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사회 전반에 걸쳐 반기업정서가 심상치 않다. 국가정보원 불법도청 내용 폭로, 두산그룹의 형제간 경영권 분쟁으로 인한 상호 비방과 분식 폭로, 국정운영 전반을 감사하는 국회에서 기업인 무더기 증인 채택, 시민단체들의 무차별 기업 때리기 등 반기업정서를 유발하는 악재들이 속출하고 있다. 마치 기업들이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이러한 반기업정서는 2001년 액센추어가 전세계 22개국 880개 기업 CEO를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결과에도 잘 드러나 있다. 그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반기업정서 순위는 조사 대상 국가 중 1위이며, 영국이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CEO 중 70%가 ‘국민이 기업가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대답해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로 평가되고 있다. 반면 네덜란드는 13%, 미국은 23%로 반기업정서를 느끼는 CEO 비중이 매우 낮아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대접받고 있다.그러면 세계 각국의 기업정서는 어떤가. 미국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기업가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체계적이고 다양한 교육을 통해 시장경제와 자본주의 원리를 습득시키고 있다. 이러한 시장경제에 대한 조기교육은 어려서부터 청소년들이 시장경제 원리를 습득하게 함으로써 부에 대한 시기나 질투보다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마인드를 형성시켜 준다.따라서 부를 소유한 사람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으며 일반인도 노력하면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인식이 사회 저변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인들의 기업에 대한 인식은 매우 우호적일 수밖에 없다.그렇다고 해서 반기업정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잇달아 발생한 엔론(Enron), 월드콤(Worldcom) 등의 분식회계사건은 기업인들이 부정직하다는 인식을 사회적으로 확산시켰다. 이로 인해 기업활동을 위축시키는 기업 투명성 규제를 강화하는 사베인ㆍ옥슬리법안이 통과되기도 했다.또 일부 시민단체는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경우 기업의 수익성은 당연히 제고된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운동에 대해 일부 경영진은 사회적 책임이 기업의 수익성을 증가시킨다고 굳게 믿고 있다.하지만 이러한 반기업 규제 및 활동이 미국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사베인ㆍ옥슬리 법안이 통과된 직후 미국 주식시장에서 일부 기업들이 이탈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또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운동에 대해 <이코노미스트>는 1월22자에서 ‘기업에 매우 해로운 것(Pernicious)’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의 경제학자인 아서 래퍼(Arthur Laffer)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반드시 수익성을 개선하는 것은 아니다’는 연구결과도 이와 일맥상통한다.스웨덴은 오랜 사회주의 전통에 따라 평등과 명분론을 강조하는 분위기로 특정기업의 독주를 견제하는 심리가 뿌리 깊었다. 그러나 70년대 OECD 회원국 중 1인당 GNP가 세계 3위였던 스웨덴 경제는 평등주의 정책으로 90년대에 17위 수준으로 떨어졌으며,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었다. 그 당시 노조가 임금균등화 정책을 추진한 결과 실업률이 20% 이상으로 치솟았으며 주식 배당소득에 대한 세율은 92%까지 늘어났다.이런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스웨덴 정부와 국민은 반기업정책이 경제성장을 떨어뜨리며 기업들의 국제경쟁력을 저하시킨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됐다. 결과적으로 기업이 잘돼야 국가경제는 물론 사회적으로 부를 증대시킬 수 있다는 마인드가 정착되면서 친기업정서가 확산됐다.특히 외국기업보다 자국 대기업이 국가경제에 유익하다며 대기업에 대한 반감이 거의 없는 편이다. 또 기업과 노조, NGO 등과 상호 대화채널을 마련해 기업의 문제점을 공유하고 상호협력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네덜란드는 실용주의적 사고가 지배적이어서 상업을 중시하며 기업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적고 기업과 시장경제에 대한 이해가 높은 나라 중 하나다. 네덜란드 문화는 사회적 합의를 매우 중요시한다. 따라서 문제가 발생하면 일반대중, 기업, NGO, 노조, 그리고 정부가 상호협의와 설득을 통해 해결해 나간다. 또 100년 이상 존속하고 우수한 경영을 유지해 온 기업에 대해서는 여왕이 직접 ‘로열’(Royal)이라는 칭호를 부여해 명예와 존경심을 표시하기도 한다. 따라서 국민의 기업에 대한 인식은 매우 우호적이다. 하지만 네덜란드 국민들도 환경오염 같은 기업의 잘못된 행위에 대해 엄격하게 비판한다.자본주의의 태동 국가인 영국은 한국 다음으로 반기업정서가 강한 나라다. 특히 대처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와 규제완화 등으로 기업경영 환경은 크게 개선돼 영국병에서 탈출해 다시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가 붕괴하고 노동시장 유연화로 정리해고가 자유로워지면서 사회 전반으로 기업에 대한 친밀도가 크게 약화되고 있다. 또 쉘(Shell)의 환경오염 문제 등으로 인해 그린피스(Green Peace) 등 환경단체 활동이 격화되면서 기업이미지가 악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 정부는 반기업 정책으로는 해외투자를 유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친기업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기업경영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이처럼 세계 각국에서도 한국처럼 반기업정서가 존재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내용과 정도에서 한국의 반기업정서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선진국에서 기업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은 매우 우호적이다. 이들 국가에서 나타나는 반기업정서는 주로 환경문제와 고용문제, 그리고 기업윤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특히 한국의 일부 시민단체가 문제로 삼는 지배구조나 기업경영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다. 선진국들은 반기업정서가 강할수록 투자자들이 자국에 투자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진국들은 정부가 직접 나서 반기업정서나 반기업정책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이와 달리 한국의 반기업정서 원인은 재벌에 대한 불신, 기업의 본질에 대한 오해, 빈부격차, 지배구조 등이다. 물론 환경문제도 있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현재 한국의 대다수 사람들은 잘 나가는 대기업들이 과거 경제개발 당시 정경유착을 통한 특혜에 의해 성장했으며, 그들의 부의 축적이 부당한 방법으로 이뤄졌다고 인식하고 있다.그러나 한국기업들의 흥망사를 살펴보면 개발시대 당시 존재하는 대기업들 중 현재 생존해 있는 대기업 수는 적다. 이는 특혜를 받은 기업도 변화하는 시장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또한 기업의 목적을 이윤추구가 아닌 사회공헌이라는 것으로 기업의 본질을 오해하고 있다. 기업의 사회공헌 여부는 국민이나 시민단체 혹은 정부가 아닌 회사가 판단할 사안이다. 특히 일부 시민단체는 한국기업의 지배구조에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면서 영국ㆍ미국식 지배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며 지배구조를 깨뜨리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기업지배구조를 영국ㆍ미국식으로 바꿔야 한다거나 유럽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거의 없다. 기업지배구조에 정답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의 기업지배구조는 그 나라의 정치ㆍ사회ㆍ문화적 배경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기업지배구조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은 이를 입증한다.물론 기업의 환경오염이나 분식회계 같은 잘못된 행위에 대한 사회적 비판은 타당하다. 하지만 반기업정서를 팽배시키는 잘못된 운동이나 정책은 기업가정신을 위축시키고 투자를 감소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