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거리, 구경거리 많은 동네로 유명한 서울 삼청동. 유명한 미술관들을 지나면 골목골목에 보석같이 빛나는 개인 박물관이 숨어 있다. 삼삼오오 짝을 이룬 여성들이 들어가는 곳은 ‘아프리카 그리고 장신구’전이 열리고 있는 세계장신구박물관. 모던한 외관의 자그마한 박물관에는 쉽게 볼 수 없는 아프리카 장신구들이 가득하다. 19세기 후반 모로코 여성들이 결혼지참금으로 삼았다는 커다란 호박목걸이, 13세기 에티오피아에서 만들어진 십자가 펜던트, 14세기 차드 사오족의 왕이 착용하던 청동팔찌 등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문화재급 장신구들이다.이곳은 김승영 전 아르헨티나 주재 대사(큐레이터)와 부인 이강원씨(관장), 두 딸인 김윤정(부관장ㆍ박물관학 석사), 김윤지씨(실장ㆍ큐레이터)가 함께 운영하는 ‘가족 박물관’이다. 이강원 관장은 “외교관 가족으로 남미와 아프리카를 다니면서 아름다운 장신구에 반해 수집을 시작한 게 박물관 설립으로 이어졌다”면서 “시장에서 돈을 주고 사기보다 현지인들과 어울리면서 수집한 장신구가 대부분이어서 그 가치는 말로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특히 세계의 장신구를 한자리에 모은 박물관은 유럽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어 해외로 널리 입소문이 나고 있다. 김윤지 실장은 “우연히 들렀다가 깜짝 놀라는 외국인 관람객이 적잖다”면서 “해외 박물관에서 교류전 제의가 이어지고 있는 등 세계화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고 말했다. 이관장도 “지난해 개관한 신생 박물관이지만 조만간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자리잡을 것이라 믿는다”면서 “친근한 박물관으로 만들기 위해 각종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세계장신구박물관처럼 무엇인가가 좋아 열심히 수집한 이들이 박물관 형태로 즐거움과 가치를 나누려는 시도가 눈에 띄게 늘었다. 국가나 지자체, 기업이나 종교단체가 아닌 순수 개인이 운영하는 개인 박물관은 최근 몇 년 사이 전국 곳곳에서 하나둘씩 늘고 있는 추세다. 갓 태동기를 지나고 있는 새로운 문화사업, 예술경영 아이템이다.서울만 하더라도 종로구 삼청동, 가회동, 평창동, 대학로 등지에 다양한 주제의 개인 박물관이 적잖다. 모두 수십년간 수집활동을 해 온 이들이 사재를 털어 공간을 마련하고 소장품을 전시하는 곳들이다. 하나같이 개성이 강하고 소장품 하나하나, 전시공간 구석구석에 정성이 묻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부인 강인숙 건국대 명예교수는 지난 2001년 평창동 자택 옆에 건물을 짓고 자신들의 이름을 딴 문학자료박물관 영인문학관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봄, 가을마다 기획전이 열리고 문인들의 육필원고, 편지, 문방사우 수천점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강인숙 관장은 “지난 69년 이어령 선생이 만들었던 한국문학연구소의 연장선에서 문학관을 만들었다”고 밝히고 “<문학사상>을 통해 모은 자료와 문인의 애장품, 작품 서두 등을 모은 것을 추가해 박물관을 꾸몄다”고 설립배경을 설명했다. 영인문학관 인근에는 화정박물관, 한국가구박물관, 운우판화미술관 등 개인 박물관과 중대형 미술관, 아트센터가 적잖아 ‘문화 벨트’로 불리기도 한다.삼청동, 가회동 일대는 개인 박물관 밀집지로 이름이 높다. 주로 아담한 분위기로 ‘박물관은 딱딱하고 엄숙하다’는 선입관을 깨는 데 적잖은 기여를 하고 있다. 또 교육적인 효과에 주목한 학부모들이 가족 나들이 장소로 찾는 경우가 늘고 있어 ‘다목적 문화지대’로 자리를 잡는 모습이다.티베트박물관의 경우 인테리어 디자인 사업을 하는 신영우 관장이 수십년간 티베트를 드나들며 모은 유물들을 70여평 공간에 전시했다. 최근 몽골 청동기 유물 2,500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한 신관장은 패션, 영화, 문화행사와의 다양한 접목을 통해 ‘열린 박물관’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김진규 학예실장은 “프랑스 <르몽드>지에 소개된 이후 외국인 관광객수도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세계에서 티베트 문화만을 주제로 삼는 개인 박물관은 이곳이 유일하다”면서 “모은 소장품은 개인 소유가 아니라 관람하는 이의 소유라는 게 박물관의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열린 박물관을 넘어 무소유, 공유의 박물관으로 만들었다는 설명이다.평범한 전업주부가 평생 모은 물건을 모아 만든 이색 박물관도 있다. 삼청동의 부엉이박물관은 배명희 관장이 중학교 때부터 틈틈이 모은 부엉이 관련 물건들로 25평 남짓한 박물관을 채워 이목을 끈다. 배관장은 “지혜의 상징이고 곡식을 보호하는 익조인데다 눈이 아주 예뻐 좋아한다”면서 “아들의 권유로 수집품을 여러 사람에게 내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27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다 3년 전 박물관을 열면서 순식간에 ‘관장님’이 된 셈이다.부엉이박물관은 여러 면에서 다른 개인 박물관과는 다른 점이 있다. 우선 어느 곳보다 친근한 이미지로 다가간다는 것. 배관장은 평상복에 앞치마를 두르고 관람객을 맞이한다.맛있는 쌍화차를 대접해 인근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사랑방 역할도 하고 있다. 관람객층도 유치원생부터 지방에서 나들이 온 주부 계모임, 외국인 관광객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는 “박물관을 만들기 위해 외국을 다니거나 다른 박물관을 찾은 적은 없다”면서 “그저 손때가 묻은 물건들을 재미있게 봐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지방에서도 훌륭한 소장품과 각종 프로그램으로 호평을 받는 개인 박물관이 적잖다. 수도권에서는 고양 중남미문화원, 강화 덕포진교육박물관, 남양주 자연사박물관 우석헌 등이 대표적인 개인 박물관으로 꼽히며 경남 밀양시 미리벌박물관, 원주 영주사고판화박물관 등도 관람객이 많이 찾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