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패션액세서리업체에 납품 … ‘성공 절반은 가족 몫’

약력: 1953년생. 85년 보우실업 설립. 95년 산업자원부 장관상. 2001년 모범기업 대통령상. 2005년 동탄산업훈장액세서리를 수출해 지난해 120억원 매출을 기록한 회사. 중국 칭다오 공장 현지직원까지 계산하면 무려 1,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CEO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가냘픈 모습의 여성이 김명자 보우실업 사장(52)의 첫인상이었다.“이렇게 말하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솔직히 다른 기업인들이 요즘 불황이라고 하면 ‘정말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편안해 보이는 첫인상만큼 김사장의 비즈니스도 순항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도 그럴 게 수출 100% 기업을 꾸리다 보니 TV뉴스조차도 국제소식만 들여다보는 김사장이다.“저는 후배 여성창업자들이 해외로 눈을 돌렸으면 좋겠어요. 한국에서는 여성이 기업인으로 살아가는 데 제약이 많죠. 제 비즈니스에서는 여자라서 겪는 불편은 결코 없습니다.”그녀는 특히 해외를 상대로 비즈니스를 하는 게 의외로 어렵지 않다고 설명했다.“어디서부터 시작할지 모를 경우 각종 기관을 활용하면 좋습니다. 저는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아마 역대 KOTRA 사장보다 제가 더 많은 무역관을 다녀왔을 겁니다. 56개국 72개 무역관에 갔었으니까요.”김사장이 세계시장을 뚫으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또 있다. 한 지역이 불황일 경우 또 다른 지역을 새로운 시장으로 개척할 수 있다. 그녀가 한국의 경기침체를 실감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전업주부였던 김사장은 우연히 외국바이어의 거래를 도와주다가 사업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특히 해외에서 한국 액세서리가 저가품 취급을 당하고, 외국 유명업체가 싼값에 사간 국산 부품은 명품으로 둔갑하는 걸 보니 안타까웠다. 이렇게 해서 보증금 1,000만원에 직원 3~4명을 두고 시작한 사업이 20년 만에 세계적인 패션액세서리업체에 ODM(제조자설계생산)방식으로 납품할 정도로 커졌다. 15년 동안 직접 시장을 개척해 온 김사장이 “이제는 해외업체에서 문의가 들어와도 선별해 주문을 받는다”고 이야기할 정도다.“처음에는 해외여행을 많이 다닐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성격이 외골수라 막상 시작하니 집중해서 매달리게 되더군요. 어느 순간부터 사업은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신뢰’라는 소신을 갖고 부지런히 뛰자 조금씩 성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언어문제도 해결이 안돼 영어사전을 들고 다니며 미팅 때 필요한 말만 외워서 임하는 수준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제품의 품질과 납품기한, 가격 등 세 가지 요소에 있어서만은 바이어의 신뢰를 얻기 위해 철저히 노력했다. 따라서 김사장은 여성창업자들이 세계로 눈을 돌리되 자신이 없거나 신용이 떨어지는 제품으로 나서면 백전백패한다고 덧붙였다.지난 7월 초 제9회 여성경제인의 날 기념식에서 모범 여성기업인의 자격으로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하기도 한 김사장은 성공의 절반은 가족의 몫으로 돌렸다.“남편이 제가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데다 ‘엄마는 달러 벌어들이는 애국자’라고 농담처럼 자주 이야기해 아이들에게 교육효과도 있었습니다.”김사장은 ‘내실을 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굳이 큰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다만 김사장의 유일한 ‘거창한 포부’는 한국여성의 힘을 전세계에 알리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 각종 국제회의에도 부지런히 참석한다. 세계 각국 많은 사람들이 “한국도 경제활동을 하는 여성인구가 이렇게 많나”며 의아해하지 않고 한국여성의 경제활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