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의 경제 성적표는 낙제점이다.’<한경비즈니스>가 교수, 연구원, 컨설턴트, 증권사 리서치센터 연구원 등 경제전문가 6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의 결론이다. 60명 가운데 55%에 해당하는 33명이 참여정부 들어 경제 사정이 ‘대체로 나빠졌다’고 답했고 ‘매우 나빠졌다’는 의견도 8.3%에 달했다. 이에 비해 10%에 해당하는 6명만이 대체로 좋아졌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부정적인 평가가 긍정적인 평가의 6배가 넘은 것이다. 25%인 15명은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다고 밝혔다.그렇다면 얼마나 나빠진 것일까.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점수는 그야말로 ‘바닥권’이었다. 41.6%가 D학점에 해당하는 ‘60~69점’이라고 답했고 ‘60점 미만’이라는 응답도 26.7%에 달했다. 이에 반해 단 2명만이 80점 이상으로 응답했다. 최소한 전문가들의 눈에 참여정부는 ‘경제 열등생’임이 분명한 셈이다.참여정부의 경제 성적표가 이렇게 나빠진 가장 큰 이유는 ‘정책 실패’(46.7%)였다. 좋아질 수도 있었는데 정부의 잘못된 정책 탓에 경제가 내리막길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 40%의 응답자는 ‘소비 및 투자 감소’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답했다. 최근 한국경제의 위협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는 환율 및 유가 등의 대외변수와 신용불량자 문제가 경제 악화의 원인이라고 답한 전문가는 불과 3명에 불과했다. 특히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온 노사문제를 택한 전문가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과가 있으면 공도 있기 마련이다. 참여정부 들어 가장 좋아진 부문은 ‘수출 증가’(53.3%)가 꼽혔다. 내수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는 것과 달리 수출은 크게 증가한 것이 높은 점수를 받은 것. 그 뒤를 이은 ‘기업경쟁력 강화’(26.7%)도 같은 맥락에서 풀이할 수 있다. 수출의 증가는 결국 기업경쟁력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정부 정책이 성공했다고 답한 응답자는 1명뿐이었다. 이래저래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은 낙제점을 면치 못한 셈이다.대체로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지만 ‘기업 투명성 제고’만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응답자의 58.4%에 해당하는 35명이 이 항목을 참여정부의 최대 업적으로 꼽았다. 정경유착 근절, 재벌개혁 등으로 대변되는 개혁정책이 나름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반면 부동산 정책은 호된 질타를 받았다. 무려 60%의 응답자들이 참여정부의 가장 큰 정책실패로 ‘부동산정책’을 꼽은 것이다. 이는 여러차례에 걸쳐 단행된 부동산 대책들이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투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비판이 비등하고 있는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위헌으로 결정된 행정수도 문제 역시 낮은 점수를 받은 데 적잖게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 금융, 수출, 기업규제, 세제, 실업정책 등은 부동산정책의 실패에 밀려 모두 10% 이하의 응답률을 보였다.도대체 참여정부에는 어떤 문제가 있기에 경제점수가 이렇게 형편없는 것일까. 가장 많은 지적을 받은 요인은 ‘정책 결정 시스템의 혼선’이었다. 어제 발표한 정책과 오늘 발표한 정책이 일관적이지 못하고 이 부처와 저 부처의 정책이 충돌해 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국민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는 것. 이런 비판은 최근 부동산 대책을 중심으로 특히 불거지고 있다. 전체의 20%인 12명의 응답자는 ‘잘못된 방향설정’을 주요인으로 꼽았다.현재 한국경제의 최대 위협으로는 ‘신성장동력 부족’(34.7%)이 지목됐다. 새롭게 재편되고 있는 세계 산업구조의 변화를 헤쳐나갈 엔진이 부족하다는 것. 말하자면 오늘은 그럭저럭 무사히 지나갈지라도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와 다르지 않다는 지적인 것이다. 성장동력 부족은 기업의 투자위축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이 점이 두드러졌다. 기업의 투자부진(20.8%)이 한국경제의 버금가는 위협요인으로 나타난 것이다. 소비와 내수 침체는 18.8%의 응답률을 보였다.