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기업경영의 축소판이다. 감독이 경영자라면 선수는 직원이다. 기업이 흑자와 적자를 오르내리듯 스포츠팀 역시 우승과 꼴찌를 오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투자한 만큼 거둔다’는 말 역시 스포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신한은행 에스버드 여자농구단지난 9월 끝난 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에서 창단 1년째를 맞은 신한은행(구단주 신상훈 신한은행장)이 당당히 우승컵을 안았다. 당초 하위권을 맴돌 것이라는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챔피언 자리에 오른 것이다. 특히 창단 후 처음 출전한 지난 겨울리그에서 꼴찌의 수모를 당했지만 이번 리그에서 우승을 일궈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그렇다면 신한은행이 최고의 실적을 거둔 이유는 무엇일까. 기업경영에서 최고의 인사정책은 실력 중심의 인재등용으로 요약된다. 혈연이나 지연, 혹은 개개인의 명성을 떠나 오직 실력으로만 사람을 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번 시즌에서 신한은행의 선수기용이 그랬다. 선수들의 평소 이름값은 철저하게 무시하고 오로지 컨디션이 좋고 실력이 뛰어난 선수들을 집중 활용했다.이 과정에서 코칭스태프는 이전까지 벤치워머로 큰 활약을 하지 못했지만 잠재력이 풍부했던 진미정, 선수진, 박선영, 최윤아 등을 집중 조련해 우승의 주역으로 성장시켰다. 김동윤 신한은행 농구단 사무차장은 “이들 선수는 비록 무명에 가까웠지만 신임 이영주 감독이 이들의 능력을 믿었고, 선수들 또한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다”고 설명했다.또 코치로 물러나며 코트를 떠났던 전주원을 컴백시켰다. 최고의 전력으로 무장하기 위해서는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전주원이 꼭 필요하다고 판단한 결과였다. 전문가들조차 주부인 전주원이 과거의 기량을 되찾을까 의아해했지만 이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리그 내내 최고의 기량을 뽐내며 복귀를 강력 요청했던 코칭스태프의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하는 활약을 펼쳤다.팀워크를 극대화시킨 점도 신한은행 우승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어느 조직이든 팀워크가 깨지면 변변한 실적을 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아무리 첨단시대라고 하지만 일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우선 이영주 감독은 팀을 맡으면서 곧바로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김모 선수를 전격 트레이드시켰다. 주위에서 큰 우려를 나타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팀워크를 다지기 위해 간판선수마저 내보냈다. 이감독은 “당장 눈앞의 성적보다 팀워크와 화합을 강조한 것이었고, 먼 미래를 내다본 결단이었다”고 말했다.리그 개막 전 새로 합류한 위성우 코치의 역할도 컸다. 위코치는 지도자 초년병답지 않게 선수와 감독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그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감독이 놓칠 수 있는 부분을 정확하게 파악해 감독에게 전달하는 등 전력을 배가시키는 데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체계적인 훈련 프로젝트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먼저 선수들의 자신감 향상을 위해 전문강사를 초빙해 섭씨 1,000도가 넘는 숯불을 걸어서 통과하는 훈련을 반복했다. 또 사하라사막을 횡단한 신한은행 지점장을 모셔놓고 경험담도 들었고, 체력강화를 위해 삼천포 지옥훈련도 다녀왔다. 아울러 정신력 강화를 위해서 실미도 해병훈련을 감행하기도 했다.선수들의 체력을 담당해 온 김준 트레이너는 평소 외국 전문서적과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선진기법을 습득해 선수들에게 효과적인 트레이닝을 시켜 체력강화에 큰 도움을 줬다. 이감독은 “이번 리그를 통해 불가능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며 “자만하지 않고 더욱 노력해 한국여자농구 최고의 구단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강조했다.삼성 라이온즈지난 10월5일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대구에서 훈련을 하고 있는 삼성 라이온즈의 팀 미팅 시간. 양일환 투수코치는 선수단에 이렇게 말했다. “막아야 이긴다.”야구경기에서 이기는 방법은 두 가지다. 