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환경도 유리하게 조성돼 … 저유가 저지 ‘총력’

석유수출국기구(OPEC)는 1960년에 석유수출국들의 공동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결성된 조직으로서 OPEC의 역사는 곧 석유시장의 역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석유시장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OPEC 회원국은 창립 당시 5개국이었으나 최대 13개국까지 확대됐다가 에콰도르와 가봉이 탈퇴함으로써 현재는 11개 회원국으로 구성돼 있다.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 이라크, 이란, 남미의 베네수엘라, 아프리카의 나이지리아, 알제리, 리비아, 아시아의 인도네시아 등이 회원국이다.OPEC 결성 배경은 메이저 석유사들의 일방적인 석유시장 지배 및 횡포에 대항해 산유국들이 자국의 석유 주권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70년대 두 차례의 석유위기와 자원 국유화 움직임과 함께 시장의 지배권은 메이저 석유사에서 OPEC으로 넘어가게 됐다.OPEC 회원국의 특징은 석유 수출수익이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 산유국들이라는 점이다. 이들 산유국은 대부분 국가의 석유산업을 국영석유회사가 장악하고 있다. 따라서 비교적 생산통제가 용이하다. 또 이들 국가는 더 생산할 수 있는데도 시장통제를 위해 생산을 억제하고 여유생산 능력을 확보하고 있다. 반면 비OPEC 국가들은 민간석유회사들이 석유산업을 지배한다. 이들은 수익극대화를 위해 항상 최대 생산능력으로 생산하기 때문에 여유 생산 능력을 보유하지 않는다.전통적으로 OPEC 내에도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 입장 차이가 있다. 리비아, 이란, 알제리, 베네수엘라 등은 소위 서방과 정치적으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을 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낮은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로 장기적인 시장 셰어(Share)보다 단기적인 고유가를 통한 수익극대화에 관심이 많다.반면 걸프협력협의회(GCC) 회원국들로 구성된, 사우디아라비아를 중심으로 하는 그룹들은 서방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대규모 매장량을 보유한 국가로서 단기적인 수익 외에도 장기적인 수익극대화를 추구한다. 그러나 최근 고유가시대를 맞아 OPEC 내에는 이러한 갈등요인이 별로 없다. 다만 대부분 회원국들은 여유 생산 능력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어 실질적인 영향력은 사우디아라비아가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영향력이 80% 이상이라고 볼 수 있다.OPEC은 여유 생산 능력 보유라는 힘을 바탕으로 창립 이래 40여년 이상 석유시장을 지배해 오고 있다. 물론 그동안 부침은 있었다. 시장영향력이 막강했던 초기에는 OPEC 총회를 개최해 가격 자체를 설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2차 위기 후 고유가 지속으로 인한 수요감퇴, 공급증대 등으로 OPEC의 시장 셰어가 감소하면서 일방적 가격결정구도(OSP)는 붕괴됐다.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생산쿼터제도를 통해 생산량을 조절함으로써 시장 및 가격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런데 2차 위기 후 고유가 지속으로 OPEC 시장 셰어가 줄어들면서 80년대부터 90년대 말까지 OPEC은 엄청난 잉여생산 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따라서 OPEC의 정책은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회원국간 쿼터를 설정해 생산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체로 같은 기간 중 OPEC의 시장통제 시도는 성공적이지 못했다. 회원국들의 막대한 잉여공급 능력의 존재, 대규모 감산 필요, OPEC 내부의 갈등으로 결속력이 크게 약화됐고, 이에 따라 빈번한 감산 약속 파기 및 유가 폭락의 악순환이 계속됐다. 이로 인해 유가는 15~20달러대에서 안정되는 저유가시대를 누릴 수 있었다.최근의 상황은 크게 달라졌다. 98년 유가 폭락의 아픈 경험을 한 OPEC은 ‘결속력 약화는 공멸’이라는 각성을 하게 된다. 특히 OPEC을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98년 유가 폭락 이후 더 이상 저유가는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게다가 상습적인 쿼터 위반국이던 베네수엘라에 강경파 차베스 정권이 들어서면서 결속 환경은 더욱 강화됐다.이후 OPEC은 2003년까지 5년간 20% 이상의 감산에 성공했다. 98년 10달러대로 폭락했던 국제유가는 2003년 25달러대로 회복, OPEC은 생산을 줄여도 석유수익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회복했다. 