부동산시장 안정화에 대한 참여정부의 의지는 역대 최고라는 평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하늘이 두 쪽 나도 부동산만은 잡겠다”고 공언하는가 하면 이해찬 국무총리는 “부동산 투기는 사회적 범죄”라고 단언할 정도다. 이외에도 부동산 투기를 뿌리뽑겠다는 참여정부의 의지는 곳곳에서 발견된다.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은 가장 실패한 정책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도 이 점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응답자의 58.3%가 참여정부의 부동산정책은 60점 미만이라고 답했고 30%는 ‘60~69점’을 줬다. 90점 이상은 단 한 명도 없었다.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역시 가장 많은 지적은 ‘정책의 비일관성’(46.7%)이었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강력한 시장 개입 의지도 비판 대상이었다. ‘시장경제에 위배’(25%)를 지적한 응답자가 ‘정책의 비일관성’의 뒤를 이은 것. 여론수렴이 부족하다는 견해(15%)와 특정 지역 위주의 정책도 문제가 있다는 의견(8.3%)도 적지 않았다.문제가 있다면 보완하면 된다. 부동산정책도 마찬가지다. 전문가들은 세제정비(23.3%), 시중 부동자금 유입처 개발(21.7%) 등을 주요 과제로 꼽았다. 반면 강남을 대체할 신도시 건설(15%)이나 행정도시 등 개발 프로젝트 개선(11.7%) 등은 상대적으로 낮은 응답률을 보였다.기업의 경쟁력이 최근 들어 크게 높아졌다고 응답자들은 답했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기업정책에는 점수가 인색했다. 43.3%가 ‘60~69점’을, 33.3%가 ‘70~79점’을 줬다. ‘60점 미만’의 낙제점을 준 응답자도 16.7%에 달했다. 정부의 ‘열등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분발해 ‘우수한’ 성적을 내고 있다는 평가에 다름 아니다.기업정책의 문제점으로는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장기적 정책 부재’(51.7%)에 칼끝이 모여졌다. 이는 앞선 항목에서 한국경제의 당면한 최대 문제가 ‘신성장동력 부재’라고 응답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한국경제의 내일을 이끌어나갈 엔진이 마땅치 않음에도 장기적 안목에서 이를 발굴, 개발하려는 정부의 능력과 의지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평가다. ‘반기업 정서 자극’(13.3%), ‘지나친 규제’(10%), ‘중소기업 육성 미흡’(10%), ‘외국계 기업과 형평성 부족’(10%) 등도 문제로 지적됐다.정부가 주력해야 할 기업정책 과제는 ‘공정경쟁 기반 구축’(43.3%)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대기업 규제 완화’(15%)와 ‘사회기반시설 등 인프라 확충’(15%)도 풀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참여정부의 경제정책 가운데 비교적 후한 점수를 받은 부문은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이었다. 36.7%가 ‘70~79점’이라고 답해 낙제점을 받은 부동산정책이나 ‘60~69점’이 가장 많았던 기업정책과 비교된다. 하지만 ‘80~90점’이란 응답은 13.3%에 그쳤고 ‘90점 이상’은 한 명도 없어 썩 좋은 성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외국인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 보완해야 할 과제를 물었다. 이에 대해 33.3%가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복잡한 규정 때문에 외국인이 투자를 꺼려하니 기업이 자유롭게 사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투기자본에 대한 규제는 강화해야 한다(25%)고 답한 응답자도 많았다. 이는 최근 일부 외국계 금융자본이 국내기업에 적대적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등 외국인투자의 역효과가 심심치 않게 대두되는 현상을 염두에 둔 응답으로 풀이된다.외국인 투자 유치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특혜를 줘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많았다. 국내기업과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18.3%)는 응답이 적지 않은 것. 어디까지나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조건에서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최대 기업정책 과제를 묻는 항목에서도 ‘공정경쟁 기반 구축’이 꼽힌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흔히 최근의 한국경제를 ‘양극화’로 표현한다. 잘되는 쪽과 안되는 쪽의 격차가 과거 어느 때보다 크다는 것이다. 