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온라인게임을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지난 11월14일 한국을 방문한 영국의 앤드류 왕자는 11월17일 영국문화원에서 엔씨소프트의 신작 게임 ‘길드워’ 시연을 시청했다. 시연이 끝난 후 앤드류 왕자는 “한국의 기술력이 느껴진다”며 “한국과 영국의 게임산업 교류가 활발해지길 바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국 온라인게임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우종식 한국게임산업개발원장은 게임산업은 문화산업의 ‘핵’이라고 강조했다. 영화나 음반, 방송이 따라오지 못하는 파괴력을 가졌다는 것. 엔씨소프트의 ‘리니지’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게임 하나로 엔씨소프트는 매년 수천억원의 매출을 올린 데 비해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한국영화 최고 히트작도 벌어들인 돈은 1,000억원이 안된다는 설명이다. 리니지의 누적매출은 올해 말 1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게임이 단순히 오락이 아니라 하나의 당당한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사실은 각종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이 발표한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02년 게임산업의 규모는 3조4,000억원 수준이었다. 이후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해 2003년에는 3조9,000억원, 지난해에는 4조5,000억원으로 불어났다. 개발원에 따르면 앞으로도 게임산업은 한동안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해 2006년에는 5조7,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2001년 1억3,000만달러에서 올해 3억4,000만달러로 4년 만에 3배 가량 증가할 것으로 게임산업개발원은 추정하고 있다.‘게임 코리아’의 기수는 역시 온라인게임이다. 흔히 ‘온라인게임의 종주국’이라고 불릴 만큼 한국은 세계 온라인게임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세계시장 점유율이 무려 30%를 넘어설 정도다. 이에 따른 경제적 효과는 막대하다. 최근 한국 온라인게임의 이용자수는 1억명을 상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면 자동차 180만대를 동시에 수출한 것과 맞먹는다. 관계자들 사이에선 온라인게임은 한글, 거북선과 함께 한민족 3대 발명품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온라인게임의 위세는 당당하다.해외진출도 활발하다. 국내 최대 온라인게임업체인 엔씨소프트의 해외매출 추이를 통해 해외시장에서 한국의 위상을 엿볼 수 있다. 2001년 93억원에 그쳤던 이 회사의 해외매출은 2002년 218억원, 2003년 281억원, 2004년 800억원을 거쳐 올해 1,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회사측은 기대하고 있다. 최근 ‘라그나로크’로 일본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그라비티가 일본업체에 4,600억원이라는, 예상을 뛰어넘은 금액에 매각된 것도 한국 게임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사건이었다. NHN의 일본 사이트는 현재 일본 게임포털 시장 1위를 달리고 있다.온라인게임만큼은 아니지만 모바일게임도 세계시장에서 지배력을 넓혀가고 있다. 현재 일본에 이어 2위에 올라 있는 상태다. 매출액이 1억2,200만달러로 1위 일본의 절반 정도에 그치지만 현재의 상승세를 유지한다면 머지않아 세계 1위도 가능하다고 관계자들은 기대한다. 실제로 모바일게임의 성장속도는 ‘무섭다’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연간 35~50%씩 성장하며 고속성장하는 전체 게임 시장에서도 돋보이는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2006년 시장규모는 4,138억원에 이를 것으로 게임산업개발원은 추정하고 있다.한국 게임 시장의 성장세는 방문자수의 증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랭키닷컴의 조사에 따르면 게임포털, 온라인게임, 모바일게임 등 각종 게임사이트의 이용자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불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이용자가 가장 많은 게임포털의 경우 지난해 10월 일평균 방문자수는 420만명 정도였지만 이듬해 같은 기간인 지난 10월에는 475만명으로 55만명이나 불어났다. 8월의 경우에는 무려 95만명이 증가하기도 했다. 특히 게임포털 분야의 1~4위를 차지하고 있는 넥슨, 한게임(NHN), 넷마블, 피망은 전체 순위에서 각각 9ㆍ12ㆍ13ㆍ14위를 차지해 눈길을 끈다. 