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한ㆍ중ㆍ일 산업 및 기술경쟁력 비교결과를 내놓고 있지만 결론은 비슷하다. 부품ㆍ소재분야 등에서 알 수 있듯 우리나라는 일본의 벽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고, 중국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장을 제공하는 동시에 하루가 다르게 추격하는, 한마디로 기회이자 위협의 상대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과연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가.무슨 기막힌 해법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산업경쟁력은 하루아침에 달라질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치밀한 전략과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돼야 비로소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그런 측면에서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속적인 산업구조 고도화 전략이다. 이와 관련,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이 있다. 제조업이 부가가치나 고용 측면에서 한계에 달했다거나 비중이 줄어든다고 해서 그 전략적 중요성마저 떨어졌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제조업이냐, 서비스업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서비스업의 생산성 향상도 중요하지만 제조업의 생산성 역시 여전히 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낮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경제가 일정규모 이상인 선진국들을 보면 어느 산업부문이건 생산성을 높이거나 부가가치가 높은 영역으로 이동해 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예컨대 섬유산업과 화학산업에서 선진국과 후발국이 각각 어느 영역을 점하고 있는지를 비교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사양산업이라는 섬유, 신발, 가전산업조차 구조개선과 함께 기술혁신 등을 도모하면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얼마든지 옮아갈 수 있다. 산업구조 고도화 전략을 기업 입장에서 풀어내면 노동 등 투입요소에 의존한 생산적 우위 유지는 더 이상 어렵기 때문에 설계, 디자인, 브랜드, 마케팅 등 제품혁신과 차별화 전략으로 나가야 한다는 얘기가 될 것이다.둘째, 자본재, 중간재, 부품, 소재산업의 육성에 특히 역점을 둬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선도대기업과 부품을 공급하는 중소기업들 사이의 생산성 격차가 축소되지 않고 있다. 또한 자동차나 전기ㆍ전자 등에서 수출이 호조를 보이는 등 경쟁력이 있다고 하지만 핵심부품과 소재의 대외 의존도는 여전히 높은 실정이다. 따라서 이들 분야의 육성이 향후 우리나라가 지속적인 산업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산업구조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으로 무역구조를 선진화한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만약 이에 실패한다면 중국에 대한 산업경쟁력 우위를 지켜나가기가 대단히 어려울 것이고, 부품ㆍ소재에 대한 대일 의존도를 낮추기도 힘들다.이 분야는 특성상 단기간에 성과를 바랄 수 없기 때문에 수요-공급기업간 공동 기술개발, 신뢰성 향상 등을 골자로 하는 지금의 부품소재산업 육성시책을 지속적으로 밀고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중국시장을 우리나라의 기계, 화학산업 등을 고도화해 나갈 절호의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 분야의 핵심기술을 장악하고 있는 외국 선진기업들을 과감히 국내로 유치, 이들의 동북아 진출 거점 역할을 하면서 우리의 기술혁신 능력을 보완해 나가는 전략을 강구할 필요도 있다.셋째, 미래 첨단산업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다. 지금 우리나라는 5~10년 후 우리 경제를 이끌어나갈 차세대 성장동력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TVㆍ방송, 디스플레이, 지능형 로봇, 미래형 자동차, 차세대 반도체, 차세대 이동통신, 지능형 홈네트워크, 디지털 콘텐츠ㆍSW솔루션, 차세대 전지, 바이오신약ㆍ장기 등 10대 분야가 그것이다. 이들 전략산업은 일본, 중국 등도 노리고 있는 분야들이다. 일본은 이들 분야를 중심으로 경제부활을 꾀하고 있고, 중국은 외국인투자를 통한 기술흡수, 자체 투자 확대, 시장을 지렛대로 한 기술표준화 전략 등으로 기술추격에 가속도를 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10년 후 한ㆍ중ㆍ일 경쟁력은 여기서 판가름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문제는 이들 분야의 R&D 투자규모가 막대하고 위험도나 시장의 불확실성도 높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부 혼자 나선다고 될 일이 아니다.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를 유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자면 규제완화 등 적극적인 기업투자 유인책을 강구해야 한다. 인력양성, 산ㆍ학ㆍ연 협력 등도 필수적이다. 핵심기술을 보유한 외국기업을 적극적으로 매수하거나 다국적기업들을 국내로 유치할 필요도 있다. 글로벌 차원에서 모든 가용한 자원을 활용해 나가겠다는 개방적인 혁신전략도 필요하다. 기업들의 기술개발 전략 역시 마찬가지다.정부, 기업혁신 돕는 인프라 확충해야산업경쟁력은 기업경쟁력이 모여 나타난다는 점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들이 많이 나오도록 기업정책을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다. 