 연구기관이다. 금융ㆍ에너지ㆍ환경 등에서 아시아 차원의 공동연구 필요성이 높다. 지속적이고 항구적인 시스템을 갖고 가야 한다. 최근 프랑스의 ‘아랍세계연구소’를 방문하고 왔다. 프랑스가 20년에 걸쳐 만든 연구소로 마치 자석처럼 엄청난 사람들과 관심을 끌어당기고 있다. 아랍을 연구하려면 이곳에 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게 정설이다. 한ㆍ중ㆍ일 3국이 중심에 서서 향후 여러 이슈에 대한 논의를 이끌어갈 싱크탱크를 만들어야 한다. 아시아 정보를 한곳에 집약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연링 중국사회과학원 아태연구소장 = 중국은 3가지의 대외경제전략을 갖고 있다. 먼저 전세계를 대상으로 한 글로벌 전략이다. 2001년 WTO 가입 후 중국은 개방을 약속했다. 또 WTO 각종 의무 준수를 약속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이행할 것이다. 특히 무역시장 개방과 금융시장 개방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중국의 대외경제전략은 중국과 다른 국가에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두 번째 대외경제전략은 지역전략이다. 중국은 근린지역과의 지역협력을 우선순위에 두고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많은 근린국가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동아시아가 큰 의미를 가진다. 세 번째 대외경제전략은 보다 많은 세계시장으로의 진입이다. 중국은 25개국과 FTA를 추진하고 있다. 25개국 가운데에는 아세안 10개국을 제외하고도 남미, 서남아시아 등 15개국이 포함돼 있다. 중국은 대외개방을 통해 중국 스스로를 업그레이드하려 한다. 중국의 빠른 성장에 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중국 내부를 살펴보면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1,000달러를 갓 넘은 수준이다. 중국 내 문제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다. 지역이나 세계에서 패권을 노릴 여유가 없다.테라시마 이사장의 말 가운데 ‘일본은 몸은 아시아에 있지만 얼굴은 미국을 향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일본은 아시아의 전반적인 협력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런 일본이 아시아 협력을 진정 추진하려는 것인지 의아스러울 때가 있다. 불명확한 지역전략은 불필요한 소모전을 낳는다. 일본은 진심으로 아시아 전략에 임하는지,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한ㆍ중ㆍ일 3국간의 협력방향을 연구하는 아태종합연구소가 생긴다면 전략적 건의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공동체를 창설하고 이견을 좁히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이창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동북아경제협력센터 소장 = 테라시마 이사장은 일본인 학자들 중 그 누구보다 아시아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다. 테라시마 이사장의 올바른 시각이 반갑다. 장연링 소장은 중국과 일본이 동북아ㆍ동아시아 정책을 어떻게 펼치고 있는지 설명해 줬다. 사실 중국은 99년에만 해도 한ㆍ중ㆍ일 동북아경제협력 문제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당시 중국 경제학자들 대다수는 WTO 가입만 급선무로 봤다. 6년 동안 중국은 탈바꿈했다. 동북아ㆍ동아시아 협력에 가장 적극적인 국가로 변했다. 사실 동북아협력 방안은 한국이 여러 면에서 먼저 논의하고 연구하던 분야다. 아시아비전그룹과 동아시아 스터디그룹도 한국이 제안했다. 이렇게 적극적이던 한국은 최근 부쩍 잠잠해졌다.테라시마 이사장과 장연링 소장의 발표처럼 동북아ㆍ동아시아에는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이제는 ‘동북아’, ‘동아시아’, ‘아시아ㆍ태평양’의 협력만을 연구하는 국제적인 연구기관이 건립돼야 한다. 각국의 국익을 떠나 지역 전체의 이익을 위해 연구하고 건의하는 연구기관이 출범할 때가 됐다. 이윤호 원장의 발표를 통해 기업간의 협력을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FTA는 관세를 낮춘다는 이익을 안겨주지만 사실 기술장벽, 즉 비관세 장벽을 낮추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이유로 한ㆍ중ㆍ일 3국 기업간의 기술 표준화가 국가 차원의 FTA 체결 못지않게 중요하다.