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책 ‘10선’

내가 볼 수 없었던 숨어 있는 1인치를 다른 누군가의 시선으로 찾아내고 공유하는 경험이야말로 허용된 훔쳐보기, 권장할 만한 싸움이다. 이런 훔쳐보기와 싸움의 과정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치유’다.치유는 갈등과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하며 평안과 화합을 가져오는 열쇠다. 숨어 있던 내면의 상처받은 자아를 만나고 위로받음으로써 어긋난 관계를 회복하고 삶에 대한 새로운 의미와 희망을 부여해준다. 따라서 책 속에 다소곳이 담겨 있는 세계와 관계를 읽고 공감한다는 것은 인간이 겪어야 할 온갖 갈등과 문제상황에 대한 성찰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는 의미인 셈이다.이 성찰은 다름 아닌 바로 나, 그리고 나를 둘러싼 1차적인 외피인 가족으로부터 시작된다.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을 맞아 앞으로 권하게 될 10권의 책들은 표면적으로는 연휴를 알차게 보낼 수 있는 건강한 즐거움을 표방했지만 그 이면에는 건강한 인간관계의 회복, 곧 가족간의 관계를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도록 함께 읽고 공감 가능한 목적을 깔고 있다.<각인각색 심리이야기>(류소/사군자)를 목록의 가장 첫 번째로 꼽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지난 몇 년 사이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심리학에 대한 열풍은 자아와 타자에 대한 정체성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광속의 시대와 효율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자신을 성찰하는 일은 자신뿐만 아니라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성의 회복까지도 의미한다.이 책은 10가지 심리 분류 기준에 따라 각각 사람들의 유형을 몇가지로 나눠 그 이론적인 배경과 특징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제시한다. 갈등의 바탕에는 나와 다름에 대한 이해부족이 도사리고 있다. ‘왜 나와 다른가’, ‘어떻게 다른가’를 알 수만 있다면 우리는 현재 고민하고 있는 갈등의 상황을 거의 대부분 줄일 수 있다. 이뿐 아니라 그 지식을 활용해 상대방으로부터 유리한 것들을 충분히 이끌어낼 수도 있다. 가족이 둘러앉아 각자의 심리적 유형이 어떤 것에 가까운지 이야기해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알찬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나와 다른 상대에 대한 이해의 관점을 세계사로 확장하면 그 일단에서 ‘십자군전쟁’과 만나게 된다. 종교의 이름 아래 자행된 전쟁의 광기가 어떻게 편향된 이데올로기를 통해 주입돼 있는지 이 책 <십자군 이야기 2>(김태권/길찾기)는 잘 보여준다. 기존에 알고 있었던 기독교 중심의 시각이 아닌 이슬람 중심의 시선을 통해 균형잡기를 시도한 이 책은 독특한 그림체와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역량과 애정이 듬뿍 묻어난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힘과 경제, 종교의 논리를 바라보고 이야기 나누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면 구체적인 삶의 방식과 결과가 달라진다. 한 종지의 간장과 한 그릇의 더운밥을 두고 ‘황후의 밥, 걸인의 찬’이라고 했다던 어느 수필가의 말처럼<행복한 고물상>(이철환/랜덤하우스중앙) 안에는 행복을 바라보는 기준과 방식에 대한 담담한 진술이 펼쳐진다.매일매일 TV 뉴스와 신문을 통해 전해지는 피폐하고 낯선 뉴스들만큼이나 많은 소박하고 진솔한 행복이 우리 주변에 많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삶의 현장에서 메마른 감정의 우물을 휘영청 높디높은 보름달과 함께 채워볼 수 있는 잔잔한 기회를 제공한다.마음의 행복과 함께 몸의 행복도 챙겨야 할 시간이다. 가진 것 없어 오히려 더욱 자연과 친화적이었던 흑백사진 속의 삶을 요리와 추억이라는 테마를 통해 독특하게 풀어낸 <짱뚱이의 상추쌈 명상>(오진희/열림원)이 그 몫을 담당하고도 남는다.만화와 그림동화로 잘 알려진 ‘짱뚱이 시리즈’의 작가 오진희씨가 계절별 먹을거리와 조리법을 친절하게 설명한다. 기름진 차례음식으로 지친 몸을 달래고 더불어 아이들에게 시공간을 뛰어넘은 과거와의 조우를 마련해 줄 수 있는, 그래서 세대간의 불신과 거리감을 줄일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해줄 만하다.병과 의학정보 엮은 <비타민>도 권할 만내친김에 좀더 구체적인 몸의 영역으로 들어가 보자. 병과 의학정보를 쉽고 흥미롭게 소개하는 TV프로그램의 내용을 모아 엮은 책<비타민(10년 젊어지는 내 몸 개혁 프로젝트)>(KBS비타민제작팀/동아일보사)이 바로 그것. 