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년 중남미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취미삼아 수집을 하다가 박물관 건립의 꿈을 키웠지. 나는 가면이나 공예품을, 홍원장은 값나가는 골동품을 주로 수집했어. 이 문화원은 홍원장이 처음부터 하나하나 만든 것이나 다름없어. 한눈에 보기에도 구석구석 손때가 묻어 있잖아….”이웃집 할아버지처럼 인자한 인상의 이복형 중남미박물관 관장(74)은 경기북부의 명소로 떠오른 중남미문화원(박물관, 미술관, 조각공원) 설립의 공을 부인인 홍갑표 이사장(72)에게 모두 돌렸다. 자신은 아침마다 마당 쓸고 정원수를 가꾸며 관람객에게 중남미 문화를 강의하는 ‘머슴’에 불과하단다. 반면 홍이사장은 “이관장이 문화원의 얼굴”이라며 모든 공을 남편에게 돌렸다. 가을 햇살만큼이나 밝게 웃는 부부의 얼굴에서 제2의 인생을 함께 꾸리는 기쁨이 그대로 묻어난다.부부가 박물관 설립에 나선 것은 지난 93년. 수집을 하면서 ‘은퇴 후 중남미박물관을 세우자’고 의기투합한 터라 정년퇴직과 함께 바로 실행에 옮겼다. 40여년 전 노후를 위해 사둔 땅에 박물관부터 지었다. 시간을 두고 미술관(97년), 조각공원(2001년)까지 마련했다. 일시불로 받은 퇴직금을 공사비에 쏟아붓고도 모자라 대출까지 받아야 했지만 뜻을 꺾은 일은 없었다고. IMF 위기 때는 전기세가 밀릴 정도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몸에 밴 근검절약으로 위기를 넘겼다. 스스로에게 쓰는 돈을 최대한 절약하면서 문화원을 제대로 만드는 데 전력투구한 것이다. 그런 노력 덕에, 중남미문화원을 찾는 관람객들이 해마다 쑥쑥 늘고 있다.“우리 박물관과 미술관은 고고하기만 한 분위기가 아니야. 누구나 와서 세계를 향해 시야를 넓히고 아담한 정원에서 휴식을 취할 수가 있지. 편안한 박물관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 같아.”실제로 중남미문화원은 유치원생부터 대학생의 단체관람은 물론 각급 단체의 견학지로 지명도가 높다. 특히 중남미 외교사절의 방한시 꼭 들리는 코스로, 국가간 교류에도 한몫 하고 있다. 은퇴 후에도 중남미 전문 외교관의 역할을 유감없이 해내고 있는 셈이다.문화원을 찾는 관람객들은 고대 잉카문명과 마야문명, 아스텍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3,000여점의 전시품들을 둘러보면서 연방 탄성을 내뱉곤 한다. 40여년 전 처음 땅을 살 때 부부가 함께 심었던 묘목들이 자라는 정원 곳곳에서도 ‘아름답다’는 감탄사를 쉽게 들을 수 있다. 어느 하나 허투루 만들지 않은 부부의 세심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최근 정부는 이관장 부부의 공을 높이 사 문화의 날 기념 문화훈장을 서훈했다. 이관장은 “8개국에서 12개 훈장을 받고, 수교와 올림픽 유치에 기여했다며 훈장을 받아도 봤지만 이번 문화원으로 받은 훈장이 참 값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문화원에 대한 애정이 깊은 까닭이다.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이관장은 “지자체나 행정당국에서 문화를 외치는데,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먼저”라고 지적했다.“개인 수집가들이 박물관을 제대로 운영하기가 정말 어려워. 문화재 약품 처리나 도록조차도 돈이 없어 못 만들 정도야. 지난해부터 복권기금이 생겨 형편이 좀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멀었어.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는 만큼 대접을 해줘야지.”이관장 부부는 장기적으로 중남미문화원을 국가에 기증할 계획이다.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를 지닌 소장품들에 ‘개인적인 욕심’은 있을 수 없다”는 지론이다. 이 계획은 13년 전 박물관 설립을 실행에 옮길 때 온 가족에게 공표한 내용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