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협상에 큰 부담 느껴 … 빠른 시일 내 도입은 쉽지 않을듯

오는 12월 시행되는 퇴직연금제도가 3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기업들의 움직임은 바깥으로 거의 드러나지 않고 있다. 아직까지는 정부안을 검토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자체적으로 정보는 파악하고 있지만,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안을 마련 중인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제도도입이 노사간 협상을 거쳐야 한다는 점에서 내년 초부터 운용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한결같은 이야기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어렵다’는 분위기는 비슷하다.대기업들은 일정기간이 지난 뒤에야 퇴직연금제도를 받아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대다수 사업주나 근로자는 퇴직연금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사협상에 대한 부담도 만만찮은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의 약 80%가 기존 퇴직보험에 가입하고 있다는 점도 빠른 제도 도입을 어렵게 한다. 정부는 기존 퇴직보험이나 퇴직신탁에 가입한 기업은 2010년까지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도록 5년의 유예기간을 준 상황이다.설령 퇴직연금제도를 받아들이더라도 DC(확정기여)형 가입시에는 기존 퇴직금 비용뿐만 아니라 교육비와 운용 등에 드는 추가비용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인지 대기업의 실무담당자들은 말을 아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H그룹 관계자는 “노사간 협의를 거쳐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연내에 거론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못박았다. S그룹 관계자는 “실행에 관한 세부적인 사항들인 시행규칙이나 금감위 규정, 재경부 세제 등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구체적인 안을 마련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털어놓았다. D그룹 관계자도 “검토하고 있지만 노사협의사항인데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가 없지 않으냐”며 어려움을 호소했다. 중견그룹의 한 관계자는 “아직 그룹 차원에서 검토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다소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밖에 대기업들도 “향후 노조와의 의견조율을 통해 진행할 예정”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을 내놓았다.삼성생명이 최근 거래업체 221개사를 대상으로 퇴직연금제도와 관련해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퇴직연금제도의 예상도입시기에 대해 1~2년 내 도입하겠다는 응답이 24%에 불과했다.그것도 대다수가 외국계 기업이나 규모가 큰 공기업이었다. 게다가 기업체 실무자들의 79%가 퇴직금연금제도에 대해 이해하고 있지만 이 가운데 잘 알고 있다고 답한 실무자는 31%에 그친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의 강한 의지와는 달리 기업의 준비상태는 아직까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대기업들의 퇴직연금 본격 시행이 상당기간 늦춰질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정부가 추진 중인 퇴직연금제도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 재계는 정부가 기업의 입장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재경부가 퇴직연금제 활성화를 위해 기존 퇴직금제도에 대한 법인세 혜택을 줄이는 세제개편안을 추진하는 것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된 일’이라고 꼬집었다.황인철 경총 사회정책팀장은 “연금제도 도입과 세제 변경으로 인해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들에 약 8조원의 자금부담을 추가시키는 꼴”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황팀장은 “내년 1월에 당장 퇴직연금제를 실시하는 기업은 거의 없을 것”이라며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이런 가운데 보험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재벌그룹의 경우 전격적으로 퇴직연금을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도 나오고 있어 흥미롭다. 보험사, 증권사 등이 퇴직연금을 강력한 수익모델로 여기고 있는 상황에서 비금융 계열사의 협조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자금이 부족한 중소기업들도 조기에 퇴직연금을 도입하기는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면 당장에 휘청거릴 중소기업이 적잖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관례적으로 퇴직금 사내유보금을 기업운영비로 썼던 만큼 이를 한꺼번에 적립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박미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경제정책팀 과장은 “퇴직연금제도를 시행하면서 유인 혜택이 기존 퇴직금제도보다 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며 일부 우량 중소기업 이외에는 제도도입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지금의 정부안보다 혜택이 더 늘어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전문가들은 정부나 금융기관, 기업 모두가 퇴직연금 준비가 부족하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일반기업의 경우 노사간의 첨예한 갈등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따라서 기업들은 경영에 차질을 빚지 않으면서도 노사가 ‘윈윈’할 수 있는 퇴직연금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돋보기 알쏭달쏭 Q&AQ: 퇴직금연금제도가 도입되면 개별기업에서 퇴직금제도가 없어지나.A: 퇴직금제도는 계속 유지된다. 그러나 퇴직보험의 폐지로 퇴직금제도의 사외적립방법이 없어진다. 따라서 사외적립에 따른 세제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해야 한다.Q: 퇴직연금제도가 도입되면 퇴직보험은 어떻게 되나.A: 퇴직연금 시행일인 2005년 12월1일부터 퇴직보험에 신규로 가입할 수는 없다. 기존 계약은 추가가입, 무배당전환 등이 가능하며 2010년 말까지 유지할 수 있다.Q: 개별 사업장에서 퇴직연금제도를 실시할 경우 이전에 근무한 기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나.A: 퇴직연금제도 시행 이전에 근무한 기간에 대해서는 노사가 사업장 실정에 맞춰 규약에 따라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시행 이전 기간으로 소급 적용하는 방안, 추후에 근로자 퇴직시 퇴직금으로 지급하는 방안 등이 가능하다.Q: 퇴직금제도를 시행하던 사업장의 경우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면 손해 보는 것 아닌가.A: 근로자에게 손해가 가지 않게 연금제도로 전환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사용자의 부담률을 법정기여율(연간 임금 총액의 12분의 1)보다 높게 책정한다든지, 퇴직연금제도 시행 이전 일정시점부터 가입한 것으로 보는 소급적용방법 등이 있다.Q: 하나의 사업장에서 퇴직금제도, 확정기여형, 확정급여형을 동시에 시행할 수 있는가.A: 퇴직연금의 실시 여부와 그 형태는 노사가 자율적으로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한 사업장에서 퇴직금제도와 확정기여형 및 확정급여형 퇴직연금을 동시에 실시해 근로자집단별로 그 특성에 맞는 퇴직급여 형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여러 개의 퇴직급여제도 설정 여부에 대해 근로자대표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근로자 개인의 급여에 대해 일부는 퇴직금, 일부는 퇴직연금으로 구성하는 것은 불가하다.Q: 확정기여형의 경우 적립금 운용의 안정성은 확보했나.A: 확정기여형의 경우 근로자별로 운용방법의 선정에 따라서 추후 급여수준이 달라질 수 있게 되며 특히 위험자산에 투자할 경우 원금손실 위험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금융기관이 제시하는 운용방법에 원리금 보장상품을 반드시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또 주식에 대한 직접투자를 금지하고 간접투자상품도 주식 등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비율을 40%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Q: 확정급여형의 경우 사업장 파산 또는 부실로 지급능력이 없을 때 지급을 보장하는 방안은 준비돼 있나.A: 확정급여형의 경우 사용자의 기여금이 전부 사외에 적립되기 때문에 사업장이 도산하더라도 지급보장 문제는 없다. 확정급여형은 사용자가 적립금을 충분하게 적립하지 아니해 근로자에게 퇴직급여를 지급할 수 없는 경우에는 퇴직금제도가 적용돼 부족분을 지급하도록 하는 보완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Q: 퇴직급여를 연금으로만 받아야 하나. 일시금으로 받을 수는 없나.A: 일시금으로도 받을 수 있다. 퇴직 또는 퇴사시점에 근로자가 연금으로 받을지 일시금으로 받을지 여부를 선택해야 한다. 다만 연금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해당 근로자가 55세 이상으로 가입기간이 10년 이상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