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ㆍ중ㆍ일 가전산업은 그동안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한편 유망 분야에서 치열한 경쟁을 전개해 왔다. 우리나라 가전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 가전산업은 각종 부품의 조달처인 동시에 LCD, PDP 등 차세대 디지털가전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합하는 경쟁상대이다. 중국 가전업체에 대해서는 한국기업들이 각종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한편 냉장고, 세탁기 등의 백색가전이나 음향기기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다.한ㆍ중ㆍ일 가전산업의 이러한 양면적 성격은 중장기적으로 보면 동아시아 가전산업의 시장확대와 경쟁력 향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한ㆍ중ㆍ일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가전산업에서 심도 있는 생산분업이나 연구개발 분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이 지역이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다.물론 디지털 혁명 시대를 맞아 가전산업에서 각종 콘텐츠의 중요성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각 산업과 가전산업의 연계성이 강화될 것이다. 따라서 한ㆍ중ㆍ일이 협력하면서 디지털 분야의 각종 기술규격을 주도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중국기업은 기술력이나 브랜드 파워 면에서 한국기업보다 한수 아래지만 제품구조를 단순화시키는 모듈 전략으로 대량생산에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그리고 기술과 브랜드의 약점을 만회하기 위해 선진기업을 매수하는 중국기업의 M&A 전략이 어느 정도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IBM PC 부문을 매수한 레노버와 같은 대규모 매수ㆍ합병 사례 외에도 하이얼의 태국 대우 냉장고공장 매수, 징둥팡(BOE)의 하이닉스 LCD사업 매수 등이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한편 일본기업은 일부를 제외하면 장기불황을 극복했으며 당분간 수익성이 호조를 보일 것으로 보인다. 일본기업은 90년대 후반 메모리반도체, LCD 등의 분야에서 한국기업의 도약을 허용한 전철을 다시는 밟지 않겠다는 각오로 연구개발과 투자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일본기업은 자동차 관련 차세대 전자시장에서 강한 위치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분야를 집중적으로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가령 샤프의 경우 하나의 디스플레이 화면으로 각도에 따라 운전자는 지도 정보를 보고 동시에 조수석에 앉은 사람은 TV를 볼 수 있는 독자적인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는 등 자동차용 디스플레이시장 선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또한 일본기업은 90년대 후반 한국기업에 주도권을 내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시장에서의 입지를 본격적으로 만회하기 위해 가격경쟁력 제고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LCD-TV의 경우 과거의 1인치당 1만엔이라는 가격목표를 버리고 1인치당 5,000엔을 목표로 가격절감에 매진하는 일본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이와 함께 차세대 디지털기술 분야에서 한ㆍ일간의 기술경쟁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이며, 한국기업도 장기불황기 때처럼 일본기업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부품경쟁력 및 기술력을 갖춘 일본기업과 조립부문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기업이 상호 협력하고 동아시아 가전산업 구조가 강화되면서 한국의 입지가 좁아지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할 것이다. 최근 일본 전자기업과 중국기업간의 제휴가 늘어나면서 일본 백색가전시장에서 한국제품이 중국제품에 밀려나기 시작했다.한국기업은 중국기업과 차별화된 품질가치를 확보할 수 있는 부품이나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높이는 한편 기초적인 부문은 단순화ㆍ모듈화하면서 가격경쟁력을 동시에 추구해야 할 것이다. 중국식의 모듈제품 설계구도에서 확보할 수 있는 가격 이점과 일본형의 수직분업형 시스템에서 기대되는 제품의 다양성 및 고품질을 동시에 추구하는 절충적인 시스템을 통해 독자성을 확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