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한 경영’ 통해 모범적 노사문화 구축 … 올해 매출 4천억 돌파 기대

약력: 1936년생. 57년 수도여자사범대 국문학과 졸업. 85년 경신공업 대표이사(현). 92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AMP 과정 수료. 94년 한국여성경제인연합회 부회장. 99년 노동부 고용보험전문위원회 위원. 99년 한국자동차공업협동조합 이사(현). 2000년 인천경영자협회 부회장(현)한국의 대표적 여성기업인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김현숙 경신공업 회장(69)은 부드러움과 사업가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동시에 갖춘 CEO로 유명하다. ‘사업가로서 장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본인 스스로 ‘섬세함과 모성애’라고 스스럼없이 말할 정도다. 하지만 현장을 누빌 때는 통이 크고 결단을 빨리 내리는 여장부의 모습 그대로라는 것이 직원들의 설명이다.김회장이 이끄는 경신공업은 이름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대단한 기업’으로 명성이 높다. 국내 자동차 배선분야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데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핵심협력업체로 자리를 굳혔다. 지난해 2,89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고, 올해는 4,000억원을 넘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신규 차종 증가로 거래물량이 늘어난데다 수출도 호조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관련 업체인 만큼 기술개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R&D 인력만 300여명에 이르며 현대차가 인정할 정도로 많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김회장이 사업에 본격 뛰어든 것은 지난 85년이다. 74년 경신공업을 창업해 운영해오던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뜨는 바람에 선택의 여지없이 CEO자리에 앉았다. 물론 85년 이전에도 창업 멤버이자 감사로서 회사경영에 일부 참여했지만 전면에 나서지는 않은 상태였다.“당시만 해도 자동차산업의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습니다. 경신공업 역시 지금의 매출액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전형적인 중소기업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지요. 더욱이 1남5녀의 어머니로서 회사를 이끌어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둘 다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겨 회사를 맡았습니다.”여러가지 상황이 쉽지는 않았지만 김회장은 하나하나 상황을 파악해 나갔다. 다행히 직원들이 열심히 뛰어줘 85년 100만불 수출탑을 받았고, 87년에는 KS 표시 허가를 얻는 성과를 거뒀다. 회사경영도 공격적으로 펼쳐 89년에 아산공장을 준공하는 등 2000년까지 무려 4개의 공장을 새로 지었다. 2004년 말에는 일본의 스미토모사와의 기술제휴 및 자본합작 프로젝트를 성사시켰고, 지난 6월에는 인천 송도신도시에 새 사옥을 지어 본사와 기술연구소를 이전했다.경신공업은 업계에서 노사분규가 없는 회사로도 유명하다. 업종의 특성상 회사가 시끄러울 법도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제가 기업경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가운데 하나가 직원과의 대화입니다. 현장의 현황과 고충에 귀를 기울이고 자상하게 챙겨주다보니 오늘날의 모범적인 노사관계를 이루었다고 봅니다.”그렇다고 김회장이 탄탄대로만을 달려온 것은 아니다.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특히 IMF 외환위기 때는 직원 500명을 퇴직시키는 등 생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맛보기도 했다.CEO로 취임한 지 만 20년이 지났고, 회사 규모를 엄청나게 키웠지만 김회장은 요즘도 오전 7시면 집을 나서 오후 9시가 넘어서야 퇴근한다. 스스로 “일이 취미이고 일밖에 모른다”고 말하곤 한다는 것이 직원들의 설명이다. 한달에 20여일은 지방공장과 해외로 출장을 떠나고 사무실로 일어강사를 불러 회화공부를 하는 것도 김회장의 이런 면모를 엿보게 한다.한우물을 파온 김회장은 후배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여성이기 때문에 봐달라는 생각을 버리고 꿈을 크게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요즘 김회장의 발길은 세계시장으로 향하고 있다. 경신의 브랜드를 세계시장에 널리 알리는 데 경영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미 인도, 중국, 미국, 터키 등에 현지공장이나 합작법인 형태로 진출해 있고 앞으로 더욱 가속도를 낼 방침이다. 김회장은 “2010년 1조원 매출과 자동차 배선분야 글로벌 톱5를 향해 힘껏 뛸 생각”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