우선 대기업에 대한 규제정책에서 벗어나 선도대기업 활용전략으로 나가야 한다. 향후 한ㆍ중ㆍ일 경쟁을 기업 측면에서 보면 규모의 경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금 중국은 적극적인 인수합병, 해외투자 등을 통해 기업 규모를 단기간에 육성하는 정책으로 나가고 있다. 한국의 성장과정에서 대기업의 역할을 눈여겨본 것이다. 이럴 경우 한ㆍ중ㆍ일간 대기업 경쟁은 그만큼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국내 대기업들은 이런저런 규제에 얽매여 더 이상 규모를 키울 수 없다면 이는 해당 산업의 경쟁력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다음으로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들을 많이 육성해내야 한다. 일본 산업경쟁력의 저력은 여기서부터 비롯된다. 우리나라 산업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부품ㆍ소재분야의 취약성은 한우물을 파는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들이 부족한 탓이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이제는 모든 중소기업을 육성하겠다는 발상은 버려야 한다. 한계 중소기업의 퇴출을 용이하게 하면서 중소기업 육성도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나가야 한다. 정부가 말하는 혁신주도형 경제는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들이 증가하지 않으면 기대하기 어렵다.다섯째, 인력, 연구개발, 혁신거점과 같은 네트워크 창출 등 정부는 기업의 혁신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인프라 확충에 대대적으로 나서야 한다. 노동, 자본 등 투입요소에 의존한 성장이 한계에 이른 지금 우리가 기대할 것은 인적자본과 기술혁신이다. 앞으로 기업들은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서 인력에 대한 교육과 훈련, 연구개발 등에 대한 투자를 늘려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를 확충해줘야 한다. 인적자본과 관련해서는 무엇보다 고등교육기관, 즉 대학의 역할이 크게 달라져야 한다. 산ㆍ학ㆍ연 협력도 대학경쟁력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고 보면 앞으로 한ㆍ중ㆍ일 대학경쟁력의 차이가 그대로 한ㆍ중ㆍ일 산업경쟁력의 차이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대학의 특성화ㆍ차별화가 요구되고 정부는 이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또 정부는 연구개발 예산을 늘려가되 과감한 투자배분의 변화를 도모할 때다. 기업은 생존 차원에서 너무 멀리 보고 연구개발 투자를 할 수는 없다. 정부가 그 골을 메워줘야 한다. 도전적인 기초 및 원천기술에 정부예산을 전략적으로 배분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공공부문 연구성과가 지금처럼 사장돼서는 안된다. 활용도를 높여야 한다. 연구성과가 사업화ㆍ기업화로 이어지도록 길을 터주고 유인책도 강화해야 한다.이와 함께 혁신거점(이른바 클러스터) 등 네트워크 창출에도 정부는 역점을 둬야 한다. 지금은 혼자서 경쟁한다기보다 네트워크 경쟁이다. 산ㆍ학ㆍ연간 교류와 협력, 여기에 금융 등 시장 메커니즘이 더해져 신기술 아이디어가 연구개발로 이어지고 또 그것이 사업화ㆍ기업화로 연계되는 혁신거점을 만들어야 한다.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중국과 일본보다 더 개방적인 전략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산업을 고도화하자면 선도대기업, 혁신중소기업 외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다. 바로 외국인투자다. 투자확대, 기술이전 등 우리가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외국인투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자면 경제특구, 노사관계 등에서 중국, 일본보다 나은 매력적인 투자환경을 조성하지 않으면 안된다.외국인투자는 향후 한ㆍ중ㆍ일 산업경쟁력을 염두에 두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국 등 아시아시장을 목표로 제품의 상품기획이나 설계개발, 생산기술의 개량 등을 투자지역에서 해결하려는 업체의 경우 보다 적극적으로 유치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에 진출한 전방산업들을 위한 부품소재업체들도 적극적인 유치 대상이다.한국개발연구원 서중해 박사는 산업별로 외자유치 전략을 제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섬유, 생활용품 등 중국과의 경쟁압력으로 향후 지속적인 구조조정이 예상되는 분야는 고용안정, 산업합리화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의 외국인투자 유치 노력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또 기계, 부품ㆍ소재, 정밀화학 등의 경우는 국내 산업구조 고도화와 국제경쟁력 강화의 관건인 동시에 중국과의 치열한 투자유치 경합이 예상되는 분야이므로 이들 분야 외국인 투자기업에 대해선 획기적인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을 주문한다. 또한 LCD, 통신기기, 디지털가전, 반도체 등의 경우는 국내 선도부문임을 고려, 국내 R&D활동을 촉진할 수 있는 외국인투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이는 앞서 제시한 산업구조 고도화와 특히 역점을 둬야 할 산업의 경쟁력 전략과 정확히 일치한다.지금까지 제시된 대응방안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혁신과 개방이다. 앞으로 한ㆍ중ㆍ일 경쟁에서 우리나라가 얼마만큼 혁신적이고 개방적이냐에 따라 산업경쟁력의 향배가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