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에 경사가 났다. 다국적 브랜드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가 발표한 ‘2005년 세계 100대 브랜드’에 삼성전자가 소니(28위)를 큰 차로 제치고 30위권에 오르고, 현대자동차와 LG전자는 처음으로 100위권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특히 삼성은 달러로 환산한 브랜드 가치가 지난해보다 19% 증가한 149억달러에 달해 성장률 측면에서 이베이, HSBC에 이어 톱3에 랭크됐다.인터브랜드의 발표는 세계 속에서 한국 브랜드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일종의 지표다. 인터브랜드측은 결과 발표와 함께 “올림픽, 월드컵 등 굵직한 국제행사의 스폰서 활동과 다양한 글로벌 마케팅, 우수한 품질과 디자인에 힘입어 한국기업의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100위권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린 현대차의 경우 올해를 글로벌 브랜드 경영 원년으로 삼고 특별팀을 구성해 브랜드 관리에 힘쓴 결과 닛산(85위)을 제치는 기염을 토했다. 타임(Time), AOL, 에스티로더 등이 올해 100위권 밖으로 밀려난 것을 감안하면 현대차와 LG전자의 약진은 가히 놀랄 만한 성과다.실제로 글로벌 경영을 지향하는 대기업들의 브랜드 마케팅은 이미 상당한 경지에 올라 있다. 세계 주요 공항에 휴대전화를 쥐고 있는 대형 손 조형물을 세워 브랜드와 비전을 알리는 ‘조형물 마케팅’을 펴고 있는 삼성전자는 최근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국제공항을 비롯해 올 들어서만 6개의 조형물을 세계 주요 공항에 세웠다. 삼성은 앞으로도 뉴욕, 베이징, 모스크바 등 9개 공항을 추가해 전세계 26개 공항에 손 조형물을 세울 예정이다.LG전자는 스포츠ㆍ문화마케팅을 통해 브랜드 파워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중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각종 스포츠대회의 스폰서로 참여해 대회공식 엠블렘을 마케팅에 활용하고 독일, 그리스, 헝가리, 이라크,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국가대표팀과 브라질 상파울루팀과 같은 명문 프로축구팀에 대한 후원활동도 꾸준히 전개하고 있다.중소업체들 중에서는 전기밥솥 ‘쿠쿠’로 유명한 쿠쿠전자와 공조기 전문회사 위니아만도가 브랜드 경영의 대표사례로 꼽힌다. 쿠쿠전자는 요리(cook)와 뻐꾸기(cuckoo)의 합성어로 ‘쿠쿠’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지난 2002년 성광전자에서 쿠쿠전자로 사명까지 바꿨다. 만도공조는 소비자에게 잘 알려진 가전 브랜드 ‘위니아’와 차량 공조분야에서 권위를 자랑해 온 기존 사명 ‘만도’를 합성해 ‘위니아만도’로 사명을 바꾸고 친소비자 브랜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이처럼 무형자산인 브랜드의 가치가 기업의 최고 핵심 자산이라는 인식이 최근 크게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몇몇 손꼽히는 기업을 제외하곤 아직 ‘갈 길이 먼’ 수준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브랜드 경영의 중요성에 대해선 많은 CEO들이 빠른 인식전환을 하고 있지만 실제 효과를 내기 위한 투자나 경영활동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한국생산성본부가 지난해 종업원 300명 이상 대기업 247개와 중견기업 206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국내기업의 브랜드 경영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브랜드 경영과 관련, 전략수립과 예산집행 등을 전담하는 조직이 구축된 기업은 전체의 15.7%에 불과했다. 또 전략수립과 실행과 같은 일부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이 구축된 기업은 19.7%로 나타났다. 대기업(21.5%)과 중소기업(4.0%)간의 구축비율에서도 큰 차이를 보였다. 특히 전담조직이 있는 기업 중 ‘브랜드’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경우는 5.6%에 그쳐 사실상 브랜드를 기반으로 한 조직형태를 갖춘 기업은 매우 드문 것으로 조사됐다.또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한 투자경험이 있는 기업은 42.5%(대기업 50.6%, 중견기업 36.9%, 소기업 26.0%)로 기업규모에 따라서도 큰 차이를 나타냈다. 투자경험이 없는 기업의 투자계획에 대해서는 ‘없다’고 응답한 기업이 49.1%에 달했다.특히 이 보고서는 국내기업의 문제점을 크게 두 가지 요인으로 분석했다. 첫째, 브랜드 경영에 대한 착각 등 ‘인식의 문제’로 당장 눈앞의 실적이 나타나지 않아 브랜드 경영에 대한 열의가 떨어지고 재무, 기획 등의 부서간 이해충돌이 나타난다는 것이다.둘째, ‘실천방법의 문제’도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즉 브랜드 경영의 비전과 전략을 전사적으로 공유하지 않는데다 제대로 운영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브랜드 경영 활동을 하고 있다는 기업에서조차 실제 경영활동의 내용이나 조직체계, 방법론이 부실한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손일권 브랜드스톡 연구소장은 “많은 CEO가 브랜드 경영의 중요성에 눈뜨고 있지만 실제 투자는 미약한 수준”이라면서 “기업마다 제품과 브랜드 수명주기를 과학적으로 분석, 브랜드 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INTERVIEW 손일권 브랜드스톡 브랜드연구소장“국가 브랜드 파워 제고 시급”“국가 브랜드 성장이 답이다.”브랜드 가치평가기관인 브랜드스톡의 손일권 브랜드연구소장은 브랜드 경쟁력 강화가 일부 업종, 기업에 국한돼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한국 브랜드들이 월드컵 이후 크게 성장하고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선 국가 브랜드 전체를 통합관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가, 기업, 제품 브랜드가 서로 맞물려 성장해야 명실상부한 톱클래스 장수 브랜드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한국 브랜드의 글로벌 위상이 크게 높아졌는데.대기업의 글로벌 마케팅을 통한 브랜드 파워 향상은 눈에 띌 정도로 뚜렷한 변화다. 중소기업 중에서도 국내보다 해외에서 이름을 날리는 업체들이 적잖다. 하지만 브랜드 파워가 일부 업체에 국한되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메이드 인 코리아’보다 ‘삼성’이 더 높은 브랜드 가치를 가지는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스위스처럼 국가와 산업, 제품 브랜드가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국가 브랜드 성장의 조건을 꼽는다면.국가 이미지 통합 관리에 대한 필요성이 이미 제기돼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된 상태다. 하지만 이는 정부, 학계, 기업이 힘을 합쳐야 하고 산업, 스포츠, 역사, 관광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발을 맞춰야 하는 만큼 당장 이뤄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분명한 것은 국가 브랜드 성장이라는 큰 틀 속에서 기업 브랜드 파워 강화를 추진한다면 그 효과가 훨씬 더 클 것이라는 점이다. 기업들도 전담조직을 구축해 브랜드 파워 높이기에 나서야 한다. 사회공헌활동이나 메세나에도 관심을 더 기울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