상대팀보다 더 많은 득점을 하거나 더 적은 실점을 하면 된다. 양코치는 후자를 강조했다.‘삼성’이기에 이런 강조법은 어색하게 느껴질 수 있다. 삼성은 전통적으로 화끈한 공격야구를 했다. 80년대 김일융과 김시진의 시대가 지난 후에는 더욱 그랬다. 95~2000년에 삼성의 팀 득점순위는 8개 구단 가운데 평균 3위, 팀 방어율은 6위였다. 이 시기 삼성을 대표한 선수는 이승엽과 양준혁이었다. 그러나 지난해와 올해의 스타는 배영수다. 삼성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3점대 팀 방어율을 기록했다. 과거 타격을 앞세운 삼성이 이제 투수들의 팀으로 변모하고 있다. 목적 달성(우승)을 위한 전략 변경이라는 점에서 야구적 의미의 ‘개혁’이다.올해 삼성은 주목할 만한 기록을 세웠다. 99년 이후 6년 만에 홈경기 방어율(3.76)이 원정 방어율(3.90)보다 좋았다. 99년은 팀 사상 최악의 방어율(5.16)을 기록한 해였다.삼성의 홈구장인 대구시민운동장은 투수들에게 가장 불리한 구장으로 꼽힌다. 비교적 짧은 외야 펜스거리에 여름 폭염은 투수들을 쉽게 지치게 만든다. 프로야구 사상 최다 득점 경기(38점)가 기록된 장소가 바로 대구시민운동장이다.프리에이전트(FA) 시장과 트레이드가 활성화된 메이저리그는 선수수급이 비교적 자유롭다. 그러나 국내 구단들은 외국인선수를 제외하면 선수수급을 아마추어 드래프트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팀 컬러’를 바꾸기가 그만큼 어렵다. 하지만 삼성은 ‘개혁’에 성공하고 있다. 그것도 약점을 강점으로 바꾼 ‘준비된’ 개혁이다.삼성구단 관계자들은 삼성의 변화가 2001년부터 시작됐다고 말한다. 김응룡 사장이 감독으로 부임한 해다. 김사장이 삼성의 감독을 맡은 지난 4년 동안 한해를 제외하곤 모두 팀 방어율 3위권에 올랐다. 5년째 이어지는 개혁작업인 셈이다. ‘지키는 야구’를 선호하는 김사장의 야구관은 후임 선동열 감독과 일치한다. 선감독도 1년 투수코치 수업 뒤 감독직을 맡았다. 자신이 맡을 팀의 핵심자원을 직접 관리하는 경험을 먼저 쌓은 셈이다. 코치 시절 선감독의 작품이 바로 삼성 에이스 배영수다.특히 삼성의 개혁은 ‘납득할 수 있는 개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올해 선감독은 93차례나 희생번트를 지시했다. 구단 사상 최다 기록이다. ‘지키는 야구’는 작전이 많고 1점을 중시하는 섬세한 특징을 가진다. 그러나 ‘감독 중심의 야구’를 좋아하는 선수는 없다. 모든 조직은 변화에 저항한다. ‘야구는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프로선수들은 ‘새로운 야구’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실제 선수와 코치의 관계는 아마추어 시절의 사제관계와는 거리가 멀다.조직 구성원에게 변화의 당위성을 납득시킨 게 삼성의 성공배경이다. 양코치는 “2002년에 구단 사상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따낸 뒤 선수단에 ‘이렇게 하면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자라났다”고 말했다.또한 개혁은 선구자 한 명의 지휘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 점에서 삼성은 프런트와 선수단과의 조화가 잘 이뤄져 있다. 김사장은 올해 선수들과의 공식적인 자리에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감독의 권한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스타 감독’ 출신 사장과 ‘스타 선수’ 출신 감독 사이는 당사자들의 뜻과 무관하게 갈등이 자라날 소지가 있다. 현장은 감독, 지원은 프런트라는 관계가 삼성에는 무난하게 자리잡고 있다. 신필렬 전 사장 시절부터 확립된 원칙이다.결국 삼성 라이온즈의 리더십은 기업경영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탁월했다. 원래 감독 힘으로 1년에 따낼 수 있는 승수는 5승 이하라는 게 정설이다. 감독의 역량은 바로 선수단 관리에서 나온다. 그래서 영어로 감독은 매니저(Manager)다. 프로야구선수들은 본능적으로 ‘직업 안정’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불안감은 ‘더 잘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될 수 있지만 자포자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를 관리하는 게 감독이 할 일이다.개혁은 안정된 상태를 흔드는 작업이다. 그러나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직의 안정이 필요하다. 김재걸과 김대익은 올해 감독의 믿음 속에서 출전기회를 얻은 선수들이다. 엄격하되 ‘선수들을 보호하는 감독’이라는 평을 얻은 게 올해 선감독의 성과 가운데 하나다.KT&G 여자배구단프로배구 원년도인 2005 V리그에서 KT&G 여자배구단이 창단 17년 만에 정상에 등극했다. 