수출과 내수의 관계도 그렇다. 수출은 역대 신기록을 갈아치우기 바쁜데 내수는 바닥없는 침몰을 하고 있다. 수출증가가 내수촉진으로 이어지던 선순환이 끊긴 지는 이미 오래다.그렇다면 내수회복을 위한 정부의 정책은 과연 얼마나 효과적이었을까. 짐작대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40%가 ‘대체로 효과적이지 않았다’고 전했고 ‘매우 비효과적이었다’는 응답도 15%나 됐다. ‘대체로 효과적이었다’는 응답은 불과 10%에 그쳤고 ‘매우 효과적이었다’는 답은 전무했다.내수회복을 위한 묘안으로는 역시 ‘기업 투자 촉진’(55%)이 1순위였다. 기업이 투자를 늘리면 내수경제에 활력이 돈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지적이 아니다. 하지만 좀처럼 기업 투자는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이 역시 한국경제의 최대 위협 요인인 ‘신성장동력 부재’와 적잖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투자를 하고 싶어도 안심하고 투자할 대상도 없고 투자할 대상이 있어도 나라 안팎의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있어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는 말은 기업계 안팎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푸념이다. ‘실업대책 등 사회안전망 구축’(11.7%)과 ‘중소기업 보호 및 육성’(10%)도 내수회복의 묘수로 추천됐다.최근 세계경제의 최대 이슈는 국제유가다.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는데다 한동안 떨어지지도 않을 것이란 전망이 대세다. 국제환율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달러화, 유로화, 위안화 같은 덩치들의 변화에 수출기업들의 채산성이 널뛰기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가나 환율 같은 대외변수에 대한 정부의 대응능력은 충분치 않다는 결과가 나왔다. 41.7%가 ‘60~69점’이라는 박한 점수를 줬다. 다만 26.4%가 ‘70~79점’을, 15%가 ‘80~89점’이라고 답해 부동산정책이나 기업정책 부문보다는 성적이 좋았다.최근의 한국경제를 낙관적으로 보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오히려 성장 여력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 우세하다. 지금까지 수출이 호조를 보이며 경제를 지탱하고 있지만 이마저 고유가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니 경제성장률이 높게 예상될 리 없다.이번 설문조사에서도 전문가들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이 좋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3~4%에 그칠 것’이라는 답이 66.7%에 이른 것. ‘2~3%에 머무를 것’이란 전망도 18.3%나 됐다. 이에 비해 ‘4~5%’로 점친 전문가는 15%에 불과했고 5% 이상은 전무했다. 현재로서는 과거의 고공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는 전망이다.이번 설문조사에서는 참여정부 임기 후반기의 전망도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이 시기에는 경기가 다소 회복될 것으로 점쳤다. 50%의 전문가들이 ‘조금 좋아질 것’이라고 응답해 희망적인 관측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현재와 비슷할 것(40%)이라거나 오히려 더 나빠질 것(5%)이란 관측도 적지 않은 것이다.더욱 나빠진다면 그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현재 참여정부의 최대 문제인 ‘정책 결정 시스템의 혼선’이 임기 후반기에도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었다. ‘정책의 불확실성’(26%)이 임기 하반기 한국경제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란 지적이 많았다. 유가와 환율 등 대외변수의 불확실성(22.9%), 신성장동력 부족(13.6%)이 그 뒤를 이었다.현재 한국경제의 버팀목이라 할 수 있는 수출경쟁력은 참여정부 하반기에 어떻게 달라질까. 전문가들은 대체로 좋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41.6%가 현재와 비슷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많이 좋아질 것(21.7%)이란 전망도 많았다. 하지만 부정적인 시각도 상당수에 달했다.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경쟁력이 후퇴하거나(13.3%) 외형은 증가해도 채산성은 떨어질 것(10%)이란 비관적인 관측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효과는 대체로 긍정적이었다(58.4%). 부정적인 답변은 불과 3.3%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