한 분야의 상위 사이트가 전체 순위의 상위권을 형성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온라인게임의 이용자도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10월 68만명에서 1년 만인 지난 10월 137만명으로 무려 2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모바일게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난해 10월 2만3,500명 수준에서 지난 10월에는 5만6,200명 가량으로 2배를 훌쩍 뛰어넘는 성장세를 과시했다. 전체 순위도 부쩍부쩍 올라가고 있다. 10위권의 상위 사이트라도 아직은 전체 순위가 1,000위권에 머물고 있지만 전달에 비해 2,000위 이상 상승한 업체가 있을 정도다.게임산업의 발전은 새로운 형태의 비즈니스를 낳고 있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e스포츠가 대표적이다. 흔히 ‘게임대회’로 불리는 e스포츠는 2010년 1,200억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정도로 잠재력이 크다고 삼성경제연구소는 추정하고 있다.하지만 한국 게임의 미래가 꼭 낙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대내외적인 위기에 직면했다는 분위기가 업계를 감돈다. 지난 국정감사 때 의원들이 게임산업이 위기에 직면했으며 획기적인 대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한 것도 같은 이런 분위기에서 나왔다.우선 온라인게임에 편중된 산업구조의 취약성이 지적된다. 온라인게임은 전체 게임시장 중에서도 작은 분야인데 여기서만 강점을 보여서는 결코 세계적인 게임 강국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콘솔게임이나 아케이드게임 등 온라인게임보다 월등히 큰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지만 이렇다 할 묘안이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나마 중국을 위시한 후발 경쟁국들의 도전이 본격화되면서 온라인게임 시장의 점유율이 낮아지고 있는 형편이어서 온라인게임 종주국이라는 위상이 크게 흔들릴 수도 있다는 견해다.하지만 우종식 한국게임산업개발원장은 한국 온라인게임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것은 사실임을 인정하면서도 “과거 PC게임을 개발하던 노하우가 그대로 남아 있는 만큼 콘솔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하고 실제로 이 시장에 게임업체들이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며 “온라인게임과 콘솔게임의 결합 등을 통해 블루오션을 찾는다면 한국의 게임산업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고 말했다.INTERVIEW / 우종식 한국게임산업개발원장‘지스타, 세계적 게임전시회로 키울 것’지난 11월10~13일 일산의 한국국제전시장(KINTEX)에서는 국내 최초의 국제게임전시회인 ‘지스타’가 개최됐다. 첫 대회였음에도 16개국 150여개 업체가 참여하고 15만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등 성공적인 대회였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전시회 기간에 2억달러 상당의 상담실적을 냈다는 점이다. 우종식 한국게임산업개발원장은 지스타 조직위원회의 공동대표를 맡아 실무를 지휘했다.“첫 대회인 만큼 아쉬운 대목도 적잖습니다. 하지만 나름대로 성과가 있었다고 봅니다. 4회 전시회가 열릴 무렵에는 세계 최대 게임전시회인 E3와 함께 양대 게임전시회로 육성할 방침입니다. 세계 온라인게임의 트렌드를 알기 위해서는 한국의 지스타에 참가해야 한다는 평가를 들어야죠.”한국 게임의 실력과 잠재력을 믿고 있는 그이지만 자만하면 2~3년 내에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각계에서 지적하는 게임산업의 문제와 과제에 대해서도 공감하는 편이다. 무엇보다 산업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중견기업 육성이 시급하다고 우원장은 강조한다. 잘나가는 몇몇 기업이 산업을 이끌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정부와 업계, 학계가 힘을 모아 중견기업을 육성해야 합니다. 대형업체는 유망한 기업을 인수합병하기보다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대학은 우수한 현장형 인력을 양성하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합니다. 중견기업은 게임산업이 성장하는 근간이 되기 때문입니다.”우원장은 한국의 온라인게임산업이 거대한 기회 앞에 서 있다고 말한다. 중국, 동남아를 벗어나 미국, 일본 등 거대한 시장이 비로소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지화에 성공한다면 세계 게임산업의 맹주인 이들 국가에서도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우원장은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