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최대 히트상품으로 꼽히는 적립식펀드. 금융권에 휘몰아친 적립식펀드 덕택에 증시는 생기발랄한 기운으로 넘치고 관련업계는 입이 함지박만하게 벌어졌다. 일반 가정에서는 제법 쏠쏠한 수익률을 확인하는 맛에 가장들 표정이 모처럼 밝아졌다.적립식펀드가 두루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10월 중 10조원 돌파가 확실시되는 가운데 ‘국민 금융상품’으로 자리를 잡는 모습이다. 8ㆍ31대책으로 직격탄을 맞은 부동산은 멀찌감치 따돌리고 이미 재테크시장 ‘지존’ 자리를 꿰찬 분위기다. 뿐만 아니라 증시를 부양하는 든든한 자양분으로, 무한한 고객몰이가 가능한 핵심 금융상품으로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무엇보다 적립식펀드를 통해 간접투자, 장기투자 패턴이 정착되고 있는 점이 높게 평가된다. 김영익 대신증권 리서치센터 상무는 “적립식펀드가 주가 상승의 견인차 역할은 물론, 일반투자자들의 간접투자 문화를 정착시키는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하고 “단기 위주 투자패턴을 장기로 전환시키는 데도 한몫 하고 있다”고 밝혔다.증시 - 지수 견인차… ‘파워가 대단해요~’종합주가지수 1200시대를 연 일등공신이 바로 적립식펀드다. 과거 지수 1000을 오르내릴 때는 몇몇 변수들이 함께 거론되곤 했지만, 올 들어서는 입을 모아 적립식펀드에 공을 돌리는 분위기다. 그만큼 지수 견인차로 대단한 파워를 발휘하고 있다는 이야기다.적립식펀드의 위력은 올 초 지수가 900선을 넘어서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통상 지수가 오르면 개인은 매도를 통한 차익실현에 나서고 기관들도 매수규모를 줄이기 마련이지만, 올해는 양상이 사뭇 달랐다. 매달 수천억원이 유입되는 적립식펀드 자금을 지렛대 삼아 900선 이후에도 개인과 기관이 매수규모를 늘렸고, 이 덕분에 지수가 1200선까지 내달릴 수 있었다는 것이다.실제로 적립식펀드 가운데 주식형의 비율은 절대적이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지난 8월 주식형펀드는 총 6,970억원이 증가해 전체 적립식펀드 증가금액 가운데 92.2%를 차지했다. 적립식펀드 증가금액의 대부분을 주식형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자산운용협회 관계자는 “특히 8ㆍ31대책과 추석연휴 이후 주식형펀드 유입액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고 밝히고 “주식형의 약진에 힘입어 10월 중 적립식펀드 10조원 돌파가 무난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부동산시장의 침체가 뚜렷해지면서 주식시장으로 유입되는 적립식 자금들이 훨씬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적립식펀드의 힘은 월말효과, 월요일효과, 월중효과라는 신조어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월말효과는 월급날이 몰려 있는 월말에 펀드에 자금이 들어오면서 주가가 크게 오르는 현상을, 월요일효과는 토ㆍ일요일 이틀을 쉰 운용사들이 월요일에 주식을 사들이면서 주가가 급등하는 것을, 월중효과는 적립식펀드의 인기폭발로 이렇다 할 조정 없이 한달 내내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한마디로 적립식펀드의 약진으로 주식시장이 쉼 없는 상승을 거듭하고 있다는 이야기다.전문가들은 적립식펀드 열기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적립식펀드 유입자금을 기반으로 한 주식시장의 상승세도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주식형펀드 유입액이 갈수록 급증 추세인 가운데, 8ㆍ31대책 이후 한달 만에 3조원이 넘는 돈이 주식형펀드로 쏟아져 들어갔다는 통계도 나왔다.하지만 지나치게 풍부한 자금이 문제를 낳을 가능성도 적잖다. 당장은 막대한 자금유입에 따라 주가가 올라 반갑기 이를 데 없지만 펀더멘털을 고려치 않은 주가상승은 결국 거품으로 이어진다는 지적이 그것이다. 김영익 대신증권 리서치센터 상무는 “투자 문화가 변화하는 초기단계여서 부정적인 면이 잘 보이지 않지만, 이 추세대로라면 주가가 경제성장 등 펀더멘털을 벗어나면서까지 오르게 돼 결국 버블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도 “지나치게 많은 자금이 유입되고 있어 솔직히 부담스러운 입장”이라고 밝히고 “특히 개인투자자들이 펀드에 대한 환상을 갖고 접근하는 측면이 커, 이는 향후 주식시장 안팎에서 악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가계 - 금융문맹도 ‘적금 대신 적립식펀드’A중소기업에 근무하는 김성근 과장은 지난해 겨울 증권사에 다니는 대학 동창으로부터 적립식펀드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회사에서 가입자 확대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으니 한 계좌 도와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월 10만원씩 불입하기로 했다. 