이러한 OPEC의 자신감 회복은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저유가시대가 종료되는 한 배경이 됐다.더구나 2003년 이후에 구체화된 석유시장의 구조적 변화는 OPEC의 힘을 더욱 강화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저유가시대를 거치면서 생산능력 증대는 투자부진으로 정체 상태를 보인 반면,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대해 여유 생산 능력 규모는 계속 감소해 왔다. 여기에 최근 베네수엘라 석유노조 파업 및 이라크전쟁으로 생산능력이 감소했을 뿐 아니라 중국 등 세계 석유수요가 폭증세를 보이면서 OPEC의 여유 생산 능력은 고갈 상태에 와 있다. 결국 현재의 상황은 OPEC이 애써 감산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환경인 것이다.지금처럼 OPEC에 유리한 시장환경은 없었다. 만약 유가가 하락할 경우 OPEC은 매우 용이하게 감산을 실시해 유가를 방어할 수 있다. 현재 거의 풀(Full) 생산능력으로 증산하고 있기 때문에 감산에는 전혀 고통이 없다. 문제는 언제 OPEC이 감산에 나설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이것은 OPEC의 목표 유가 수준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OPEC은 2000년 3월 22~28달러의 목표 유가 수준을 설정한 바 있으나 최근 석유시장의 구조적 변화, 달러화 약세에 따른 실질구매력 보전 필요, 재정수요 증대 필요 등으로 실질적인 목표 유가 수준은 이보다 훨씬 높다고 할 수 있다. 현재 OPEC의 공식적인 목표 유가 수준은 발표된 바 없으나 OPEC을 주도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40~50달러 수준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의 부족한 공급능력 증대를 위한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이 정도 수준의 고유가는 필요하다는 주장이다.중장기적으로 유가의 하한선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 보이는 대목이다. 최근 유가는 60달러에 육박하고 있지만 만약 경기둔화나 수요둔화로 유가가 하락국면을 맞게 될 경우 OPEC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감산대응을 할 공산이 크다.석유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배경으로 한 고유가시대 진입, 다시 부각되는 산유국들의 자원 국유화 움직임 등은 OPEC의 영향력이 앞으로도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일부 전문가들은 과거 일방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던 석유위기 당시와는 다르겠지만 OPEC의 영향력 강화는 시장환경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현재의 3대 기준유종이 소비국 선물시장의 부당한 가격조작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OPEC으로서는 자국산 원유의 가치를 잘 반영하고 통제가 용이한 새로운 기준유종을 설정하거나 기간계약 비중을 늘린다든가 하는 변화를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돋보기 국제에너지기구(IEA)OPEC 독주 견제하는 ‘대항마’산유국들의 대표적인 조직이 OPEC이라면 이에 대응할 만한 소비국들의 단체로는 국제에너지기구(IEA)를 들 수 있다. 4차 중동전쟁을 발단으로 OPEC에 공동대응하기 위해 74년 11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 설립됐다. 현재 OECD 30개국 중 26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돼 있다. 96년 OECD에 가입한 우리나라도 2002년 회원국이 됐다.IEA의 본질적인 기능은 세계 석유공급이 중대한 차질을 빚을 때 이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IEA는 회원국들에 일일 수입 기준 90일 이상의 석유재고를 확보하도록 권고한다. 2차 석유위기 당시만 해도 30~40일분 수준의 운영재고가 전부였지만 IEA 회원국들의 노력으로 현재는 대부분 90일분 이상의 비축원유를 확보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15일분 정도의 비축원유를 보유하고 있다.따라서 어떠한 수급차질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2차 석유위기처럼 공급이 중단돼 경제가 마비되는 극단적인 사태는 막을 수 있는 수단을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 최근 IEA는 미국 멕시코만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내습으로 공급차질 및 유가폭등의 우려가 제기되자 신속한 비축유 방출 결정을 내림으로써 석유시장 안정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