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따라잡기도, 중국을 따돌리는 것도 좀처럼 쉽지 않다.’경제계 안팎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한국이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어 차별적 경쟁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자칫 한국이 양국 사이에서 길을 잃고 추락할 수도 있다는 우울한 전망도 나오고 있다. 사실일까.총요소생산성 추이를 보면 한국, 중국, 일본의 산업경쟁력을 가늠할 수 있다. 총요소생산성은 생산과정에 투입된 자본, 노동, 에너지, 원재료 등 요소투입을 통해 나타난 생산효율성과 기술혁신 등 생산요소 이외의 부분까지 측정하기 때문에 한 국가의 중장기적인 경제성장의 효율성을 측정하는 데 유효하다.중국의 총요소생산성은 92년 2.87%, 94년 3.57%, 96년 3.05% 등 90년대 들어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에는 아시아지역의 외환위기 탓에 증가속도가 둔화됐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여전히 높아지고 있어 한국이나 일본에 비해 역동적인 모습이다. 중국의 총요소생산성 증가는 주로 중간재 투입의 증가에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다국적기업들이 중국에 생산기지를 건설하면서 부품을 포함한 중간재 투입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일본은 90년대 들어 오히려 총요소생산성이 움츠러들었다. 91년 -0.29%, 92년 -1.04% 등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94년에 저점을 통과한 후 90년대 후반에는 1~2%로 높아져 80년대 후반 수준을 회복했다. 하지만 중국에 비해서는 여전히 열세다. 중국과 달리 경제가 성숙기에 들어서 총요소생산성이 변화할 여지가 적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한국은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추이가 완전히 상반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비스업의 총요소생산성은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반면, 제조업은 증가하고 있다. 제조업의 성장이 전산업의 총요소생산성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제조업의 총요소생산성은 외환위기가 있었던 98년 -3.75%를 기록하며 저점을 찍은 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반면, 서비스업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한국 역시 중간재 투입 증가가 전체적인 성장의 밑거름 역할을 했다. 하지만 자본투입 비중이 높고 노동투입이 줄어들고 있는 등 중국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한국의 기술경쟁력이 중국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중국, 양산기술 쾌속 발전세계 IT산업의 강자로 떠오르면서 한국의 기술경쟁력이 크게 높아진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과 격차가 크고 중국의 성장이 워낙 빨라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절대로 아니다.국회 예산정책처가 국제경영개발원(IMD)의 세계경쟁력연감을 활용해 측정한 과학기술부문 경쟁력에서도 한국은 일본에 크게 뒤진 반면, 중국보다는 간발의 우위를 점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일본이 종합지수에서 93.5점을 받아 중국(54.4점)과 한국(60.3점)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있다. 반면 한국은 중국에 바짝 쫓기고 있는 형편이다. 2001년 16.6점이던 점수 차이가 2002년 12.8점, 2003년 9.8점, 2004년 5.9점으로 매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세부 평가항목에서는 한국이 중국에 오히려 뒤진 부문도 있었다. 연구개발지출부문에서는 2003년까지 우위를 점했지만 2004년 순위가 역전됐다. 연구개발인력의 경쟁력에서는 중국에 일방적으로 밀렸다. 중국이 98.5점을 받아 거의 만점을 획득한 반면, 한국은 불과 45.3점에 머물렀다. 일본은 98.6점으로 중국을 가까스로 따돌렸다.반면 기술교육 기반 경쟁력은 한국이 중국을 압도했다. 한국은 92.6점을 획득해 중국(30.9점)에 몇 발 앞섰고 94.5점인 일본에 육박하고 있다. 지식자산 형성 경쟁력에선 한국(69.3점)과 중국(40.6) 모두 일본에 크게 뒤졌다.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외국투자기업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의 R&D 환경에 대한 설문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왔다. 한국은 연구시설부문에서만 일본에 이어 2위를 차지했을 뿐 우수인력 확보와 정부지원, 시장수요 등에서는 최하위에 그쳤다. 중국은 우수인력 확보와 시장수요에서 1위를 차지했지만 연구시설에서 최하위에 머물렀다. 종합점수에서는 일본이 4.03점으로 선두였고 중국이 3.99점으로 일본을 바짝 추격하고 있으며 한국은 3.43점으로 양국과 격차를 보였다.주요산업의 기술경쟁력에서도 일본이 한국과 중국을 리드하고 있다. 한국산업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산업기술경쟁력을 100으로 했을 때 일본은 110.5, 중국은 76.5로 나타났다. 한ㆍ중ㆍ일의 기술격차를 햇수로 환산하면 일본은 한국보다 2.2년 앞서 있고 중국은 3.8년 뒤졌다.설계나 제품개발력 등 양산화 이전의 기술일수록 한ㆍ중ㆍ일간의 격차가 컸다. 가장 큰 차이를 보인 항목은 설계기술이었다. 일본이 112.9였고 중국은 73.9에 그쳤다. 제품개발력은 일본이 112.7, 중국이 75.1이었다.반면 양산기술 측면에서는 차이가 좁혀졌다. 많은 다국적기업들이 중국에 생산시설을 확대하면서 중국의 생산기술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 때문으로 산업은행측은 풀이했다. 생산기술에서 일본이 107.2점, 중국이 78.3점이었고, 품질수준은 일본이 109.3점, 중국이 78.5점이었다.한국, 임금상승률 세계 1위한ㆍ중ㆍ일 3국의 격차는 머지않아 크게 좁혀질 전망이다. 2010년에는 일본이 102.1점, 한국이 100점, 중국이 94.5점으로 기술경쟁력이 거의 대등해질 것으로 산업은행측은 내다봤다. 한국이 일본의 산업구조로, 중국은 한국의 산업구조로 수렴해감에 따라 경쟁력 격차가 감소하고 3국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란 분석이다.최근 다국적기업들이 중국에 생산시설뿐만 아니라 R&D센터를 구축하는 사례가 급격히 증가하는 것도 중국의 경쟁력 제고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97년 109개였던 R&D센터는 2003년 420개를 거쳐 지난해 690개로 불어난 상태다. 신규 R&D 프로젝트도 당연히 증가했다. 2000년 100건에서 2002년 227건, 2004년 1,395건으로 증가세가 가히 폭발적이다. 세계의 공장에서 R&D 허브로 거듭나고 있다는 주장이 힘을 받는 대목이다.중국의 추격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는 것은 국내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5,849개의 업체를 대상으로 한 산업연구원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내 기업인들은 한국의 기술이 중국보다 약 4년 앞서 있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이 수치는 2002년의 4.7년에 비해 0.7년 감소한 것이어서 중국의 추격이 가속도를 붙이고 있음을 기업인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기술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경공업부문일수록 격차가 작았다.가격경쟁력은 역시 중국이 앞선다. 한국과 일본에 비해 턱없이 적은 인건비를 위시해 토지가격, 법인세 등 각종 비용이 양국에 비해 적다. 한국의 30개 국가산업단지와 중국의 30개 국가경제기술개발구의 입지환경을 비교한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에 비해 토지가격은 4배, 임금은 8.3배, 법인세는 1.8배, 하수처리비는 2.4배 많다.이에 비해 한국의 임금상승률은 세계 최고다. 1990년부터 2003년까지 노동비용이 279% 상승해 2위인 싱가포르(199%)보다 크게 높았다. 일본은 160%로 8위에 올랐다. 한국의 노동비용은 90년대까지는 미국의 25% 수준이었으나 이후 상승세가 빨라져 95년에는 43%, 2003년에는 47%에 달했다. 노동비용은 산업구조가 고도화됨에 따라 더욱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에 상승속도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이 보고서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