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업정서와 외국기업에 대한 투자 배려가 국내기업의 역차별을 낳았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국내기업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서 기업활동을 하게 되고, 결국 기업인들의 사기를 꺾는 일이 초래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IMF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은 급격히 개방됐다. 국민들 장롱 속의 금을 모으는 운동까지 일어났던 심각한 경제위기를 외국자본 유치를 통해 극복하려는 조치였다.하지만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국내기업은 외국자본의 적대적 M&A 시도에 보다 쉽게 노출됐다. 경영권 방어에 적잖은 자원을 쓰게 된 것이다. 또 금융권에서 외국자본은 황태자로 떠올랐다.IMF 직후 외국인투자 규제 완화가 시작되면서 98년 2월 의무공개매수제도가 폐지됐다. 그해 6월에는 외국인이 취득 가능한 유가증권 대상 규제가 폐지됐고, 외국인투자등록 신고범위가 축소됐다. 또 9월에 이르러서는 외국인투자 유치를 위해 수혜적 외국인투자촉진법이 제정됐다.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금융구조조정을 위해 약 160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고 그중 60조원 정도의 손실분을 재정부담으로 안았다”며 “이렇게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서 정상화시킨 은행산업이 외국자본의 독무대가 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조교수는 이어 “우선 제일, 한미, 외환은행은 외국자본에 경영권이 넘어갔다”며 “국민, 하나, 신한은행도 높은 외국인 지분율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제일, 한미은행의 경우 헤지펀드에 의해 1차 인수된 후 구조조정을 거처 외국자본에 재매각됐다. 제일은행을 재매각했던 뉴브리지캐피털은 매매차익으로 1조원 이상을 챙겼고, 한미은행을 씨티은행에 재매각한 칼라일펀드 또한 6,000억원을 벌었다.조교수는 “국내의 ‘규제체계’인 산업자본의 은행소유 금지 규제로 자승자박의 결과를 초래한 셈”이라며 “외국자본에 비해 역차별적인 규제”라고 했다.대규모기업집단의 금융 계열사가 보유한 타 계열사 지분을 5% 이하로 유지하려는 취지로 제정된 ‘금융산업 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을 둘러싸고도 역차별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김영용 전남대 경제학부 교수는 “산업자본이 은행주식을 100%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되는 스위스 은행들은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며 “미국의 경우도 99년 클린턴 대통령이 서명한 금융현대화법(Gramm-Leach-Bliley Act) 이후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분리 규제를 철폐할 움직임이 보였다”고 했다.또 양금승 전경련 기업정책팀 부장은 “현행 법체계와 경제 실정에서 보면 금산법은 몇가지 문제점을 간과하고 있다”며 “계열 금융사의 주식매각처분은 출자총액규제와 상호출자금지,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제한 등 경영권 방어수단이 미흡한 상황을 더욱 심화시킬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다. 양부장은 이어 “외환위기 이후 적대적 M&A 관련 규제가 대폭 완화돼 외국인의 국내기업 주식 취득이 훨씬 수월해졌으나 국내 대기업은 역차별 규제로 적대적 M&A에 손발이 묶여 있다”며 “외국자본에 의한 적대적 M&A 가능성은 심각한 수준이며 현실화되고 있다”고 덧붙였다.실제로 국내 최대주주보다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기업은 2004년 말 53개사로 전체의 10%에 이르렀다. 거래소 상장주식 중 외국인 지분 비중 또한 97년 14.6%에서 98년 18.6%, 2000년 30.1%, 2003년 40.1%, 2004년 42%로 급격히 늘어났다.