못마땅했던 아내는 “여유가 없는데 왜 가입했냐”며 며칠 동안 잔소리를 멈추지 않았다.하지만 요즘은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김과장은 지난 5월 주식형 적립식펀드에 추가로 가입, 빠듯한 봉급을 쪼개 매월 10만원을 더 불입하고 있다. 그는 “처음 가입한 적립식펀드 수익률이 30%를 넘어섰다”면서 “연말에 매달 30만원씩 불입하는 적금이 만기가 되면 계좌를 하나 더 개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번에는 아내도 적극 동의했다.직장인 사이에서 적립식펀드는 ‘적금 대용’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한 집 건너 하나씩 가입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가입 속도가 빠르다. 적립식펀드 계좌는 지난 3월 233만좌에서 8월 350만좌로 매달 20만~30만좌씩 증가하는 추세다. 이 때문에 3~4좌를 가진 직장인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청약통장처럼 ‘누구나 가입하는’ 상품으로 자리를 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적립식펀드에 개인투자자가 몰리는 배경은 저금리와 부동산시장의 침체, 주식시장의 활황으로 요약된다. 마이너스나 다름없는 예금금리의 맹점을 커버하면서, 목돈이 없어도 고수익을 노릴 수 있다는 점이 개인투자자를 대거 이끌었다. 또 활기를 되찾은 주식시장에 간접 참여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참여정부의 부동산 투기 억제책이 가시화되면서 대체투자처로 적립식펀드가 부각됐다는 분석이다.특히 재테크에 전혀 관심이 없어 ‘금융문맹’이라 불리는 이들도 ‘필수 가입 상품’으로 받아들일 만큼 인기가 폭발적이다. 간접투자, 장기투자를 특징으로 삼는 적립식펀드가 금융상품 선두주자로 떠오르면서 재테크 패러다임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직장생활 시작 후 은행 적금 하나만 고집해 ‘금융문맹’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간호사 오미정씨는 최근 적립식펀드에 가입,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는 “펀드는 원금보장이 안된다는 생각에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지만 주식시장이 계속 상승세이고 수익률이 정기적금보다 훨씬 높다는 말에 시도해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매일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수익률을 체크하면서 난생처음 투자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다”고 덧붙였다.재테크시장을 움직이는 파워로 알려진 서울 강남의 아파트 반상회에서는 몇 달 전부터 화제가 부동산에서 주식과 펀드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뿐만 아니라 부동산 투자용으로 마련해 둔 자금을 적립식펀드에 일시불로 불입한 후 거치식으로 운용하려는 수요도 늘고 있다. S증권 지점에 근무하는 하모 차장은 “강남지역 지점에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의 자금을 적립식펀드 계좌에 한꺼번에 예치시키는 투자자가 적잖다”면서 “8ㆍ31대책 발표 이후 뚜렷해진 현상”이라고 밝혔다.이상건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 같은 현상을 두고 ‘재테크시장에서 적립식펀드가 승기를 잡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투자자 관심이 부동산에서 주식, 적립식펀드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음이 피부로 느껴진다”면서 “강남 투자자의 마인드 변화는 재테크시장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최근에는 적립식이 나은가, 일시불 거치식이 나은가를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시장이 점차 무르익으면서 적립식펀드 포트폴리오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싶어 하는 수요도 늘고 있다”고 전했다.