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동통신산업은 강하다. 세계시장을 쥐락펴락한다.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반도체, 자동차, 가전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하지만 이동통신단말기 제조원가의 약 40%를 기술로열티와 핵심부품 수입비용으로 외국기업에 지불해야 한다. 벌기도 많이 벌지만 그만큼 유출되는 외화도 적지 않은 셈이다. 일반적으로 제조업체의 수익률은 그리 높은 편이 아니다. 총매출에서 영업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이 10%를 넘지 못한다. 최근에는 중국과 동남아 기업이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세계시장에 뛰어들면서 이익률은 더욱 낮아졌다. 상당수 기업들이 조금이라도 인건비를 낮추기 위해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문화콘텐츠산업은 사정이 영 다르다. 잘만 하면 적은 비용으로 막대한 이익을 올릴 수 있다.아시아 최고의 히트 드라마를 꼽으라면 <대장금>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대장금>은 드라마 한 편이 얼마나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줬다. MBC가 <대장금> 한 편으로 해외에서 벌어들인 외화가 410만달러(약 41억원)다. 이뿐이 아니다. <대장금>의 인터넷 VOD서비스로만 올린 수입이 10억원에 달한다.캐릭터산업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둘리’ 캐릭터를 보자. ‘둘리’는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1983년 만화잡지 <보물섬>에서 처음 소개된 캐릭터다. 이후 캐릭터상품(롯데삼강 둘리바), 만화 단행본, TV애니메이션, 극장용 애니메이션(얼음별 대모험), 뮤지컬 등 연관산업에서 막대한 부가가치를 거뒀다.게임산업은 또 어떤가. 지난 8월 게임업체 그라비타가 일본 소프트뱅크에 매각됐다. 대주주 김정률씨는 자신과 가족의 지분 52.4%(364만주)를 넘기는 대가로 4,000억원을 챙겼다. 국내 최대 벤처갑부가 탄생하는 순간이자 게임산업의 가공할 파워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이처럼 문화콘텐츠산업의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뉴질랜드 영화 <반지의 제왕 1ㆍ2ㆍ3>의 경우 총 35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렸다. 세계 문화콘텐츠산업의 덩치도 제조업에 밀리지 않는다. 한국경제의 핵인 반도체의 세계시장 규모는 1,607억달러. 가정용 기기와 휴대전화가 각각 930억달러, 745억달러이다.캐릭터산업은 1,450억달러로 반도체산업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가정용 기기와 휴대전화를 능가했다. 애니메이션과 게임도 각각 750억달러와 621억달러의 거대시장을 자랑하고 있다. 성장속도도 제조업보다 빠르다. 2004년 한국 제조업의 성장률은 4.6%에 그쳤으나 문화콘텐츠산업은 9.2%를 기록했다. 미국 또한 경제성장률(2.5%)보다 문화콘텐츠산업 성장률(4.2%)이 높았다.11월10일 서울 삼성도 코엑스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문화콘텐츠 국제회의 개막식. 이날 행사에서 기조연설에 나선 찰스 리오토 국제라이선싱협회(LIMA) 회장은 “모바일콘텐츠 서비스는 새로운 기회의 땅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오토 회장은 “지난해 전세계에서 휴대용 디지털기기를 통해 다운로드된 콘텐츠의 규모는 140억달러 수준으로 이는 오는 2009년 560억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전세계 이동전화 가입자수는 13억명에 이른다. 이중 모바일콘텐츠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은 1억명 정도다. 아직은 전체 규모에 비해 많지 않은 편이지만 이 숫자는 머지않아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알다시피 한국의 모바일산업은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앞서나가고 있다.2004년 국내 모바일콘텐츠 시장은 8,500억원이다. 이중 70%인 6,000억원이 엔터테인먼트 부문이다.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모바일콘텐츠산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35.5%에 달한다. 국내 최대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의 2004년 매출 9조8,000억원 중 콘텐츠 비중이 13%다. 이러다 보니 외국기업들이 마냥 신기해하는 서비스 아이템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소비자들의 관심도 폭발적이다. 컴투스가 개발한 모바일게임 ‘미니게임천국’은 출시 두 달 만에 50만 다운로드를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런 점들이 문화콘텐츠산업의 미래를 밝게 비쳐주는 것이다.한국이 문화콘텐츠산업에 힘을 집중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언어나 지리, 인종 장벽이 낮아 글로벌 시장 진출이 용이하다는 것이다. 캐릭터,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등이 특히 그렇다. 영화나 드라마는 아무래도 언어나 인종 등의 차이로 인해 미국이나 유럽의 벽을 뚫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아시아지역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하지만 캐릭터나 게임은 세계시장 진출에 아무런 걸림돌이 없다. 한국에서 엽기토끼로 잘 알려진 ‘마시마로’는 아시아는 물론이고 미국과 유럽에서도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한국과 조건이 비슷한 일본은 게임, 음반, 만화 등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마시마로’가 지난 4년간(2000년 탄생) 벌어들인 로열티만 500만달러다. 이외에도 유럽에서 인기를 끄는 ‘뿌까’와 ‘오드패밀리’, 캐릭터산업의 최강국인 일본에 진출한 웹툰 캐릭터 ‘마린블루스’ 등이 대표적이다. ‘뿌까’는 영국의 제틱스로부터 480만달러를 투자받아 78부작의 TV애니메이션 시리즈로 제작될 예정이다. 삼지애니메이션의 ‘오드패밀리’는 프랑스 티문애니메이션과 함께 80억원 규모의 프로젝트가 가동된 상태다.게임이라고 다를 바가 없다. 지난 2003년 ‘미르의 전설2’가 중국에서 동시접속자수 70만명 돌파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시장 1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뮤’, ‘비엔비’ 등 한국 온라인게임들이 중국시장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전체 수출규모도 2000년 1억달러에서 2004년 3억8,000만달러로 280% 성장하는 등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디지털 컨버전스에서 한국이 세계 선두권에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는 영상ㆍ음성ㆍ데이터ㆍ통신 등 서로 다른 서비스가 단말기ㆍ네트워크의 제약 없이 자유롭게 융합돼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집 밖에서 개인휴대용 또는 차량용 단말기를 통해 비디오ㆍ오디오ㆍ데이터 등 멀티미디어 방송을 시청할 수 있는 디지털미디어방송(DMB)은 이미 상용화됐다.고속도로가 뚫리면 차들은 달리기 마련이다. 한국의 앞선 디지털 환경은 한국이 문화콘텐츠산업에서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는 기반임이 분명하다. 한국은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국가다. 제조업의 원천기술도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이런 것들이 없어도 승산이 있는 산업이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