최근 들어 외국인 지분율이 40% 이상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 일부 외국자본과 외국기업에 의한 적대적 M&A 시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 가능성은 최근 몇몇 사례에서도 나타났다. (주)SK에 대한 소버린의 지분경쟁, 영국계 펀드인 헤르메스의 삼성물산 최대주주지위 점유사례는 적대적 M&A가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줬다.양금승 부장은 “소버린 사례에서는 봤듯이 1,768억원의 소버린자산운용이 50조원 규모인 SK그룹의 경영권을 뒤흔들었다”며 “국내기업뿐 아니라 정부, 정치권, 시민단체, 일반 국민 모두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다”고 설명했다. 양부장은 이어 “최근 몇 년 사이에 국내 우량기업의 주식지분을 높인 외국계 펀드들의 경영간섭은 국제적 상식과 관례를 뛰어넘는 상황임에도 정부는 국내기업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공정거래위원회는 출자총액규제의 현행 유지ㆍ금융보험사의 의결권 행사한도의 축소 등을 내용으로 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지난해 11월 통과시켜 그나마 허용된 국내기업의 경영권 방어와 관련된 최소한의 안전장치마저 깨어진 형편”이라고 설명했다.소버린 사례 등을 겪으며 전경련은 지난해 12월 ‘국내기업의 경영권 안정을 위한 보완과제’를 법무부,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원 등에 건의했다. 외국인의 국내기업에 대한 적대적 M&A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국내기업의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한 관련제도의 보완이 주 내용이었다.전경련측은 이 건의서를 내며 “외환위기 이후 적대적 M&A 관련 규제가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대폭 완화돼 외국인의 보유지분은 급격하게 증가됐다”며 “반면 국내 대기업은 역차별적 규제로 인해 적대적 M&A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동시에 전경련은 국내기업의 안정적인 경영권 확보를 위해 대안을 제시했다. 차등의결권 주식제도와 제3자 신주인수권 부여 등 6개 사항의 개정을 위해 상법과 증권거래법의 관련규정의 보완이 시급하다는 것.출자총액 규제와 금융회사 의결권 규제제도 등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외국자본에 대해 국내기업들이 대등한 조건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자국기업 보호를 위한 조치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왔다.‘해외투기자본과 적대적 M&A’라는 보고서를 내놓은 왕윤종 SK경영경제연구소 경제연구실장은 “대부분의 OECD 회원국은 외국자본의 유출입을 자유화했지만, 외국계 자본의 자국기업에 대한 적대적 인수에 대해서는 업종과 진입 유형별로 다양한 제한조치를 유지하고 있다”며 “다른 OECD 회원국들은 자국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준비한 후에 자본시장을 개방했다”고 설명했다.미국의 경우 이른바 독약조항(Poison Pills)이 허용된 이후 외국계 자본에 의한 적대적 M&A는 거의 사라졌다. 아울러 증권거래법, 증권법 등 연방법 차원에서 적대적 M&A를 규제하는 각종 제도를 마련했다. 대부분의 미국 주들 또한 자국기업의 경영권 보호장치를 주법 차원에서 이중 삼중으로 준비해 놓았다.유럽국가의 경우도 차등의결권주, 피라미드출자 등을 통해 적대적 M&A, 특히 외국인에 의한 적대적 M&A는 원천 봉쇄했다. 스웨덴 상장기업의 55%는 차등의결권 주식제도를 채택해 자국기업을 보호하고 있다.아울러 캐나다는 비거주자의 자국기업 인수를 정부심사로서 암묵적으로 규제하고 있다. 캐나다투자법(Investment Canada Act)에 의하면 외국인에 의한 소규모의 캐나다 기업인수를 위한 투자나 신규기업 설립은 신고만 하면 된다. 하지만 대규모 기업인수의 경우 심사를 거쳐야만 하도록 조치했다.일본 또한 독점금지법과 기업간 상호출자 허용 등으로 자국기업에 대한 외국인 인수제약과 경영권 방어장치 마련해 놓았다.반면 우리나라는 다른 OECD 회원국에서 널리 이용하고 있는 경영권 보호장치를 도입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실정이다. 유럽식 차등의결권 제도는 국내 상법 제369조 ‘1주 1의결권’ 원칙에 위배된다. 미국의 독약처방 조항 또한 도입하려면 한국 법체제상 걸림돌이 적지 않게 존재한다. 이뿐 아니다. 증권거래법에서는 적대적 공개매수에 대한 특정 방어행위를 금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