가입 창구로 가장 많이 이용하는 시중은행들에도 문의가 크게 늘었다. 조흥은행 무교지점 한 관계자는 “고객이 먼저 가입문의를 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말하고 “주가가 많이 올랐는데 지금 가입해도 되냐고 묻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밝혔다.관련업계 - ‘영업 효자’ 점유율 높이기 안간힘국민은행은 지난 10월13일 놀랄 만한 기록 하나를 세웠다. 적립식펀드 계좌수 100만좌를 돌파, 업계 지존 자리를 확인하면서 적립식펀드의 파워 또한 재확인시켰다.100만좌 달성 기록은 주식형 적립식펀드(정액적립식)를 판매한 지 2년 9개월 만에 이룬 것이다. 판매금액도 9월 말 현재 2조4,182억원으로 적립식펀드 판매시장에서 약 24%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이 기록은 지난해 말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어서 최근의 적립식펀드 돌풍을 단적으로 보여준다.증권ㆍ투신ㆍ은행은 ‘올인’이나 다름없는 전략으로 시장점유율 높이기에 나선 상태다. 지난해부터 각 사별로 가입자 확대 캠페인을 실시하는가 하면, 각종 경품 이벤트와 가두 판촉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모습이다.금융사들이 적립식펀드 마케팅에 주력하는 이유는 몇가지로 나눠진다. 은행의 경우 저금리 때문에 떠나간 고객을 다시 불러들이는 상품으로 이만한 게 없고, 눈앞의 수수료 수입도 적잖다. 증권사들은 투자패턴의 장기화를 통한 고객창출 효과가 상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직접투자를 꺼리는 이들을 간접투자로 주식시장에 참여시키는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 무엇보다 주식시장을 견인하는 동력으로 적립식펀드의 역할이 지대한 까닭에 전력투구를 해야만 하는 입장이다. 또 자산운용사들은 일반투자자에게 불신을 받았던 펀드상품에 대한 인식을 바꾸면서 운용수익을 거머쥘 수 있는 창구로 절대적인 존재나 다름없다. 저마다 절박한 이유로 마케팅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현재 적립식펀드 판매에는 63개 금융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 가운데 상위 10개사가 전체 판매규모의 73.2%를 차지하고 있다.특히 은행권의 약진이 뚜렷하다. 국민은행을 비롯, 10위권에 5개 은행이 포진하고 있는 가운데 판매잔액 규모도 증권업계를 크게 앞지르고 있는 상태다. 자산운용협회의 집계에 따르면 은행권의 적립식펀드 판매잔액은 8월 말 현재 5조2,970억원으로 증권업계의 3조9,410억원에 비해 크게 앞서고 있다. 은행권이 적립식펀드 히트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특히 은행의 안정적인 이미지와 많은 점포수로 고객접근성을 높인 게 약진의 배경으로 풀이된다. 이인영 국민은행 투신상품팀 과장은 “월평균 7만여좌에 1,500억원씩 금액이 증가하고 있을 만큼 인기몰이 중”이라고 밝혔다.자산운용사 중에서는 미래에셋 계열이 단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미래에셋투신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적립식펀드 인기에 불을 지핀 ‘미래에셋 3억 만들기 적립식펀드’의 성공에 힘입어 시장점유율을 25% 수준까지 끌어올렸다. 8월 말 현재 두 회사의 주식형펀드 수탁액은 각각 1조2,202억원과 6,357억원에 달한다. 2년 전인 2003년 9월, 두 회사 수탁액이 전체의 5.2%에 불가했던 점을 감안하면 눈부신 성장세다.미래에셋 관계자는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고 할 만큼 성장세가 뚜렷하다”고 밝히고 “미래에셋의 운용전략에 따라 개별기업 주가가 출렁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영향력이 커졌다”고 말했다.한편 일부 판매사가 과당경쟁의 폐해를 드러내고 있어 투자자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이 내놓은 <적립식펀드의 현황과 과제> 보고서는 ‘일부 판매사가 과대광고나 판매수수료 문제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어 감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