잘못 알고 있는 속설들을 묶어 설명하는 것은 물론 질병별 자가진단표와 노화를 막고 몸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구체적 방법들을 제시했으며 TV에 소개됐던 연예인들의 자기관리 비법과 방송 이후 관리에 대한 근황도 함께 실어 흥미를 더했다. 요란한 TV보다 차분하면서도 더 다양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이 책들과 더불어 <그 골목이 품고 있는 것들>(김기찬 외/샘터사)을 함께 읽는 것도 큰 도움이 될 만하다. 화려한 도시의 소박한 골목을 사진으로 담아낸 이 책에는 진실된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묻어난다.골목을 누비며 살아왔던 보통사람들, 그들의 역사가 바로 오늘을 만들어낸 묵묵한 토대였음을 알 수만 있다면 성공과 명예를 위해 거침없이 뛰어가는 브레이크를 잃어버린 시대에 소박하나마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떠올려볼 수 있지 않을까? 좀더 구체적인 것을 원하는 가족이라면 당장 사진기 하나 둘러매고 나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의 풍경과 가족들의 모습을 담아 기록으로 남겨보는 것은 어떨는지.관계는 산 사람들과만 맺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높고 거친 타국의 오지에서 숨을 거둔 동료를 찾아 떠난 목숨을 건 여행기 <엄홍길의 약속>을 보면 죽은 자들과의 약속 또한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 숙연해 지지 않을 수 없다. ‘휴먼원정대’라는 이름으로 히말라야 고산을 오르는 산사나이들의 발자취 속에는 인간이 인간에게 품을 수 있는 감정의 깊이가 과연 어디까지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순식간에 증발해 버리는 인스턴트 관계의 시대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엄홍길과 ‘휴먼원정대’의 이야기는 그래도 아직 살 만한 세상의 희망이 남았음을 보여준다.살아있는 자들의 책임이란 무엇인지, ‘우리가 보낸 오늘 하루가 그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을 사는 마음가짐이 조금은 더 소중해지지 않을까?동심과 어른됨의 조화야말로 가족이 풀어가야 할 영원한 숙제다. 이 숙제를 풀기 위해 동명영화의 원작인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강력 추천한다. 환상적인 판타지 공간에서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책과 영화를 놓고 혹 고민할지도 모를 가족들을 위해 조언하자면,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관람하라는 것. 문자가 선사하는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영화 속에 구성된 그림들이 오히려 가로막고 나설 수 있기 때문에. 상상의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 것이 바로 문자로 쓰인 책이 줄 수 있는 위대한 가능성임을 이해할 수 있는 흥겨운 기회를 선사할 만하다.상상력과 역사를 결합한 한국형(?) 팩션으로 분류할 수 있는 김탁환의 <방각본 살인사건>(전2권/김탁환/황금가지)도 세대를 뛰어넘어 즐길 수 있는 좋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한다. 젊은 세대에게 크게 호응을 받았던 외국계 팩션인 <다빈치 코드>와 비교해가며 읽는 것도 이 책의 묘미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 책의 지은이가 최근 인기리에 끝난 사극 <불멸의 이순신>의 원작자 중 하나라는 사실 역시 기꺼이 책 읽기를 독려할 만한 요소 중 하나다.추석연휴를 치유의 코드로 백배 즐기기 위해 권하는 가장 마지막 책은 고전문학을 통해 경제를 들여다본 대단히 독특한 성격의 책이다. 이른바 이질적인 장르간의 화해(?)를 통해 참신한 현실인식이라는 의외의 즐거움을 전해준다. <책에게 경제를 묻다>(로버트 A. 브로어/해바라기)는 지은이의 이력부터 흥미로움을 더한다.영문학 박사출신의 CEO인 지은이는 허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문학 속에 당대의 경제적 가치관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비정한 조직과 자본의 인간 소외 현상을 고발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조직 내의 자아인식이 개인뿐만 아니라 조직에도 중요함을 지적하고 <글렌게리 글렌로스>로부터 소비에 대한 풍자의 코드가 아닌 구매 설득의 기술을 추출하게 해줌으로써 결국 세계의 모든 현상과 가치들이 홀로 서 있지 않으며 그것을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력이 필요함을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