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은 회사를 춤추게 한다

‘직업별 웃음소리는? 수사반장은 후후후(who who who), 요리사는 쿡쿡쿡(cook cook cook), 축구선수는 킥킥킥(kick kick kick), 악마는 헬헬헬(hell hell hell), 색마는 걸걸걸(girl girl girl), 어린이 키득키득(kid kid), 인기가수 싱긋싱긋(sing good sing good), 원로가수 생긋생긋(sang good sang good)…’요즘 인터넷상에서 유행하는 유머 중 하나다. 그러고 보니 알게 모르게 사람의 웃음소리는 참 다양하게 형상화되나 보다. 유교문화 때문인지 웃음과 유머에 인색한 한국인에게 그래서 이 유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게 만드는 힘이 있다. 한국에 처음 발을 내디뎠을 때 한국인의 무표정한 얼굴에 놀랐다는 외국인만 해도 어디 한두 명이었던가.하지만 이제 한국인이 웃음에 인색하다는 이야기는 모두 타임캡슐에 묻고 100년쯤 뒤 꺼내어 곱씹어볼 추억거리로 삼아도 좋을 듯하다. 지금 한국은 웃음코리아, 유머코리아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웃음과 유머에 열광하고 있기 때문이다.물론 2005년 대한민국의 외피를 아무리 뚫어지게 노려봐도 웃을 일은 없다. 정부와 각 민간경제연구소에서 발표하는 경제성장률 예상치는 계속 낮아지고 빈부격차는 커져만 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이것이 지금 한국이 웃음에 매달리는 이유다.일단 웃음강의가 부쩍 늘었다. 잘 풀리지 않는 인생, 남의 탓이나 사회 탓만 할 게 아니라 스스로 유쾌한 사람이 돼 보자는 것.‘웃음’, ‘유머’라는 단어에 ‘연구소’, ‘연구원’, ‘학회’라는 타이틀을 달고 국내에서 유머강사로 활동하는 사람은 10명 남짓. 이들 중 대부분은 요즘 기업교육분야에서 최고 인기강사 리스트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바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머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유머경영’, ‘웃음강의’ 같은 말의 설명조차 쉽지 않았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9년째 유머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요셉 한국웃음연구소장의 경우 “요즘처럼 신나는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 또 건설회사 토목기사 출신으로 2000년부터 유머강사로 활동 중인 양내윤 유머경영연구소장은 인터뷰에서 “요즘이 내 전성기인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이들 명강사는 강의의 세부사항에서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웃음이 경쟁력’이라는 데는 의견의 합치를 본다. 웃음은 사람의 태도를 바꾸는 수단이자 사람의 관계를 좋게 하는 도구라는 얘기다.사실 온 나라가 ‘웃음’이라는 한 가지 주제에 집중했던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80년대 후반 전국에 ‘엔도르핀’ 열풍을 일으켰던 이상구 박사의 강연 역시 ‘웃음강의’였다.그렇지만 그때의 웃음과 지금의 웃음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뉴 스타트 운동(생활습관의 변화만이 잘 먹고 오래 사는 비결이라는 캠페인) 창시자이자 유전자 의학 전문가인 이상구 박사는 채식생활의 중요성과 함께 웃음을 강조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실컷 웃고 나면 엔도르핀 분비가 촉진돼 젊게 살 수 있다는 것. 따라서 당시 이박사가 웃음의 치료효과를 강조했다면 지금 웃음강사들이 힘줘 이야기하는 것은 ‘성공을 향한 도구로서의 웃음’인 셈이다.이처럼 웃음이 비즈니스의 성공포인트로 지목되다 보니 경영과 마케팅에서도 웃음이 비껴가지 않는다. 펀경영(Management by Fun), 펀마케팅이 점차 확산되는 추세라는 소식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삼성, LG 등 국내 굴지의 기업들은 ‘재미있는 일터 만들기’에 온힘을 쏟고 있다. 미국 사우스웨스트항공 경영진이 입사 면접시험에 ‘유머감각’을 필수조건으로 내걸었다는 스토리는 펀경영의 고전 중 고전이다.광고와 정보의 홍수 속에 마케팅에서도 ‘펀’(Fun)은 중요한 요소다. 소비자의 시선을 잡아끌기 위해서는 인상적인 콘텐츠를 담아 제품을 알려야 한다(Attention Grabbing Power). 유머가 바로 이런 작용을 한다. 지난해 한 인터넷 서점은 자사 브랜드를 알리는 데 스머프 인형을 동원했다. 스머프 분장을 한 직원들이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연출하자 이것이 곧 네티즌 사이에서 단연 인기 있는 이야깃거리가 됐다. 이를 통해 이 업체는 후발업체로서의 약점을 극복하고 브랜드를 단숨에 알렸다.특히 ‘유머코드’는 콘텐츠업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요즘 방송가에서 시청률이 가장 높게 나오는 프로그램은 코미디와 드라마다. 그나마 드라마도 코믹드라마가 인기다. 최근 종영한 <내 이름은 김삼순>이 대표적인 예로 이 드라마는 ‘삼순이 마케팅’을 낳았는가 하면 요식ㆍ완구업종에서는 삼순ㆍ삼식 이름을 딴 특허출원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봄에는 아이돌 스타 에릭이 망가진 모습을 보여준 드라마 <신입사원>이 큰 인기를 모으기도 했다.이쯤 되고 보니 개그맨이 되겠다는 젊은이들도 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KBS에서는 지난 5월 <개그사냥>이라는 신인개그맨 발굴 프로그램을 신설했다.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신인가수 선발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처럼 오디션 현장을 바로 방송 프로그램으로 만들고 심사위원이 방송 중 적나라하게 심사평을 쏟아낸다.물론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개인의 대인관계 형성에서도 유머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각 결혼정보회사에서 흘러나오는 설문조사에서 벌써 몇 년째 인기 있는 남성 배우자감은 ‘유머감각 있는 남자’다.유머에 대한 관심은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지난 4월 말 미국의 영부인 로라 부시가 백악관 만찬에서 “대통령이 오후 9시에 잠들고 나면 나는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을 본다. 나야말로 위기의 주부다”고 말해 좌중을 웃게 한 일이 있었다. <위기의 주부들>은 미국에서 방영 내내 시청률 1, 2위를 기록한 드라마로 로라 부시의 이 말은 후에 짜여진 대본에 의한 것임이 밝혀지기도 했다. 유머가 화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인 셈이다.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우리는 행복하기 때문에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했다.어깨 펼 일도, 웃을 일도 없는 요즘. ‘하하’든 ‘호호’든 ‘히히’든 어떤 식으로든 웃음소리를 내보는 건 어떨까. 이런 웃음이야말로 최소한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못하더라도 나 자신을 행복하게 바꾸는 훌륭한 도구가 되지 않을까.