그동안 GS정유, 현대건설 그늘에 가려 만년 ‘넘버3’로 손꼽혔던 KT&G는 강력한 우승후보 현대건설과 도로공사를 물리치고 챔피언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지난해에 비해 전력이 크게 보강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국가대표 출신인 김남순과 세터 안혜정이 은퇴하며 전력이 약화됐다. 어려운 상황에서 이뤄낸 우승이기에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다.배구의 생명은 조직력이다. 구기종목 가운데 가장 다양한 작전과 선수들간의 호흡이 중요한 것이 배구다. 특히 한두 사람의 힘으로 승리할 수 있는 종목이 아니다. 코트에 선 6명 전원이 각자 맡은 바 임무를 최대한 발휘해야만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기업경영이 최고경영자(CEO) 한 사람만의 능력으로 원하는 목표를 얻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배구는 기업경영과 유사점이 많은 스포츠다. 기업경영과 스포츠 프로팀의 목표는 정상등극으로 같다. 기업은 치열한 경쟁에서 목표를 달성하고 이를 통해서만 존속하고 성장할 수 있다.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것이 경영의 기본철학이다. 배구도 마찬가지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원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야 한다. 특히 기업의 CEO가 그렇듯 감독은 선수영입부터 시작해 선수기용과 상대팀 전력분석, 작전지시 등 모든 권한을 갖고 있다.김형식 KT&G 감독(54)은 30년간 ‘배구판’에서 지도자의 길을 걸어왔다. 92년 사령탑을 맡은 김감독은 가장 먼저 선수들과의 벽을 허물었다. 물론 이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김감독은 질책보다 사랑과 칭찬으로 선수들을 대했다. 김감독은 선수들에게 믿음과 자신감을 심어줬다. 경기에서 이겼을 때는 선수들의 공으로, 패했을 때는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선수들은 자연히 김감독을 따르게 됐고 강한 믿음이 형성됐다. 선수들도 동료 이상의 끈끈한 정으로 뭉쳤다. 선수들은 동료를 위해 한 발짝이라도 더 뛰었고 코트에서 몸을 아끼지 않았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라는 말이 있듯 아무리 상대에 대한 전력분석이 뛰어나고 유명한 감독이라 해도 자기 선수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지 못하면 그 팀은 아무리 스타군단이라 해도 모래알에 불과하다. 특히 이러한 끈끈한 조직력은 위기의 순간에 팀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KT&G는 최고참 최광희를 구심점으로 라이트 박경낭, 레프트 임효숙, 센터 지정희, 김세영 등 신구가 조화를 이루면서 조직력을 극대화시켰다. KT&G 선수들은 “우리 팀이 우승에 대한 열망이 더 강했고 선수들간의 끈끈한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서로 다독이며 경기에 임한 것이 우승으로 이어졌다”고 우승비결을 밝히기도 했다.김감독은 또한 대회를 앞두고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다. 특히 김감독은 배구의 핵심 브레인이라 할 수 있는 세터를 교체했다. 세터는 볼 배급은 물론 팀 공격의 작전을 결정하는 위치다. 김감독은 그동안 팀의 주전 세터 안혜정 대신에 이효희를 기용했다. 훌륭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감이 떨어지는 이효희를 주전 세터로 기용했다. 처음에는 실수도 많았다. 김감독은 이효희의 잠재력을 믿었다. 결국 이효희는 자신감을 찾았고 과감하면서도 한 박자 빠른 토스를 구사하며 자신을 믿어준 감독에게 우승을 선물했다. 또한 김감독은 선수들에게 ‘멀티 능력’을 강조했다. 배구의 경우 포인트를 획득하면 선수들이 자리를 옮긴다. 따라서 공격수가 네트 앞에서는 센터처럼 상대의 공격을 블로킹해야 하고 후위로 물러나면 수비수로 변신해야 한다. 김감독은 “선수층이 얇은 우리 팀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두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면서 “공격수가 공격을 잘하는 것은 기본이고 수비까지 겸비해야 좋은 선수”라고 강조했다. 멀티능력과 탄탄한 조직력, 감독과 선수가 하나로 뭉친 KT&G의 우승은 당연한 결과물이었다.결국 KT&G의 우승이 시사하는 경영의 교훈은 CEO의 리더십에 관한 내용으로 귀결된다. CEO는 강한 리더십과 함께 조직원들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재적소에 적임자를 배치해야 한다. 학연, 지연, 혈연에 얽매인 인사는 불을 보듯 뻔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CEO는 선장과도 같다. 선원들에게 강한 믿음과 용기를 심어준다면 어떠한 악조건과 위기가 닥쳐도 슬기롭게 헤쳐나가 원하는 지점에 정착시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