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거주하는 한국인치고 김치에 관한 에피소드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매우 드물다. 일본에서 한국인 하면 ‘김치’를 떠올릴 정도로 김치는 한국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이 됐다.한국이 지금보다 못살고 대외이미지가 나빴던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에서 김치 때문에 곤욕을 치른 한국인들은 꽤 많았다. 아파트의 경우 집에서 김치를 먹다가 이웃집으로부터 항의를 받아 분쟁으로 번지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 퇴근길에 한국식당에 들러 불고기나 김치를 먹고 전철을 타면 김치냄새를 맡고 눈살을 찌푸리는 일본인들도 많았다.그러나 이제 일본에서는 적어도 김치 때문에 ‘고민’은 안 해도 되는 시대가 됐다. 한국사람보다 더 김치를 좋아하는 일본인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내로라하는 재벌가 오너 중에서 김치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이 많다는 건 잘 알려진 얘기다. 웬만한 중산층 가정에선 냉장고에 김치를 넣어두고 먹는 집이 드물지 않다.얼마 전 평소 신세를 지고 있는 노무라증권의 유명 애널리스트에게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한턱 낸 적이 있었다. 그는 갈비를 매우 좋아해 3인분을 먹어치웠다. 게다가 배추김치는 물론 오이김치를 좋아 한다고 해 추가 주문을 한 적이 있다.그에게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냄새를 피워도 괜찮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일본에서 갈비, 김치를 먹는 사람들은 다 잘나가는 사람들이다”며 “요즘은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 열차에서 김치냄새가 나도 별로 눈총을 안 받는다”고 말했다.김치만 놓고 보면 일본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기자도 일본생활 3년이 다 돼가지만 김치 덕을 많이 보고 산다. 평소 신세를 졌거나 중요한 인터뷰를 한 사람들에게 김치를 선물하면 효과가 1년은 간다. 김치를 선물하고 나서 두고두고 인사를 받은 적도 많다.2002한ㆍ일월드컵 공동개최를 계기로 한류 붐이 시작됐지만 역시 일등공신은 김치다. 올 초 독도와 역사교과서 문제를 둘러싸고 양국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한풀 꺾였던 한류 붐이 최근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도 ‘김치 맛’에 입맛을 들인 잠재적 ‘한국팬’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일본 김치시장은 매년 커지고 있다. 일본 김치시장 규모는 2001년 35만1,000t에서 2002년 38만6,000t으로 증가한 뒤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한국산 김치의 일본 수출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이 세계에 수출한 김치 3만3,000t 중 94%에 달하는 3만1,000t(약 8,700만달러)이 일본으로 수출됐다. 올해도 3만2,000t(약 9,700만달러) 가량이 일본시장으로 수출될 것으로 한국농수산물유통공사측은 전망하고 있다.대부분의 유통업체들 김치 취급김치 마니아들이 늘어나면서 일본에서 김치로 떼돈을 버는 성공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아카사카, 신주쿠 등에 밀집한 한국식 ‘야키니쿠’(불고기) 식당의 경우 고기 맛과 함께 김치 맛으로 승부를 걸고 있다. 긴자의 ‘오주리’, 롯본기의 ‘진로가든’, 신주쿠의 ‘대사관’ 등 도쿄에서 이름난 한국식당들의 성공비결은 바로 김치다.도쿄에서 가장 큰 한국슈퍼 ‘한국장터’를 운영하는 김근희 사장(53)도 김치로 성공한 대표적 사업가다. 올해로 일본에 온 지 만 20년이 된 김사장은 현재 신주쿠 대로변에 10여곳의 대형매장을 운영 중이다. 슈퍼에서 식당, 서점, 공예점, 호텔 등으로 사업을 확대해 직원수 200여명, 연간 매출 43억엔(약 430억원)의 기업으로 성장시켰다.동포들이 운영하는 상점뿐만 아니라 일본 유통업체들도 대개 김치를 취급하고 있다. 슈퍼나 할인점에 가보면 김치는 소비자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돼 있다. 동네 상권을 장악한 편의점에서도 김치를 판다. 그만큼 김치가 대중화됐고 수요층이 넓다는 의미다.일본의 김치시장에서 한국산 수출품 비중은 10%선이다. 하지만 일본 내에서 김치를 만들어 파는 재일동포나 한국 관련 업체들도 많아 한국계 비중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김진영 농수산물유통공사 도쿄관장은 “한류 붐 덕택에 가격이 다소 비싸도 한국산을 찾는 일본인이 많아 마케팅만 잘하면 김치 수출을 지속적으로 늘릴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한국에서는 10월 이후 중국산 김치의 위생문제가 불거지면서 한ㆍ중 무역마찰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일본의 경우 중국으로부터 매년 3,000~5,000t 가량의 김치를 들여오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일본업체가 중국 현지에 설비투자를 한 뒤 품질관리를 해 들여오는 김치가 많아 중국산이라도 알맹이는 일본회사 제품이 대부분이다. 중국업체의 김치를 그대로 들여와 파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특히 수입식품의 통관을 책임지는 후생노동성의 경우 수시로 수입품에 대한 검사를 실시해 품질에 문제가 생기면 즉각 수입금지 조치를 내린다. 특히 수입식품에 문제가 생길 경우 수입하는 일본업체들도 벌금 등 피해가 돌아가기 때문에 식품 위생관리는 매우 철저하게 이뤄지고 있다.일본으로 수출되는 한국산 김치의 경우 대기업 제품이 많아 현재까지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김치의 위생 문제가 국제적 이슈가 된 만큼 일본에 수출하는 김치도 품질관리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일본 NHK 등 주요 방송사들은 11월3일 저녁 한국산 김치의 위생문제를 처음으로 보도했다. 그동안 일본 언론들은 한ㆍ중간 김치분쟁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나 한국 정부가 한국산 김치에서 기생충이 발견됐다고 공표한 뒤 파장이 확산되는 양상이다.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측에 기생충 발표 관련 자료를 공식 요청한 데 이어 수입산 김치에 대해 전면적인 검사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한국산 김치를 수입, 판매하는 한국기업은 물론 일본 내에서 동포들이 운영하는 식당 등 매장들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현지 관계자들은 우려하고 있다.일본 소비자들의 위생의식은 워낙 철저해 일단 문제가 불거진 이상 한국산 김치 판매는 상당히 위축될 전망이다. 후생노동성의 수입산 김치 검사결과 문제점이 나타날 경우 해당 메이커뿐만 아니라 한국산 김치 전체에 대해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실제로 김치의 위생문제가 표면화될 경우 한류 붐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 문화상품을 대표해 온 김치에 문제가 발견된다면 ‘반한류’ 정서를 가진 비판론자들에게 공격의 빌미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한류 붐이 본격화되면서 일본 김치시장은 매년 커져왔다. 김치시장 규모는 2001년 35만1,000t에서 2002년 38만6,000t으로 증가한 뒤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의 김치시장에서 한국산 제품은 약 9.3%를 차지했다.한국산 김치의 일본수출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이 수출한 김치 3만3,000t중 94%에 달하는 3만1,000t(약 8,700만달러)이 일본으로 수출됐다. 올해도 3만2,000t(약 9,700만달러)을 목표로 하고 있으나 차질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