▷이윤호 LG경제연구원 원장 = 기업ㆍ산업부문만 집중적으로 다루다 이번처럼 큰 틀에서 다루는 연구주제도 참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동북아에도 FTA가 있어야 한다. 이게 심포지엄의 공통결과인 것 같다. 그런데 가는 길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한ㆍ중ㆍ일 3국의 개별 상황을 살펴보니 한꺼번에 모두 다 체결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동시에 체결하기엔 부담요소가 많다. 보는 각도에 따라 이해관계도 미묘하게 다르다는 걸 느꼈다. 천천히 했으면 한다. FTA의 본격 가동엔 상당한 시간과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 여기엔 국민 설득 과정도 필수다. 향후 만만찮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다만 한ㆍ중ㆍ일 3국의 FTA는 함께할 수 있는 공통점이 많다. 앞서 발표자들이 언급한 금융ㆍ에너지ㆍ환경문제 등은 급박한 협력이 필요한 문제들이다. 아시아를 연구하는 종합연구소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도 좋아 보인다. 다만 여기엔 권위를 부여해줘야 한다. 여기서 생산된 보고서를 또 하나의 그저 그런 리포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중국ㆍ일본의 입장에서 봤을 때 한국은 아주 작은 나라다. 위치도 굉장히 미묘하다. 그간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우리에게 늘 부채였다. 앞으로 이것을 자산으로 만드는 게 한국인들의 중요한 과제다. 그러자면 한국은 외교의 천재국가가 돼야 한다. 지금보다 훨씬 열린 마인드가 필수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아 안타깝다. 체질화된 민족주의와 폐쇄주의는 버려야 한다.돋보기 질의·응답중국행 외자기업 혜택 없어질 듯Q. 최근 중국 정부가 내수시장을 키우겠다고 방침을 바꿨는데요. 그럼 외자유치 정책도 바뀌나요.A. 장연링 소장 = 중국의 무역의존도는 엄청납니다. 수출입이 GDP의 80%를 차지하는 나라는 거의 없어요. 다만 지금부터는 그간의 수출주도 성장모델에서 내수시장 활성화에 더 역점을 두겠다는 게 정책변화의 배경일 겁니다. 어쨌든 경제발전이라는 절대과제가 바뀐 건 아니죠. 물론 정책변화가 외자유치에 적잖은 영향은 미치겠지만, 이건 향후 중국 정부가 내외국 기업 상관없이 좀더 공평한 정책을 취할 때 일어날 수 있을 겁니다. 기본적으로 외자유치는 계속 반기겠지만, 과거처럼 외자에 혜택을 주는 건 국내 여론이 반대할 거예요. 중국 정부의 입장은 외국기업에 자국기업과 동등한 대우를 하겠다는 거죠. 이게 결론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는 있을 겁니다.Q. 동북아경제협력체 창설은 어려운 과제입니다. 역사문제ㆍ북핵문제 등 경제 외적인 문제도 걸림돌인데, 과연 극복할 수 있을까요.A. 테라시마 지쓰로 이사장 = 일본인 중 80%가 전후세대예요. 정치에 관해선 별로 관심이 없죠. 현재 많은 일본인은 군국주의의 부활을 원하지 않아요. 물론 극단적인 예는 빼야겠지만 말이죠. 단지 민족주의가 조금 높아지고 있는 정도예요. ‘작은 벌레에게도 영혼이 있다’는 속담처럼 누구나 조국을 사랑합니다. 일본의 현재 민족주의는 중국ㆍ한국에 무시당하고 싶지 않다는 차원이에요. 지금 일본은 미국의 주변국이라 해도 좋을 만큼 너무 의존적이에요. 자립자존을 찾는 게 진정한 의미의 민족주의일 겁니다. 미국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아시아 국가들과의 신뢰관계를 깊게 가져가는 게 좋은 이유죠.Q. 미국의 초조함을 해결하는 데 일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는데요. 미국은 왜 초조한가요.A. 테라시마 지쓰로 이사장 = 9ㆍ11테러 이후 4년간 미국은 이상해졌어요. 테러공격과 이라크전쟁을 겪으며 제2의 매카시즘까지 조성했죠. 모든 게 힘으로 해결 가능하다는 자부심에서 이제는 테러의 공포심으로 바뀌었어요. 전쟁만이 해결책이 아니란 걸 깨달은 거죠. 미국은 현재 피폐해 있고 초조함을 느끼고 있어요. 쌍둥이 적자나 국방비 문제도 엄청나죠. 현재는 전쟁경제로 보기엔 활기차지만 경제 펀더멘털은 나빠요. 미국은 지금 피곤합니다. 이 와중에 중ㆍ일동맹까지 생기면 고립감이 더 심해지죠. 아시아 연계가 지금보다 더 심화되면 고립은 피할 수 없어요. 미국을 뺀 아시아 논의에 필사적으로 반발하는 이유죠. 미국을 배제한 아시아 연대는 굉장한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결국 미국에도 책임 있는 역할을 주고 아시아 협력을 심화시키는 게 현실적이죠. 이런 점에서 일본 역할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